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에이터와 카에어컨 등을 제조하는 덴소 니시오제작소는 덴소의 여러 공장 중에서도 최대 규모다. 현장 게시판에는 여기저기 OO실력경쟁 XX시합 등의 게시물이 붙어 있다. 각종 작업 실력을 겨루는 작은 이벤트를 알리는 게시물들이다. 외부인들은 그 종류의 다양함에 놀란다. 정규 작업 시간에 지장이 있지 않을까 걱정할 정도다. 그러나 공장의 사람들은 “항상 똑같은 일을 하고 있으면 쉽게 질리고 지치게 되니 기분전환을 하는 겁니다. 오히려 자극이 되고 화기애애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이기게 되면 많은 사람 앞에서 상도 받고 칭찬도 듣고, 그러는 것이 즐거운 거죠."라고 말을 한다. 이런 대형 공장에서 직원들이 현장이 재밌다 작업이 즐겁다는 반응을 보이기란 쉽지 않다.
최강의 기능집단 덴소
공장의 직원들이 작업이 즐겁고 재미있다고 말하는 회사. 생산 현장의 기능이 첨단 기술과 동등한 대접을 받는 회사. 직원의 97가 이직 없이 정년퇴직까지 근무하는 회사. 20세의 기능직 여직원이 검사부에서도 OK한 제품의 생산라인을 멈추게 하는 회사. 그 회사가 바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일본의 자동차부품회사 덴소다.
엔진 관련 부품, 스타터 등 전원공급 시동 시스템, 카에어컨과 라디에이터 등 자동차용 냉난방기기, 카 일렉트로닉스의 여러 제품을 생산하는 자동차부품제조사 덴소는 도요타자동차에서 니혼덴소(日本電裝)로 분리한 1949년 이후 50여년 만에 23조 원(2002년 기준)에 달한 매출을 올리는 회사로 성장했다. 이는 일본 자동차 관련 회사 가운데 도요타, 혼다, 닛산에 이어 4위에 해당하며, 부품제조사로는 미국의 델파이, 독일의 보쉬와 함께 TOP3를 형성하는 규모다. 도요타자동차의 계열사로 “도요타의 기술력을 알고 싶거든 먼저 덴소를 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으면서도 ‘탈도요타 경영’으로 도요타와의 거래는 총 매출의 50를 넘지 않는다. 또한, 덴소의 부품이 들어 있지 않은 일본 자동차가 거의 없어서 ‘덴소 인사이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본 자동차산업에서 덴소의 존재는 독보적이다.
『덴소 인사이드』는 바로 이런 덴소 성공의 요인을 깊숙한 곳까지 탐구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키워드는 ‘사람 ’기능 ‘현장. 도요타의 경쟁사라 할 수 있는 혼다 출신의 자동차전문가인 저자는 덴소의 성공 요인을 ‘사람을 최우선을 여기며 ‘기능과 ‘현장을 중시하는 문화풍토에서 찾고 있다.
혼다식 인재 양성과 덴소식 인재 양성
혼다 출신의 저자는 일본의 전통적 인재 양성과도 대비되는 덴소의 인재 양성 방식을 혼다와 비교하면서 요약하고 있다. 일본은 사람을 대가를 지불하고 고용하는 노동력이라고만 보는 경향의 서양과 달리 사람을 중요한 경영 자원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인재 양성을 커다란 경영과제로 생각하고 있다. 이런 인재 양성은 많은 기업에서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데, 혼다의 경우는 학벌도 파벌도 용납하지 않고 규칙이나 조직 따위 안중에 두지 않고 현장만을 생각했던 혼다의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의 정신을 이어받아 직함이나 조직 질서를 중시하지 않고 연구개발이든 생산현장이든 개개인에게 많은 권한과 책임을 부여한다. 혼다의 인재 양성은 한마디로 ‘미니 혼다 소이치로 만들기라 할 수 있다고 한다.
덴소의 인재 양성은 전혀 다른 모습을 띤다. 기업내학교를 통해 고등학교 과정부터 기능인을 길러내는 교육체제, 국제기능올림픽 금메달을 꿈꾸며 여러 수직, 수평의 네트워크를 통해 기능을 전수하는 전통, 국가에서도 공인한 자체 기능검정제도와 다양한 형태의 기능경진대회를 통한 동기부여, 생산 현장과 기능을 중시하는 문화와 활기가 넘치는 공장. 어쩌면 덴소의 인재 양성은 ‘양성이라 부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인재가 자라는 장을 만들기는 하지만, 인재를 ‘기르는 것이 아니라 인재가 자라는 것을 기다린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회사가 인재를 억지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책을 따라 구체적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품질을 결정하는 것은 다름 아닌 고객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는 품질 검사 담당의 스즈키 세츠오. 그는 젊은 시절의 쓰라린 체험을 통해 이런 철학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이 담당했던 제품이 품질 불량으로 통째로 반품되자 상사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듣게 된 그는 그 질책이 부당하다는 보고서를 쓸 생각을 하게 된다. 보고서를 제대로 쓰려다 보니 품질 관리에 관한 책을 여러 권 독파해야 했다. 무려 1년 가까이 꼼꼼히 써내려가면서 결국 깨닫게 된 것은 도면에 충실하고 규격도 기준도 충족했지만 품질은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결국 4백자 원고지로 100매 이상이나 되는 보고서의 결론은 ‘저의 잘못이었습니다였다. 이왕에 작성한 것이어서 자신을 꾸짖었던 상사에게 제출했는데, 이 보고서는 결국 사장에게까지 올라가 사장 표창을 받게 되었으며, 그 보고서는 현장에서 품질관리 바이블로 통하고 있다.
품질 검사 담당 스즈키 세츠오가 오토바이의 플라이휠 마그넷 생산 라인을 체크하던 때의 일. 어느 여자 작업원이 나사가 이상하다, 나사를 조여도 조이는 감각이 다르다고 호소했다. 검사 리스트에 따라 차례로 점검을 해보았지만 전혀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상이 없으니 작업을 계속해도 좋다는 지시를 내렸으나 그 여 작업원은 여전히 이상하다면 다시 조사를 해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해왔다. 워낙 강력하게 주장을 해서 어쩔 수 없이 나사를 절단하여 현미경으로 조사해보니 대부분의 나사가 머리 아래로 균열이 나 있었다. 오토바이 엔진의 강한 진동이 걸리는 나사여서 나사 머리가 떨어져나가는 날에는 엔진이 갑자기 정지하여 커다란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 들어온 5년 경력의 스무 살 여 작업원의 몸으로 익힌 감각 덕분에 큰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다. 그녀는 기능 감각뿐 아니라 자신이 담당하는 제품의 의미와 역할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덴소는 덴소 공업기술 단기대학교를 두어 기업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덴소 공업기술 단기대학교는 중학교 졸업생를 위한 3년 과정(공업고교 과정), 고졸자를 위한 1년 교육 과정(고등전문 과정), 고졸 후 2년의 실천기술 교육(단과대학 과정)의 세 단계의 기업 내 교육체제를 갖추고 몸과 마음과 기술을 두루 함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런 식의 체계적 교육 체제를 갖춘 기업은 일본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 세 가지 교육 과정 모구 수업료를 받지 않고 오히려 수당을 지급한다. 교육생들은 덴소의 사원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다.
국가기능검정제도가 대상 직종의 제한으로 덴소 기능사원의 20밖에 시험을 칠 수 없자 덴소는 자체적으로 사내기능검정제도를 둔다.(이 덴소의 사내기능검정은 후에 노동성이 국가기능검정과 동등한 자격을 인정한 일본 최초의 기능검정제도가 된다.) 또한 기능검정 1급 합격자를 대상으로 하는 컨테스트인 ‘상급 기능경기회, 파트타이머도 참여할 수 있는 기초 수준의 ‘초급 기능경기회, 협력회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능경기대회’ 등 다양한 형태의 경쟁 대회와 축제 성격의 이벤트를 실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덴소는 경쟁과 공생의 분위기 속에서 동기를 부여하고 직원 스스로 잘하고자 하는 의욕을 고취시키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덴소의 기능 양성 체제와 기능인을 중시하는 기업 풍토에서 공업왕국 일본의 명성과 자존심을 지켜낼 희망을 발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역대 국제기능올림픽에서 통산 14번이나 우승했던 저력을 가진 우리나라지만, 국제기능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통닭 배달로 생계를 유지하는 등 메달을 딴 우수 기능인력도 일자리를 제대로 얻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점점 심각해지는 기능직 기피 현상은 기능인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홀대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기능인력을 우리 사회와 기업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보지 않고, 얼마든지 대체가능한 ‘기능’으로만 본다면, 이 책에서 지적한 대로 제조업은 공동화되어 국가경쟁력이 약화되고 우리 경제의 기반이 허물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덴소와 같은 인간중심적인 직업훈련 시스템과 미래지향적인 기능인 정책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