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테나와 리베로의 비평
『비평의 길』은 리베로 평론가로 기억되는 이성욱의 문학평론가로서의 면모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평론집이다.
발문을 쓴 김응교 시인은 그의 비평을 ‘안테나와 리베로의 비평’이라고 평한다. 즉, 그는 ‘20세기와 21세기의 나들목에서 문학이 발신한 전파를 빨아들이듯 흡수하고 고민한 안테나’였으며, 항상 현장에서 ‘비평 대상의 소재, 방법, 영역 등을 항상 새롭게 사유했던 리베로 평론가’였다. 이 책은 7, 80년대 민족·민중문학에서부터 90년대의 포스트모던한 문화현상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관심과 문제의식을 보였던 그의 평론이 지나온 ‘길’의 방향과 갈래의 전모를 조망할 수 있게 한다.
『비평의 길』은 모두 5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90년대 문학비평에 대한 성찰이다.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의미에 대한 점검에서부터 비평과 상업주의의 공모, 논쟁과 토론의 부박함, 비평가의 권력집단화 등 90년대 비평의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문학과 비평의 존재 이유를 진중하게 모색하고, 비평이 닫힌 텍스트주의를 넘어 자신의 공간과 지평을 규정하는 역사적 형식들을 탐구하는 일로 확장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제2부는 이인화의 소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의 표절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이성욱이라는 이름을 널리 알린 「‘심약한’ 지식인에 어울리는 파멸」 등, 이른바 ‘신세대문학’을 둘러싼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에 비판적으로 개입했던 글들이다. 단순히 표절 사실이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영향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러한 작품들의 형식적, 내용적 특징이 작가와 작중 인물이 드러내는 현실 인식의 왜곡과 허무주의, 청산주의적 세계관의 파탄에서 비롯되었음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있다.
제3부는 민족·민중문학에 대한 애정이 담긴 7, 80년대 소설들에 대한 작품론이다. 조세희 김호창 안재성 윤정모 이은식 등의 작품을 꼼꼼히 읽고 검토하며 시대적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모습에서 그의 현실 인식의 바탕을 확인할 수 있다.
제4부는 90년대 소설의 현장에서 써낸 작품론이다. 은희경 백민석 임철우 윤대녕 심상대 김영하 김영현 오정희 이문열 김형경 채영주 박상우 이순원 고원정 등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분석하며 그로부터 90년대 소설의 내면화 경향에 대한 비판, 80년대에 대한 반성적 성찰, 광주민중항쟁을 다룬 소설들의 성과와 한계에 대한 평가, ‘키치’와 이른바 ‘키보드 문학 세대’의 등장이라는 새로운 경향에 대한 적극적 해석 등 다양한 주제를 이끌어내는 글들은 그의 전방위적인 관심과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제5부는 김지하 백무산 유하 윤중호 안도현의 시에 대한 작품론과 시인론이다. 김지하 시의 변모과정을 따라가며 그 일관성과 변화를 짚어내고 백무산과 유하에게서 현실에 맞서는 시적 치열성을 읽어내며 안도현의 시에서 시인의 치열한 연단(鍊鍛)의 자세를 보는 시인론은 곧 평론가로서 새로운 현실 변화를 바라보며 ‘현실 전반과 여물게 몸을 섞’는 저자 자신의 태도와도 겹친다.
그는 생전에 ‘각 이론 영역과 실제 비평의 각 장르를 무상히 넘나들면서 화엄적인 문화예술적 행동대원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때이른 그의 죽음은 그 꿈이 현실로 만개하는 것을 가로막아버렸지만, 때늦은 이 평론집은 뒤늦게나마 그가 꿈꾸었던 ‘문화와 문학운동의 상호소통’에 대한 증표를 우리에게 또렷이 보여주고 있다.
명민한, 그리고 자유로운 비평가
나는 아직도 도처에서 이성욱의 그림자를 본다. 살아생전 언제나 그랬듯이 어드메에선가 슬그머니 싱거운 웃음을 물고 나타날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한다. 어느 해 봄인가 우리는 그의 고물차를 몰고 정처 없이 비 내리는 남도 주유에 올랐었다. 차 뒷좌석엔 뽕짝을 비롯한 흘러간 노래 테이프만 한 포대 든 자루가 있어 내내 갈아끼우느라 바빴다. 그는 내가 알기론 우리 시대에서 유일하게 학삐리와 논다니의 거시기를 두루 갖추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고 나서 어느 날 그는 생의 절정에서 문득 사라졌다. 어디로 갔는가, 이 사람! 허 참…… 김영현(소설가)
처음이겠거니 하고 가보면 이미 오래 전에 다녀간 흔적이 있어 나를 놀라게 한 이가 있었다. 처음이니 성글겠지 하고 달려들어보면 빈틈이 보이지 않아 더욱 나를 놀라게 한 비평가가 있었다. 이성욱이다. 이성욱은 계급모순이나 분단의 현장에서부터 주간지, 축구, 유행가, 뒷골목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현존재를 규정하는 모든 삶의 영역들을 분주하게 찾아나설 뿐만 아니라 바로 그곳에서 사회가 변화하는 기운이라든가 새 시대 출현의 징후들을 민감하게 읽어내는 그런 비평가이다. 이성욱의 비평은 이렇게 조세희에서 하루키에 이르는 그 다양하고도 이질적인 텍스트를 누비면서도 거의 모든 텍스트의 밀도와 의미를 정확하게 포착하는 것은 물론 그 텍스트가 배제한 현존들을 놀라울 정도로 예리하게 짚어낸다. 하여, 어느 선배 비평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성욱의 비평을 읽는 것은 즐거우면서도 무섭고 무서우면서도 즐겁다. 한때 이성욱과 같은 명민한 사람과 같은 시대에 비평을 한다는 것이 한없이 부담스러웠는데, 막상 그가 없고 보니 그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가를 알 수 있을 듯하다. 문득, 그가 없는 여기가 너무 허전하다. 류보선(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