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와 방황 사이의 교차점에서 부르는 아름다운 노래
순화된 언어와 맑은 서정성으로 시단의 주목을 받아온 시인 이동백이 등단 8년 만에 첫 시집 『수평선에 입맞추다』를 펴냈다. 먼 바다의 수평선을 꿈꾸며 “성(聖)도 속(俗)도 모르”고 경계에 선 자의 성찰적 시선을 서정적 시어에 담았다.
시집『수평선에 입맞추다』에는 표제작 「수평선에 입맞추다」를 포함 52편의 시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잘 빚어진 항아리’와 같은 시들에는 시인의 추억과 욕망, 구도의 의지 등이 차곡차곡 담겨 있다.
쫓거나 쫓기는 것의 연속이 나의 길이라면 쫓는 것도 아닌 쫓기는 것도 아닌 어느 묘한 경계에서 떨고 있는 내 몸을 이제는 가끔씩 볼 수 있다. 더이상 쫓아갈 기력도 더이상 달아날 곳도 없을 때 문득 내 발 밑의 그림자처럼 기대어오는 풍경을 읽는다. 나 또한 풍경에 기대어 이 세상 너머에서 들려오는 듯한 자장가를 나직이 따라 부른다.
―‘시인의 말’ 중에서
이동백 시인은 1955년생이다. 우리 나이로 오십이니 첫 시집치고는 늦은 편이다. 그 동안 “적막이 가져다준 편안함을 오래 누렸다” 한다. 그는 대구에서 약국(한국약국)을 경영하는 약사이다. 낮에는 약을 짓고, 밤에는 시를 짓는다. “하루 종일 문틈으로 쏟아져들어오는 질주하는 차량의 소음을” 백양나무숲을 스치는 바람 소리로 바꾸어 들으며 저 “먼 바다에 가 닿”는 꿈을 꾼다(「耳鳴 속의 해일」).
누우면
온몸에서 잔물결이
모기 소리 떼처럼 일어선다
그러나 나는
수평선을 꿈꾸며 쓰러진 나무
(……)
가부좌 틀고 앉으니
옥에 갇힌 몸
내 이제 바위가 되리
―「耳鳴 속의 해일」중에서
누우면 귓속에 해일이 일어 먼 바다를 꿈꾸고(「耳鳴 속의 해일」), 지쳐 꿈도 오지 않을 때면 하이에나가 와 “나를 노려보”지만(「하이에나」), 시인은 결코 저 먼 바다에 가 닿지 못하고 “넓게 펼쳐진 푸른 들판만 내다보고 있”을 뿐이다. 멀리 내다보지만 “낮은 철조망 넘어가지 않”는다(「기린」). 시인은 욕망을 다스려 “바위”가 되고자 하는 “수평선을 꿈꾸며 쓰러진 나무”이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너편 하늘 젖으면 먼저 비가 새는 좌심실”을 가진 시인은 구도에 이르지 못하고 “남몰래 훔친 經 몇 장으로” 가려지지 않는 “비겁한 생”을 부끄러워한다. 그는 “성(聖)도 속(俗)도 모르면서”(「경계의 그늘」) “경계의 그늘에 앉아” 있다. 시인은 경계에 붙박인 채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부끄러움을 가슴에 묻고 진주처럼 아름다운 시어를 키워낸다.
자연의 숨결로 생의 치욕을 정화하는 시인의 구도적 행로
이동백의 시가 보여주는 결곡한 서정에는 가슴 깊이 봉인되고 응축된 생의 꿈틀거림이 있다. 도시의 콘크리트숲에서 포효하는 짐승의 야성은 저물녘의 적막 속에서 황혼빛 회한으로 물든다. 추억 속에서 방황하며 자연의 숨결로 생의 치욕을 정화하는 시인의 구도적 행로는, 비수처럼 달려오는 반란의 햇살에 몸을 맡기며 먼 바다의 수평선을 꿈꾼다. 그리하여 이동백의 시는 성(聖)도 속(俗)도 모르는 경계의 그늘에서 달빛처럼 쌓이는 모래알을 밟으며 굽은 마음의 길을 따라간다. 오형엽(문학평론가)
이동백 시의 가장 큰 특징은 언어의 섬세한 세공이다. 그는 순화된 언어를 고르거나 혹은 모든 언어의 표면을 곱게 간다. 그 소리들은 마치 저녁노을에 비추인 강물의 빛깔들처럼 춤춘다. 무한한 표면이 하나의 수면에 상감되듯 무한한 소리가 하나의 말에 배어 그것을 옹골지게 한다. 정과리(문학평론가)
* 2004년 8월 16일 발행
* ISBN 89-8281-834-0 02810
* 116*186 | 128쪽 | 7,000원
* 담당편집 : 조연주 김송은 (031-955-8865/8862)
슬며시 수평선 끌어당겨 입맞추면
지는 꽃 피는 꽃
나비처럼 나풀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