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와 건축가의 발자취를 찾아나서는 그림-건축 여행
알람브라, 틴턴 수도원, 생라자르역, 수정궁, 에펠탑…… 시대도 다르고 지역도 각각 다른 이 건축물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정답은 모두 화가들에게 영감을 준 건축물이라는 것. 어떤 화가가 풍경화를 그렸는데 그 풍경 속에 우연히 어떤 건물이 있었더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건축물들은 화가의 인생을 바꿔놓을 정도로 큰 감동을 주었고, 몇 번이고 찾아가 되풀이하여 화폭에 담게 할 정도의 힘을 지녔었다. 이런 그림 속에서 건축물은 단순히 배경이 아니라 당당히 주인공이다.
그렇다면 그 반대의 경우는 없었을까? 건축가가 한 점의 그림을 보고 그림 속 건축을 현실에 되살리려고 한 경우 말이다. 물론 있다. 이상의 세계, 혹은 신화의 세계를 담은 그림을 보고 그 이상과 신화가 현실에서 구현되기를 바란 건축가들이 있었다. 클로드 로랭의 ‘픽처레스크’한 그림은 현실에서 정원의 조경으로 다시 태어났고, 피라네시의 판화 「상상의 감옥」은 후대의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그 모티프를 따라 영화 세트나 건물이 지어지기도 했다. 또 에셔는 알람브라 궁전에 감명을 받아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에셔의 그림에 나타난 신비한 건축 공간은 현대 건축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이 책은 이렇게 서로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고받은 화가와 건축가, 그들이 창조한 그림과 건축, 그리고 그 배경이 된 시대상황을 다양한 시점에서 흥미롭게 보여준다. 1권 ‘신화와 낭만의 시대’에서는 고대 그리스 건축에서부터 18세기 영국 정원 건축까지 인류 문명을 대표하는 건축물과 그것을 담은 그림을 살펴보고, 2권 ‘모던의 유혹, 탐색의 시대’에서는 새로움의 기운이 대기를 가득 채웠던 벨 에포크 시대의 그림과 건축을 만난다.
요요마의 연주 DVD가 쓰게 만든 책
저자가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요요마가 연주하는 바흐의 『무반주첼로모음곡』을 담은 DVD를 보게 된 어느 날 찾아왔다. 단순한 연주 실황을 담은 DVD가 아니라 한 곡 당 한 명의 영화감독이 자신의 예술적 상상력을 발휘해 연출한 일종의 음악-영화였다. 그런데 여섯 번째 곡에서 영화감독 지라르는 요요마를 3차원화된 피라네시의 동판화 「상상의 감옥」 안에서 연주하도록 만들었다. 그림이, 2차원의 감옥에서 벗어나 공간으로 나왔던 것이다. 그 장면에 매혹된 저자는 그때부터 미술과 건축이 밀접한 교류를 나눈 장소를 찾아다녔다. 그러기를 3년, 그 결실이 두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오게 된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건축물이 그려진 그림, 그림에 영향 받은 건축물을 보여주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그림과 건물에 관련된 여러 인물들, 그림이 그려진 혹은 건물이 지어진 시대에 대한 풍부한 지식, 그리고 그림과 건축물에 대한 애정이 한데 버무려져 역사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는 성찬이 우리 앞에 차려졌다.
1. 신화와 낭만의 시대
건축, 그림 밖으로 나오다
17세기 프랑스 화가 클로드 로랭의 풍경화는 18세기에 이르러 영국식 풍경정원을 유행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월트셔 주 스타우어턴에 영지를 가지고 있던 재력가 호어 2세는 로랭의 「아이네이아스가 있는 델로스 풍경」에 감명 받은 나머지 자신의 땅을 이 그림처럼 꾸미겠노라 결심했다. 이로써 ‘그림 같은’, 즉 픽처레스크picturesque한 풍경정원 스투어헤드가 탄생했다. 무척이나 고즈넉하고 자연스러워 보이는 이 정원은, 하지만 엄밀한 계획에 의해 철저하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호수가 있어야 할 장소에 호수가 없다면 인공으로 호수를 팠고, 돔 지붕을 가진 판테온도 세우고 팔라디오 풍 다리도 지었다. 한술 더 떠서, 스투어헤드 정원은 로랭이 그림의 영감을 얻었던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를 산책함으로써 읽게 되는 구조로 지어졌다. 정원을 거니는 것은 시집의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역사와 문화를 이야기하는 그림과 건축
티슈바인이 그린 「로마 캄파냐에서의 괴테」는 이탈리아 기행 중의 괴테의 모습을 담고 있다. 오래된 돌무더기에 몸을 기대고 있는 괴테 뒤로, 멀리 둥근 건축물이 보인다. 오늘날로 말하면 수도와 지방을 연결하는 고속도로였던 아피아 가도에 세워진 로마의 귀족 여인 ‘카이칠리아 메텔라의 묘’이다. 왜 초상화에 하필이면 이 건축물을 그려 넣은 것일까.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18세기의 ‘그랜드 투어’ 문화, 에트루리아 문화에서 큰 영향을 받은 로마 건축문화, 메텔라의 묘소가 서 있는 아피아 가도의 유례 등 다양한 이야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