난 그냥 나일 뿐!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싫어요!
학교 수업이 끝나는 오후부터 서너 개의 학원을 도느라 더욱 바쁜 아이들. 그래도 엄마들의 욕심은 끝이 없다. 옆집 아이가 어디 새로운 학원이라도 다닌다고 하면, 아이들이 밥상 앞에 앉기가 무섭게 그 이야기부터 쏟아놓는다. 아이와 부모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가 겨우 이것뿐이라니. 하지만 이런 모습은 오늘 우리 집 저녁상 앞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아이 앞에서 모든 부모가 저지르는 실수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다른 아이와 내 아이를 비교하는 것이다. 부모라는 이름의 우리는 ‘어느 집 아무개가 어떻다더라’와 같은 이야기를 습관처럼 늘어놓는다.
표제작인 「좋은 엄마 학원」에 등장하는 다정이네 사정도 다른 집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정이 엄마는 다정이에게 주연이처럼 발레를 배우고 수학 학습지도 하라고 한다. 하지만 이미 재미있게 태권도를 배우고 있는 다정이는 엄마의 이런 바람이 버겁고 짜증스럽기만 하다.
다정이도 엄마에게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세영이네 엄마는 맛있는 간식도 척척 만들어 주신다. 주연이네 엄마는 영화배우처럼 날씬하고 예쁘다. 그런데 다정이 엄마는 집안일에는 영 소질이 없다. 집안은 늘 어질러져 있고 툭 하면 외식하자고만 한다. 그래도 다정이는 엄마를 세영이네 엄마나 주연이네 엄마와 비교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랑 비교 당할 때의 기분이 어떤지 누구보다 잘 아는 까닭이다.
결국 다정이는 특단의 조치를 결심한다. 좋은 엄마 학원에 엄마를 보내 버리는 것. 일 주일이 다 되도록 엄마에게 아무런 소식이 없자 한편으로 걱정하면서도 ‘엄마는 마음대로 나를 학원에 보낸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마음을 다잡는 다정이의 목소리가 또 한 번 우리를 씁쓸하게 한다.
자기 안에 숨겨진 힘을 찾아 새롭게 눈을 뜨는 아이들
아이가 바르게, 더 훌륭하게 자랄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한다는 핑계로 우리는 아이들을 우리 마음대로 움직이려고 한다. 하지만 학원에 보내 배움의 기회를 늘려 주는 것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보증수표라도 되는 양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이 배워야 할 모든 것을 학교와 학원에서 다 가르쳐 주는 것은 아니다. 지금 당장 영어 수학을 잘할 수는 있겠지만 그만큼 가슴이 따뜻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갖추어야 할 조건들을 깨닫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보낼지도 모른다. 요즘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집단 따돌림 현상이나 생명 경시 풍조도 함께 어우러지는 공동체 의식이나 서로에 대한 경외심을 뒤로하고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지나친 경쟁의식과 우월감을 먼저 배운 데서 그 까닭을 찾을 수 있다.
「눈사람 카드」에 나오는 이기적인 미나도 예외는 아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요즘 아이들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는 미나는 새엄마와 배다른 동생까지 끌어안는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명숙이를 만나 새롭게 자신과 세상에 대해 눈을 뜬다. 부모에게 무언가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저 어리광이나 부리면 그만인 줄 알았던 미나. 붓글씨도 잘 쓰고 공부도 잘하는 미나였지만 ‘가족’이란 그 존재만으로도 서로에게 충분히 힘이 된다는 사실을, 더불어 타인을 ‘친구’로 만들어 나가며 얻는 즐거움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어른들 눈에는 아이들이 그저 아이로만 보이겠지만 사실 아이들은 ‘학원’으로 대변되는 어른들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주어진 문제를 스스로 정확히 진단하고 그에 어울리는 처방을 내린다. 겉으로든 속으로든 딸보다 아들을 원하는 어른들 틈바구니 속에서 「미미가 치마를 입게 된 사연」의 주인공 미미는 일부러 사내아이처럼 굴며 가족 구성원으로서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지 진지하게 고민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밟아 가는 가운데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마침내 아들이나 딸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진정한 자아를 찾아 나간다.
「뻐꾸기 엄마」의 미돌이도 부모의 별거로 깨진 가정 안에서 변해 버린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한다. 거의 매일 이모네 집에 자기를 맡기는 엄마에게 서운한 마음이 없진 않지만 곧 엄마의 또다른 동반자로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짚어낸다. 비록 지금은 혼자 아침을 챙기는 모습이 안쓰럽게 비치지만 앞으로 미돌이가 더욱 성숙한 인간으로 자랄 거라는 데 우리는 어떤 의심도 품지 않는다.
이 책은 ‘좋은 엄마 학원’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을 경험하며 엄마와 다정이가 겪는 일상의 변화를 통해 부모로서 우리가 어느 지점에 서서 아이들을 바라봐야 하는지 가늠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우리는 아이들이 저마다의 난관 앞에서 어떤 방식으로 상황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지를 좀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꾸준히 좋은 작품을 선보이며 월간 『어린이문학』의 추천을 받아 등단한 작가는 직접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지는 정신과 의사라는 이력답게 우리와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는 데 객관적이면서도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 아이들의 심리를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이해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작가의 숨겨진 힘이 느껴진다. 아이와 함께 이 동화를 읽다 보면, 외면하고 싶은 자화상이라고 해도 용기를 내어 마주하는 순간, 이미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된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앞으로도 우리는 아이들이 현명한 어른으로 자랄 수 있도록 학원에 보낼 것이다. 하지만 정작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학원이라도 다녀야 할 사람은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는 현실의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용기를, 어른에게는 참된 부모 역할을 깨닫게 하는 『좋은 엄마 학원』은 엄마와 아이가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기 좋은 책이다.
지은이 김녹두
사이버 주부대학 아동문학 작가반에서 동화 쓰기 공부를 하셨습니다. 「미미가 치마를 입게 된 사연」과 「업장군」이란 작품으로 월간 『어린이문학』의 추천을 받아 등단하셨습니다. 직접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로서 아이들의 일상을 애정 어린 시선과 탄탄한 문장으로 잘 그려 내고 있습니다.
그린이 김용연
한겨레 일러스트레이션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는 선생님은 앞으로 글이 주는 감동을 살찌우면서도 글만으로는 맛볼 수 없는 재미가 가득한 그림으로 더 많은 어린이들을 찾아가고자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