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가족을 난도질하는 끔찍한 소설!
『넘치는 사랑』『영원의 아이』로 국내에 알려진 텐도 아라타의 장편 『가족 사냥』은 근대적 가족의 해체라는 묵직한 주제를 추리적 기법으로 풀어낸 수작이다. 잔인한 폭력장면의 극사실적인 묘사와 일본사회의 폐부를 찌르는 문제의식으로 출간 당시 일본에서 큰 화제를 모았던 이 작품은 일본의 양대 대중문학상의 하나인 야마모토 슈고로(山本周五郎) 상을 수상하면서 텐도 아라타를 대표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사소설적 경향이 강한 일본문단의 전통과는 달리 스케일이 크고 사회성이 강한 작품들을 주로 써온 텐도 아라타는 『가족 사냥』에서 서스펜스와 미스터리 기법, 영화적인 문체 등 자신의 장기를 최대한 활용해 현대 일본사회에 내재한 정신병리와 폭력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등교거부, 아동학대, 이지메 등 일본의 주요 이슈가 되어온 사회문제들을 곳곳에 배치하면서 이를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능란하게 이어가는 작가의 솜씨는, 무거운 주제와 긴 분량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흥미진진하고 단숨에 읽히는 소설로 만들어냈다.
엽기적인 폭력의 가해자, 또는 피해자들의 내면을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게 파헤치는 작가의 시선은 선정적이고 표피적인 소재주의를 뛰어넘어 개인과 사회의 병을 한데 꿰뚫는 깊이를 보여준다. 특히 가족을 둘러싼 광기와 공포를 표현하기 위해 작가가 도입한 잔혹의 미학과 선명한 회화적 이미지는 소설 전체를 팽팽한 긴장으로 감싸며 읽는 이를 숨막히게 한다.
톱날이 살갗에 닿는다. 통통한 지방질의 살을 톱날이 지그시 누른다. 톱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가지런히 줄을 선 톱날이 살의 탄력을 받으며 딱딱한 뼈 위에 닿는다. 더욱 힘을 가하자 지익― 하는 소리와 함께 피부가 찢어지고, 솟구치는 빨간 핏방울 속으로 톱날이 박힌다.
"사랑하고 있어?"
부드러운 목소리가 그렇게 묻는다. 사십대 중반의 벌거벗은 남자는 입 속에 박힌 테니스공 때문에 웅얼거리는 신음 소리밖에 내지 못한다.
"왜 말이 없어, 사랑하고 있어?"
다시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묻는다. 톱날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본문 중에서
소설의 첫머리부터 등장하는 끔찍한 묘사는 웬만한 폭력영화에는 익숙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조차 저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살아 있는 사람을 톱으로 썰고, 산 사람의 머리에 석유를 끼얹고 불을 붙였다 끄기를 되풀이한다. 더구나 그것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한 가족 모두를 대상으로 벌어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끔찍하게 느껴진다. 이 살인 장면의 피비린내는 소설이 끝난 후에도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그러나 더욱 공포스러운 것은, 이런 잔혹함이 단지 변태적인 개인의 엽기 취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광기, 가족이라는 공포
텐도 아라타가 묘사하는 소름끼치는 폭력은 곧 극단적인 사랑과 동의어이다. 사랑이라는 가치가 오히려 가족이라는 틀을 좀먹어들어가고, 무너져가는 가족을 사랑으로 구하고자 하는 시도가 거꾸로 극단적인 폭력의 형태로 드러나 가족의 해체로 귀결되는 끔찍한 역설. 안전하고 평화로운 가족이라는 것이 환상에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이보다 더 극적으로 드러낼 수는 없을 것이다.
등장인물들의 가족은 모두 병들어 있다. 일가족 살인사건의 범인을 쫓는 형사 마미하라는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아내 사와코와 집을 나간 딸을 두고 아동학대 사건으로 알게 된 후유시마 아야메 모자를 아버지처럼 돌본다. 사건의 목격자인 교사 스도 슌스케는 같은 학교 교사인 기요오카 미호와 사귀면서도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기를 두려워한다. 고등학생 요시자와 아이는 가정불화를 견디다 못해 이상행동을 나타내기 시작하고, 청소년상담센터의 상담사 히자키 유코는 자신에게 폭력을 휘둘렀으나 지금은 치매에 걸려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는 아버지를 부양하고 있다. 소설은 격자처럼 얽힌 구성과 다중적인 시점을 통해 이들이 지닌 내면의 상처를 하나하나 드러낸다. 이들이 연쇄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서로 만나고 얽혀들면서, 현대 일본의 가족이 직면한 공포스러운 현실이 지옥도의 세밀화처럼 촘촘하게 펼쳐진다.
텐도 아라타(天童荒太)
1960년 일본 에히메 현에서 태어나 메이지 대학 문학부 연극학과를 졸업했다. 영화 시나리오를 쓰다가 소설에 전념하여 추리소설 분야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무라카미 류, 야마다 에이미 등 동시대 작가들에게도 격찬을 받고 있는 그는 1986년 『하얀 가족』으로 제13회 야성시대 신인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93년『고독의 노랫소리』로 제6회 일본 추리서스펜스대상 우수상, 1996년 『가족 사냥』으로 제9회 야마모토 슈고로 상을 수상했다. 1999년에는 밀리언셀러가 된 『영원의 아이』로 제53회 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다.
옮긴이 양억관
1956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경희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아시아대학 경제학부 박사과정을 중퇴했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 『달의 강』 『봄의 오르간』 『포플러의 가을』 『항우와 유방』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 『소크라테스 최후의 13일』 『냉정과 열정 사이』 『공생충』 『물은 답을 알고 있다』 『남자의 후반생』 등이 있다.
* 2003년 8월 1일 발행
* ISBN 1권 89-8281-700-X 04830
2권 89-8281-701-8 04830 89-8281-699-2 (세트)
* 신국판 / 1권 384쪽 / 2권 432쪽 / 각권 8,800원
* 담당편집 : 이상술(927-6790, 내선 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