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과 나는 한 몸이니 이해하라!”
형제보다 끈끈하고, 연인보다 간절했던
빈센트와 테오의 짧지만 찬란한 삶의 기록!
소설로 부활한 반 고흐 형제
아트북스 ‘아트 픽션’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인 『나의 형 빈센트 반 고흐』는 빈센트와 테오 반 고흐 형제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사랑을 그린 소설이다. 이 책은 빈센트 반 고흐의 동생이자 유일한 후원자였던 테오가 형을 따라 죽기 전 6개월간의 삶을 무대 삼아, 화가의 일생과 형제의 사랑을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보여준다. 소설은 1890년 7월 빈센트가 권총 자살하고 6개월 후 형과 똑같은 증세로 정신병원에서 죽기까지 테오의 고통스런 여정을 그린다.
지은이는 프랑스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와 파리, 네덜란드의 레이던과 위트레흐트를 배경으로 테오의 입을 빌려 화가의 삶을 조명하는 동안, 형을 닮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며 서서히 미쳐가는 테오의 말년을 긴박감 넘치는 문체로 그려낸다. 살아생전 주고받은 650여 통의 편지로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들의 간절한 사랑은 소설 속 살아 움직이는 등장인물들과 이야기 구조를 통해 보다 직접적이고 절실한 것으로 되살아난다. 마치 편지에 문자로, 그림에 형태와 색으로 박제되어 있던 형제의 평면적인 삶이 입체감과 생명을 얻어 숨을 쉬고 움직이며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반 고흐 형제의 삶을 조명한 국내 최초의 소설인 이 책은 빈센트의 고뇌와 예술을 향한 불같은 열정, 형제의 끈끈한 우애를 입체적으로 복원하는 한편, 이미 출간된 숱한 평전들에서 볼 수 없었던 형제의 이면을 내밀하게 묘사한다. 애틋한 사랑인 줄로만 알았던 빈센트의 무서운 집착, 헌신적인 줄로만 알았던 테오의 마음속 갈등 등, 아름답게만 그려내느라 다른 평전들이 미처 들여다보지 못한 형제의 복잡한 심리를 예민하고 성실하게 포착해냈다. 이제는 하나의 신화가 되어버린 반 고흐 형제의 삶을 책과 미술관 밖으로 끄집어내 현실 속에서, 인간의 눈높이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언제나 보이는 것만, 마음으로 느끼는 것만 온 신경을 곧추세워 열심히, 솔직하게 그리고자 한 빈센트의 예술관, 세상이 뭐라 해도 오직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한 길만 고집한 테오의 삶의 방식에 가장 근접한 기록 방식이라 하겠다.
“상상하되 꾸미지 않았다”
이 소설을 쓴 쥐디트 페리뇽이 한 말이다. “상상하되 꾸미지 않았다.” 철저한 조사와 연구를 통해 쓰인 이 책은 과연 이제까지 나온 평전들과 비교해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반 고흐 예술세계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담고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취재를 통해 입수한 사실들에 작가의 상상을 보태 좀더 맛있고 손에 만져지는, 현실감 넘치는 정보를 제공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고 시골 들판을 뛰놀며 곤충과 식물을 채집하던 화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 기차 차창이나 요양원 창문으로 보이는 하늘과 나무들에 관해 편지에 적어 보낸 이야기 등을 통해 우리는 빈센트의 자연에 대한 열렬한 관심과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일본 판화에 심취해 있던 모습을 보여줄 때는 일본 화가들의 “명징한 작업 방식, 신속한 붓놀림, 섬세한 신경과 담백한 감정” 등에 대해 화가가 직접 이야기하게 함으로써 화가가 일본 미술에서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정확히 짚어 들려준다. 또 빈센트가 그림들을 바닥에 펼쳐놓고 바라보는 광경을 묘사한 “색채와 풍경들, 빛과 인물과 하늘들, 낮과 밤을 포함한 온갖 여정이 내 아파트 바닥을 마치 살아 숨 쉬는 덩굴줄기인 양 기어 다니고 있었다”는 문장에서는 그의 그림에서 막연하게나마 느꼈던 힘찬 생명력을 온몸을 휘감는 듯한 덩굴줄기의 감촉으로 생생히 느낄 수 있다.
그동안 너무 많이 접해 너무 당연한 무색무취의 ‘사실’이 되어버린 반 고흐 형제의 고통과 사랑, 성향 또한 소설의 내러티브를 통해 다시 맛과 향과 색을 얻는다. 지은이도 강조했듯 반 고흐 예술의 핵심은 자연과 인간이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관심을 낳은 것은 ‘가족’이었다. 평생 가족을 그리워하면서도 함께이지 못했고, 인정받고 싶었지만 모두가 반대하는 길을 갈 수밖에 없었던 데서 생긴 화가의 고독감, 사랑을 향한 끝없는 갈망이 그림 곳곳에 묻어 있다. 지은이는 부모의 마음에 들기 위해 목사의 길을 선택하고 흔들리지 않게 지켜달라며 기도하는 빈센트의 모습을 통해 이 사랑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묘사한다. 또한 화가의 그림에 성 없이 ‘빈센트’라는 이름만 서명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화가로서 자신의 운명을 가족의 그것에서 돌려놓았다는 징표”를 발견하고 가족의 몰이해에 대한 빈센트의 절망감과 눈물겨운 홀로서기를 호소력 있게 전달한다.
형을 향한 테오의 애틋한 사랑 역시 지은이의 감칠맛 나는 표현을 통해 좀더 강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형을 먼저 떠나보내고 테오가 느끼는 고통을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듯한 아픔”으로 묘사하는가 하면, “오래 전부터 이곳 형 침대 머리맡에 와 있는 거나 다름없었어”라는 말로 형에 대한 염려를 표현하고, “이미 끝나버린 형의 인생을 조각조각 끌어다 기워 맞추고 있는 내게 형의 죽음은 한 마디로 침을 뱉은 거나 같아”라는 말로 자신을 버리고 떠난 형에 대한 원망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이 소설의 미덕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흥미롭게 재구성했다는 데만 있지 않다. “상상은 하되 꾸미지 않았다”는 지은이의 리얼리즘이 극대화하고 한층 빛을 발하는 지점도 바로 이 부분이다. 그는 우선 반 고흐 형제의 사랑을 보기 좋게 포장하는 대신, 동생을 향한 빈센트의 지극한 사랑이 집착으로, 다시 애증으로 변모해가는 과정과, 그런 형을 보며 죄스러워하고 마음 아파하는 테오의 심리를 자세히 그려낸다. 뿐만 아니라 언제나 헌신적인 인물로만 그려졌던 테오도 사실은 자신의 행복을 두려워하는 형의 모습에 당황하고 그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쓰면서도 그러지 못해 괴로워했음을 보여준다. 소설 속에서 테오는 집에 쌓여가는 빈센트의 그림들 때문에 공간이 부족해 답답하다고 푸념하기도 했으며 “진심으로 갈망해오던 공동 작업이 거추장스런 핑계거리로 전락해버렸다고 생각하”는 형의 마음을 읽으면서도 서둘러 오베르로 내려가는 형을 애써 붙들지 않는다.
더 큰 아이러니는 빈센트가 죽고 나서 점점 그를 닮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혼란스러워하는 테오의 모습에서 찾아진다. “살아 숨 쉬는 화가가 아니라 죽은 화가들만 팔아먹고 사는” 장사치라며 자신을 비하하면서도 빈센트를 칭송하는 사람들에게 “그 사람이 바로 나의 형이었다”고 말해주고 싶어할 만큼 형의 예술가 기질에 큰 경외심과 동경을 품은 테오였다. 하지만 이제 자신의 “부조리한 심리상태, 뭔가에 사로잡힌 마음, 몽상이 전권을 휘두르고, 생활에 집중하기 어려워하는 태도들”에서 형의 모습을 본 그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진다.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자신으로선 꿈도 꿔보지 못한 고통스런 세계에 빈센트가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토록 살갑고 헌신적인 동반자였지만 빈센트가 죽고 나서야 테오는 비로소 형과 같은 영혼을 지니게 된다. “나는 더이상 울지 않는다. 그러나 말도 그만큼 없어졌다. 슬픔은 화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용암과 같아, 내 안에서 쉬이 굳어버리고, 나날이 내 목소리를 말라 터지게 만든다.” 이제 테오에게 편지 따위는 필요치 않다. 스스로 빈센트가 되었으니까. 이것이 우리가 몰랐던 반 고흐 형제의 진정한 사랑의 실체이다. 편지 위의 핑크빛 우애를 넘어선, 무서울 만큼 집요하고 절절한 사랑이다.
쥐디트의 소설이 들려주는 또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 바로 ‘가족’이다. 반 고흐 삶의 핵심, 형제의 우애에 가려 그동안 빛을 보지 못한 숨은 조연들(화보에 실은 ‘나오는 사람들’에서 그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중심에 어머니가 있다. 자식을 이해하지 못해, 상처를 어루만져주지 못해 가슴앓이 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자세히 묘사된다. “신 말고는 어느 누구 앞에서도 결코 허리를 굽히는 일이 없었”던 어머니는 언제나 꼿꼿했고, 도덕관념이 투철했으며, 사는 일에 단련이 된 한 그루 고목 같은 여인이었다. 지은이는 이런 어머니의 성품과 자식들을 향한 큰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어렸을 적 형제에게 읽어줬다는 안데르센 동화 한 편을 소개한다. 죽음의 신에게 붙들려간 아이를 되찾기 위해 온갖 고역을 치르고는 결국 그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깨닫고 포기한다는 한 어미의 이야기로, 그녀의 독실한 신앙과 숙명론적인 세계관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형을 묻고 돌아온 테오는 그런 어머니에게 빈센트가 비록 가족의 희망과 관습을 끝까지 외면했지만 그럼으로써 얼마나 가치 있게 살다갔는지, 약간의 거짓과 과장을 섞어 이해시키려 한다. 그것이 살아생전 빈센트가 마땅히 누렸어야 할 평가들이라고 테오는, 그리고 지은이는 믿었기 때문이다. 화가를 향한 지은이의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테오의 아내인 요한나의 이야기도 절절하다. 결혼 전 ‘형과 나는 한 몸이니 이해하라’는 경고부터 받은 그녀는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말없이 남편을 내조하고 ‘빈센트’라 이름 지워진 아이를 키웠다. 빈센트에게 가정을 송두리째 빼앗긴 채 빈껍데기만 붙들고 살아야 했던 요한나의 아픔은 소설 전반에 걸쳐 반 고흐 형제의 고통스런 사랑과 동등한 무게로 그려진다. 빈센트의 광기, 테오의 맹목적인 헌신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대가를 치르게 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언제나 세상에 버림받고 고통에 살다간 희생자로 그려지는 반 고흐 형제가 어떤 이들에겐 가해자이기도 했음을 일깨우는 새로운 시도이다.
반 고흐의 영혼 서린, 그림 같은 소설
하지만 『나의 형 빈센트 반 고흐』는 이야기가 전부인 소설이 아니다. 감칠맛 나고 호소력 있는 문장들을 앞서도 언급했지만, 이 책은 말의 질감과 맛, 색깔, 리듬, 무게에 예민하게 귀 기울이며 쓴 글이다. 이야기를 읽는 내내 입안에 군침이 돌고 귓가에 소리들이 맴돌며 손에는 질감과 무게가 느껴진다. 지은이의 공감각적인 묘사가 독자의 오감을 자극하는 것이다. 특히 소설을 쓰는 내내 반 고흐의 화집을 옆에 두고 있었던 듯 화가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문장들이 자주 등장한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도 어떤 그림일지 쉽게 떠올려볼 수 있을 만큼 감각적이고 자세하다. 예를 들어 “까마귀 우는 소리가 들리고 있어. 장례식에 참석하려고 그림을 박차고 날아 왔나봐”라는 문장에서는 빈센트가 자살하기 전 마지막으로 그렸다는 「까마귀 나는 밀밭」을 떠올릴 수 있다. 또 “두텁게 칠해진 색에서 형이 시달렸을 경련 하나 하나까지 내 몸에 전해져오는 걸 느낄 수 있어. 지칠 줄 모르고 대상에 탐닉하는 형의 그 강한 눈빛도”라는 문장을 보면, ‘해바라기’ 연작의 살집 좋은 마티에르가 손에 만져지는 듯하고, 화가의 강렬한 시선에 몸이 화끈 달아오른다. 이렇게 이야기 구석구석에 화가의 그림이 유령처럼 출몰해 우리의 오감을 뒤흔들며 말을 걸어온다. 마치 빈센트가 되살아나 그림 밖으로, 소설 밖으로 걸어 나오는 것 같다.
이렇게 감칠맛 나는 문장들이 제 맛과 색을 내는 데는 이 책을 옮긴 성귀수의 역할이 컸다. 이미 『오페라의 유령』, 『적의 화장법』, 『모차르트』, 『자살가게』 등 수많은 역서를 통해 호평을 받은 특유의 맛깔스럽고 생동감 넘치는 그의 문체는 특히 이 책에서 빛을 발했다. 타고난 이야기꾼인 지은이의 입담과, 무게 있으면서도 갓 잡은 물고기처럼 싱싱한 옮긴이의 번역이 만나 붉게 타오르는 태양과 샛노란 밀밭을 닮은 반 고흐의 영혼이 또 하나의 질기고 아름다운 생명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