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S 노트
여행의 목적이 관광이든 혹은 자아 성찰이나 더 넓은 시야를 얻기 위함이든, 그 전제는 ‘돌아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모든 것을 내던지고 저 멀리 아프리카로 떠나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기까지 많은 여행경험이 있던 것도, 충분한 정착자금을 지녔던 것도 아니다. 그는 바람처럼 모든 것과 부딪치고 싶었다. 햇빛과 대지가 모든 것을 보듬는 케냐의 유혹에 반했고, 그렇게 대초원에 자리 잡았다.
대자연과 평화롭게 거니는 동물들의 모습을 보면서 잊고 살았던 인생의 의미를 하나씩 찾아간다. 현지인들의 틈바구니 속에서는 오늘날 케냐의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을 보여준다. 전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다양성을 인정하고 다른 삶의 방식을 체득해 가는 과정에서 또 다른 삶의 방식이 있음을 깨닫는다.
아직은 남의 일, 멀게만 느껴지는 사파리 여행을 직접 기획하는 그의 이야기에는 <동물의 왕국>에서나 보았던 다큐멘터리와는 또 다른 아프리카의 매력이 있다. 찾기 힘든 사파리 여행에 관한 정보와 충실한 팁도 빼놓지 않았다. 풍부한 사진 자료를 활용해 아프리카의 공기를 생생히 포착했다. 그곳에서 만난 생경한 풍경과 멀고 먼 케냐에서 겪게 되는 에피소드, 광활한 대지와 햇빛과 바람이 우리를 유혹한다.
진화에 진화를 거듭 중인 여행서 시장에서『케냐의 유혹』은 한걸음 더 나아간 책이다. 단지 아프리카를 향한 동경만 담았다면 ‘가보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에서 그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저자가 한국에서 자라서 케냐에 정착하기까지의 궤적을 따라가며 ‘떠나기’를 머뭇거리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다.
여타 여행에세이에 정보와 감성이 주로 담겨있다면,『케냐의 유혹』은 동시대를 사는 한 사람이 어떻게 이 땅을 박차고 나갔는지, 그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때로는 담담하게 그려낸다. 이 책은 일상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꿈꾸는 로망을 두 발을 딛고 선 현실로 치환시킨 저자의 모습을 켜켜이 담아서 독자들이 충분히 그에게 귀 기울일 수 있도록 했다. 우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저자의 고민과 그 고민 끝에 떠나기를 결심한 저자의 이야기는 항상 주저하며 부러워하기만 하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 바람을 따라간 땅 아프리카, 희망을 내어주다
‘당신의 소중한 딸 손에 평생 물 묻히지 않겠습니다’라고 약속드리진 못했지만
그녀의 가슴에 눈물 흐르게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강남의 큰 아파트에서 살 수는 없겠지만
그녀와 우리의 아이들을 저 넓은 아프리카 자연의 품 안에서 살도록 하겠습니다.
한 손엔 신부의 손을 잡고 한 손엔 압력 밥솥을 들고 비행기에 오르다 (본문p.22)
하지만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의 불만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곳은 우리가 상상해 왔던 것하고는 엄청난 거리가 있는 먼 곳이며, 이해 불가능한 정도의 일들과 풍경이 매일매일 끊이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말하고 싶다. 이곳에서의 희망이란 절대 물질적 희망이 아니라고. 물질적으로 넉넉한 것을 원한다면 굳이 이곳에 올 필요가 없다고. 부족한 것 천지이고 아무리 돈이 많아도 구할 수 없는 것이 수두룩한 이곳 케냐에 왔다면 마음이나 가득 채우고 가라고.
얼룩말 무늬가 그려진 포르쉐 (본문 p.75)
모든 걸 버렸더니 하나도 가진 게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저에겐 초원이 있고 저 별들이 있습니다.
외로울 때 초원에 나가면 내 친구들, 사자와 얼룩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걸 바라지 않는 착한 꿈이 있습니다.
하나도 가진 게 없다는 게 이렇게 자유로운 줄 몰랐습니다……
모든 걸 버렸더니 하나도 가진 게 없습니다 (본문 p.83)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바쁘지 않아서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 좋다고.
우리집은 작고 가구가 많지 않아 청소하기 편리하다고.
아이들에겐 비싼 장난감보다 정원의 흙장난이 더 정서에 좋다고.
부자들은 물건 싸게 사는 재미가 얼마나 좋은지 모를 거라고.
매끈한 고급차를 타며 흠집 날까 스트레스 받기보다는
털털대는 내 차가 속 편하다고.
부자가 부러울 때 (본문 p. 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