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만 놀고 들어와 밥 먹어야지!” 저녁놀이 물들 무렵이면 엄마들은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이렇게 외치곤 했죠. 그러면 온종일 손과 발이 새카맣게 뛰어 놀던 아이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며 엄마한테 달려갔습니다. 옷을 더렵혀서 꿀밤을 맞으면서도 뭐가 신나는지 엄마 손에 매달려 깡충깡충 뛰면서 집으로 돌아갔지요.
요즘 사라져 가는 것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런 풍경이 아닌가 합니다. 대부분의 놀이터나 공터는 텅 비었고, 이제 피시방이나 학원이 그 자리를 채워 가고 있습니다.
제5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덤벼라, 곰!』은 밖에 나가 노는 것보다 컴퓨터 게임에 더 익숙한 요즘 아이들에게 해가 질 때까지 뛰어놀던 신나는 어린 날을 선물합니다. 「덤벼라, 곰!」의 씩씩한 규민이는 산길을 뛰어다니다 토끼를 만나기도 하고, 아빠의 매운탕거리를 잡다가 우연히 곰을 만나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봄을 부르는 옷」의 웅이도 펑펑 첫눈이 내리면 아빠랑 같이 눈사람도 만들고 운동화가 흠뻑 젖을 때까지 누렁이와 눈길을 내달립니다. 이 친구들이 노는 모습은 요즘 아이들에게 전혀 생소한 놀이 문화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이야기 속에서 색다른 재미와 즐거움을 맛볼 수 있습니다.
또 이 책을 통해 아이들은 모든 것이 넉넉하기만 한 지금과 달리, 어려운 시절을 보내던 꼬마 친구들과의 소중한 만남도 경험하게 됩니다. 무릎만 살짝 깨져도 엄마가 금세 좋은 약을 발라 주고, 훌쩍훌쩍 콧물만 흘려도 엄마 손에 이끌려 병원을 찾는 아이들에게, 「내 동생 진달래」에서 큰 화상을 입었지만 병원 한번 못 가 보고 맥없이 죽어가는 명이의 모습은 불쌍하면서 어쩐지 낯설기까지 합니다. 동시에 명이의 죽음 앞에서 병원에 갈 때마다 어리광을 피우며 엄마를 힘들게 했던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집니다. 동생을 사랑하는 오빠 성이의 마음 씀씀이에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오면서 곁에 있는 동생과 언니, 오빠, 누나, 형이란 이름의 소중함을 한 번 더 되새기게 되지요. 이기적인 요즘 아이들에게 형제자매 간의 우애는 부모의 강요만으로 가르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에게 「내 동생 진달래」와 더불어 「누나와 아기」를 읽게 하면 어떨까요? 친누나를 다른 집 아기한테 빼앗긴 것 같아서 심통을 부리지만 곧 누나의 크나큰 모성애 속에서 은규는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웁니다. 물론 은규를 만난 우리 아이들도 세상에 바라보는 따뜻한 눈과 함께 형제자매 간의 우애도 자연스레 깨우치게 되겠지요.
또 겨울마다 몇 벌의 외투를 바꿔 입는 아이들은 직접 오리를 잡아서 그 털을 모아 외투를 만들어 입는 웅이의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합니다. 엄마한테 당장 오리를 잡아 달라고 할지도 모르지요. 돈만 있으면 쉽게 살 수 있는 옷이나 물건을 직접 만들어 쓰는 모습에 고개가 갸우뚱하면서도 자신을 둘러싼 풍족한 환경에 새삼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겁니다.
이렇듯 『덤벼라, 곰!』 속에는 오늘 이 자리에서 아이들이 접할 수 없는 작지만 소중한 경험이 가득합니다. 여름 방학을 앞두고 아이들을 위한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는 중이라면, 그 계획에 『덤벼라, 곰!』도 슬쩍 넣어 주세요. 이 책을 읽는 동안 아이들은 자연을 닮은 너그러움을 배우며 더 행복한 꿈을 꾸게 될 겁니다.
삶을 감싸는 생명의 빛’을 잡아 낸 제5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삶을 감싸는 생명의 빛’이라고 압축해 말할 수 있는 김남중의 주제 의식은 치밀한 구성의 힘과 섬세한 심리 묘사를 통해 아주 자연스럽게 작품 속에 흐르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숨어 있는 자연의 커다란 질서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인위적 질서에 균열을 일으키면서 불쑥 얼굴을 내미는 순간을 포착해 낸다. _‘심사평’ 중에서(본심: 김진경 이재복 조월례)
한결 높아진 수준을 자랑하는 많은 응모작 가운데서도 「덤벼라, 곰!」을 포함한 김남중의 작품들은 잔잔한 감동과 더불어 자연을 대하는 따뜻한 눈길로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잡아끌기에 충분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세계가 아닌, 자연이라는 커다란 질서 속에서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었지요. 작품 곳곳에는 인간의 질서를 뛰어넘어 존재하는 자연의 힘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점에서 「누나와 아기」의 누나가 보여주는 모성애가 그렇고, 「덤벼라, 곰!」에서 곰에게 진짜 총알이 아닌, 자연에서 구한 대추씨 총알을 겨누는 모습이 그렇지요. 「내 동생 진달래」에서 끝내 눈을 감은 명이와 그 죽음을 바라보는 아빠와 성이의 마음, 「봄을 부르는 옷」에서 오리털을 모아 만든 웅이의 겨울 외투도 예외는 아닙니다.
창비 좋은 어린이책 창작 부문 대상 수상작인 『기찻길 옆 동네』로 이미 탄탄한 문장력과 이야기 구성력을 인정받은 작가 김남중. 그가 『덤벼라, 곰!』과 함께 시작한 ‘자연’이라는 거대 주제와의 조화가 앞으로 어떻게 자기만의 색깔로 그려질지 기대가 큽니다.
글쓴이 김남중
1972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원광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제5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과 제8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창작 부문 대상을 받았습니다. 지은 책으로 『기찻길 옆 동네』 『황토』 등이 있습니다.
그린이 박은희
중앙대학교 한국화과를 졸업하고 어린이책 일러스트레이터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서정적이고 친근한 그림을 보여 주고자 언제나 고민 또 고민한다고 합니다. 그린 책으로 『산곡 외계인』 『여우와 포도』 『바다는 왜 파랗고 짤까?』 『토끼의 간』 『한석봉』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