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나 어른들 모두 각기 삶의 길 위에 서 있다
태어나는 누구나 길을 떠난다. 더러는 여장을 단단히 갖추고 출발하는가 하면 더러는 가장 요긴한 신발조차 없이 문을 나선다. 좋은 집안에 태어나 건강한 몸으로 살아가는 이가 있고,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불편한 몸으로 살아가는 이도 있다. 물이, 길 떠나는 아이는 신발이 없는 쪽에 가깝다. 출발부터 남보다 덜 갖추었고 불완전하기에 그 여정은 더욱 험난하고 누군가를 의지하지 않고선 살아가기 힘들다. 하지만 순탄치 않은 길 위에서 주인공 물이는 세상을 배우고 견뎌내며 자기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 나간다. 그리고 마침내는 잃어버렸던 영혼의 한 조각을 찾아 제 안에 받아들이는 자기완성의 순간을 맛본다. 『물이, 길 떠나는 아이』는 그간 재치 있고 발랄한 작품들을 써온 작가의 족적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작품이다. 『어린이문학』에 「흰곰인형」으로 등단한 뒤 『동동 김동』 『어두운 계단에서 도깨비가』 『무지무지 힘이 세고 대단히 똑똑하고 아주아주 용감한 당글공주』 등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의 세계를 구체적으로 잘 표현해내는 작가들 중 하나로 평가받게 한 그간의 작품들과는 다른 색깔을 띠고 있는 것이다. 현실의 문제, 아이들의 고민과 욕망을 진지하게 들어주며 기발한 상상력으로 표현하고 이해해 주었던 데서 한 걸음 나아가 아이들에게 삶의 모습을 온전하고도 이해하기 쉽게 옛이야기의 옷을 입혀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옛이야기의 옷을 입었지만 이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아이들의 얘기이다. 어리다고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삶의 통찰이 담겨 있는 이 작품을 통해 아이들은 제 그릇만큼 삶을 이해하게 된다. 영혼의 한 조각을 찾기 위해 떠도는 운명을 안고 태어난 물이가 자아를 실현하고 탐구해 나가는 과정은 어린 독자들에게 주인공과 더불어 내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잃어버린 영혼의 한 조각을 찾아 떠난 자기완성의 길
하늘 선녀의 실수와 제 어머니의 말 독으로 인해 물이는 영혼의 한 조각을 잃고 만다. 선천적 결함을 가진 물이는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간 구렁이와 함께 떠돌아다닐 운명으로 세상에 태어난다. 집 울타리 밖의 세상에 대해 두려움 많은 물이는 요물로 몰려 어쩔 수 없이 길을 나서게 된다. ‘너’와 ‘나’라는 글자를 구별하지 못해 글방에서 쫓겨나고, 구렁이와 우는 아이를 달래 주다 요물이라며 몰매를 맞고, 겉모습으로 사물을 판단하는 사내아이와 길동무가 되는가 하면, 쥐 떼를 몰아주다 되레 오해를 받아 사람들에게 돌팔매를 맞는 등 사람들의 편견과 허위와 욕망에 부딪친다. 하지만 물이는 그에 휩쓸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완성을 위해 삶을 개척한다. 이해받지 못하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할 바를 다하고, 맞서고 기대기도 하면서 물이는 마침내 자기에게 이런 업보를 안겨 준 선녀와 대면한다. 선녀는 물이에게 잃어버린 영혼을 찾을 방도를 알려 주고, 물이는 그 방도를 따라 사람들을 도와주고 대신 머리칼을 한 올씩 얻어 구렁이의 옷을 짜 입힌다. 그리고 모자란 마지막 한 올을 제 머리카락으로 채워 완전한 자기 자신을 찾는다. 물이 영혼의 한 조각이었던 구렁이가 원래 자리로 돌아가 물이는 완전한 영혼을 얻는 것이다.
다음은 이 작품의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주는 기획위원의 말이다.
상처와 대면하고 극복하는 과정은 그 사람이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을 결정하고 그 사람을 결정한다. 『물이, 길 떠나는 아이』가 이야기꾼의 내적 성장기로 읽히는 것은 그 세상과 관계 맺음의 독특함 때문일 것이다. 다른 대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완성을 위해서 다른 사람에 기여해야 하고,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잘 이해받지 못하며, 이해받지 못하면서 오직 자기완성의 길로 가는 그 과정 자체가 다른 사람에게 빛이 되는 그 길이야말로 이야기꾼의 길일 것이다. _기획의 말 중에서
사람은 그 누구도 완벽하게 태어나지 않아요. 공부를 잘하는 아이도, 농구를 잘하는 아이도, 춤을 잘 추는 아이도, 얼굴 예쁜 아이도, 부잣집 아이도 다 부족한 게 있어요. 그건 아마도 하늘나라 사람들이 우리들을 세상에 내보낼 때 그리 한 거 같아요. 부족한 것은 살면서 채우라고, 부족한 사람들끼리 서로 의지하며 채워 주며 살라고 일부러 그런 거 같아요. _작가의 말 중에서
어린이 도서관에서 만나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그것을 토대로 어린이들의 감성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동화들을 써온 작가는 한겨레 아동문학작가학교에서 동화 쓰기를 공부하고 『어린이문학』 편집자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부천 어린이 도서관 ‘동화기차’에서 좋은 어린이책을 소개하고, 어린이책 활성화를 위해 애쓰고 있다.
글쓴이 임정자
1966년 경기도 하갈기에서 태어났다. 1998년 월간 『어린이문학』에 단편동화 「흰곰인형」을 발표한 뒤로 『동동 김동』 『어두운 계단에서 도깨비가』 『무지무지 힘이 세고 대단히 똑똑하고 아주아주 용감한 당글공주』 『금방울전』을 냈다.
그린이 지혜라
충청도 예산에서 태어나 수유리 산 밑에서 오랫동안 자랐다. 대학에선 일어일문학을 공부했고 현재는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