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어린이 책 서가를 돌다 발견한 이 책에 나는 순식간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 몰래 기어 들어가곤 하던, 먼지 쌓인 퀴퀴한 다락방의 은밀한 기쁨을 다시 맛볼 수 있었다. 자기만의 다락방이 필요한 아이들과 아직 그 세계를 잊지 못하는 어른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_ 옮긴이 김영하
소설가 김영하가 발견한 러시아 아동 문학의 정수!
참을 수 없는 유혹에서 비롯된 걷잡을 수 없는 사건은 할머니 댁에 놀러간 소년이 선반 위의 작은 증기선을 발견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묘한 매력을 풍기며 소년을 내려다보고 있는 작은 증기선은, 진짜와 다름없는 정교한 모습으로 소년의 마음을 한순간에 사로잡는다. 하지만 할머니는 증기선에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하게 하고, 그럴수록 소년의 마음은 증기선에 쏠리게 된다. 급기야 소년은 증기선 안에 분명 소인들이 살고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갖게 되고, 갖은 방법을 동원해 소인 사냥에 나선다. 선실 앞에 사탕을 미끼로 놓아 보기도 하고, 등불을 밝히고 밤을 지새우며 증기선을 감시하기도 한다. 소인을 사냥하기 위한 계획은 점점 치밀해져서, 선실 문 앞에 잉크에 적신 천을 놓아 둘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기회를 엿보던 소년은 외출할 때마다 항상 소년을 데리고 가던 할머니를 꾀병으로 따돌리고 나서, 드디어 사냥감에 손을 뻗친다. 소년은 증기선을 거꾸로 들고 흔들어 보기도 하고, 굴뚝에 손가락을 넣어 보기도 하지만, 철로 만든 난공불락의 요새 안에 숨은 소인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결국 소년은 부엌에서 칼을 가져와 갑판 틈으로 칼을 집어넣고 증기선을 흔들어대기 시작한다. 갑판은 헐거워졌고, 이제 작은 줄사다리만 끊으면 갑판 아래의 녀석들을 덮칠 수 있다. 벌어진 갑판의 틈 사이로, 안절부절못하는 소인들의 웅성거림이 손에 잡힐 듯 들려오는 것만 같다! 과연, 소년의 소인 사냥은 성공할 수 있을까?
마치 잘 짜여진 한 편의 스릴러물을 보는 듯한 흡인력과 탄탄한 구성을 갖추고 있는 이야기 속에 소인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호기심 넘치는 작은 소년의 상상 속에서 벌어지는 소인 사냥의 과정은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긴박하게 진행된다. 소설가 김영하는 미국의 어느 대학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한 순간, 작은 증기선을 발견한 소년처럼 이야기에 순식간에 빠져 들었다고 한다. 김영하의 유려한 번역으로 소개되는 『작은 사냥꾼』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잠재되어 있는 금지된 것에 대한 호기심과 열망을 작은 소년의 모습을 통해 보여 주고 있다.
금지된 것의 은밀한 유혹!
신이 인간을 만들었을 때, 신은 인간에게 모든 것을 허락하였다. 인간은 무엇이든 마음대로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의 열매만은 먹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인간은 허락되지 않은 단 한 개의 열매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만다. 인간의 호기심과 금기에 대한 욕망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신의 영역인 하늘에 닿고자 바벨탑을 쌓았고, 판도라는 열어서는 안 되는 상자를 열었는가 하면, 이카루스는 가까이 가서는 안 되는 태양을 향해 날갯짓을 했고, 파에톤은 아폴론만이 다룰 수 있는 마차를 몰다가 목숨을 잃고 말았다. 신화의 시대를 지나 인류는 눈부신 진보를 거듭했지만, 금지된 것에 대한 관심과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오히려 신과 인간의 대립에서 어른과 아이로 전이된 대립을 통해 신이 죽은 이 세상에 금기를 설정하는 권위의 대상이 인간으로 옮겨졌음을 보여줄 뿐이다.
작은 사냥꾼 보류슈카가 보여 주는 ‘소인 사냥’은 금기를 설정한 어른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보이기도 하고, 작은 목적을 위해 이성을 잃고 모든 것을 버리는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금기에 대한 욕망은 여전히 묘한 매력으로 우리를 손짓한다. 작은 증기선 안에 소인 따위는 없으리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갑판을 뜯어내기 위해 칼로 줄사다리를 끊어내는 보류슈카를 따라가던 독자들은 ‘어쩌면 한 명 정도는 잡을 수 있을 거야!’라고 외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절대적인 금기일수록, 절대적인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작은 사냥꾼』의 이야기는 할머니가 망가진 증기선을 발견하지 못한 채 끝나 버린다. 하지만 독자들은 알고 있다. 할머니의 눈을 잠깐은 속일 수 있겠지만, 결국은 모든 것이 탄로 날 것이라는 사실을. 그렇기 때문에 극적 긴장감은 책장을 덮은 후에도 여운으로 남아 우리를 놓아 주지 않는다. 보류슈카는 과연 어떻게 될까? 그 판단은 이제 독자의 몫이다. 다만 작가는 은밀한 유혹에 대한 욕망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이며, 독자 또한 자신 앞에 놓인 금기를 사냥하려는 또 하나의 사냥꾼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린이 장한순
로마국립미술원 장식미술학과에서 문화재 보존 복구와 판화,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다. 로마에서 세 번의 그룹전에 참여했고, 한국일러스트학회(SOKI) 공모전에서 특선으로 입상하였다.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는 그림을 그려 오랜 생명력을 가진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옮긴이 김영하
연세대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95년 계간 『리뷰』에 단편 「거울에 대한 명상」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호출』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와 장편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아랑은 왜』 『검은 꽃』, 산문집 『포스트잇』, 영화산문집 『굴비낚시』 『김영하·이우일의 영화 이야기』가 있다. 문학동네신인작가상과 현대문학상을 수상하였고, 2004년에는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이산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수상하며 문학사에 전례 없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옮긴 책으로는 칼데콧 상 수상작가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그림책 『벤의 꿈』『리버벤드 마을의 이상한 하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