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영혼의 가장 깊은 곳까지 통제하는 전제정권에 관한 알레고리
소설의 배경은 19세기 말 오스만 투르크 제국. 술탄과 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세도가 출신의 마르크 알렘은 신민들의 꿈을 수집하여 해석하는 정부 기관인 꿈의 궁전에서 일하게 된다. 그는 수집된 꿈들을 선별하는 선별부를 거쳐 꿈의 궁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해석부로 발령이 나는 고속 승진을 한다. 그러나 그가 선별부에서 일할 때 무심코 지나쳐버린 꿈이 그의 가문이 역모를 일으키게 되리라는 것을 예언하는 꿈이었음이 밝혀져 그의 외삼촌이 참수를 당한다. 마르크 알렘은 불안감에 사로잡히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는 죄천당하지 않고 오히려 최고위직인 국장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만인이 부러워하는 지위에 오른 마르크 알렘. 그러나 이제 그는 꿈의 궁전이라는 메커니즘 속의 일개 부속품일 뿐 살아 숨쉬는 자연인으로 돌아갈 수 없는 불행한 존재이다.
『꿈의 궁전』은 인간의 외면은 물론, 영혼의 가장 깊은 곳까지 통제하는 전제정권을 고발하는 하나의 알레고리이다. 이 소설은 자유의 개념이 인간의 대지에서 완전히 제거될 수도 있음을 신랄하게 보여준다. 모든 사람들의 꿈을 수집하여 그 꿈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해석하고, 그 의미에 따라 정책을 정하고 반역자를 처단하는 꿈의 궁전은 이데올로기의 자유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전제정권들의 비밀 정보기관을 떠올린다. 꿈의 궁전에서는 문제가 되는 꿈을 꾼 자를 불러들인 뒤 끊임없이 고문하여 그의 머릿속에서 그 꿈을 지워버리고자 한다. 인간의 머릿속까지 철저하게 통제하고자 하는 그들의 의도는 과연 어디까지 가능한 것인가? 그렇게 고문을 당한 자들은 죽음을 맞고, 마르크 알렘은 꿈을 수집하고 해석하는 일련의 작업이 대체 어디에 소용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하는 깊은 회의에 빠진다.
지상으로 끌어올린 지옥을 그려낸 묵시록적 작품
『꿈의 궁전』은 카다레의 작품군 중 전제주의를 다룬 우화풍의 작품에 해당한다. 이 우화풍 작품들은 카다레가 다른 반체제 작가들과는 달리 어둡고 불행한 시대를 사실주의적, 교훈적으로 그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빛난다. 우화와 알레고리라는 장치가 역설적이게도 이야기에 더 강한 적확함과 힘을 불어넣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꿈의 궁전』은 역시 전제주의를 다룬 『H 서류』와는 달리 시종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로 일관한다. 『H 서류』가 전제주의라는 메커니즘에 갇힌 인간 운명의 희비극을 작가 특유의 블랙 유머로 우스꽝스럽게 그린 작품이라면, 『꿈의 궁전』은 카프카나 오웰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묵시록적이며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품고 있다. 그가 이 작품에서 형상화하고자 하는 것은 지옥이다. 그는 꿈의 궁전이라는 지옥을 창조한다. 그리고 그 지옥을 지상으로 끌어올린다. 그 지옥에서는 고유의 언어가 거세당하며(술탄은 마르크 알렘의 가문을 찬양하는 서사시를 알바니아어로 노래하는 음유시인들을 처형한다), 기억(꿈)이 통제당하고, 소통이 금기시된다(꿈의 궁전은 폐쇄적인 조직이며,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절대 외부로 누출되어서는 안 된다). 카다레는 지옥이란 법과 적법성의 시초이며, 인류의 첫 형법이자 권리의 개념이 태어난 곳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그와 같은 지옥은 존재한다. 집단수용소나 정보기관, 복잡한 체계의 관청은 물론이며, 매일 정보를 검색하고 수집하는 한편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도 그와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지옥의 대척점은 어디인가. 그곳은 카다레의 다른 많은 작품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바, 전설과 신화의 땅이다. 『꿈의 궁전』에서 그곳은 마르크 알렘이 그리워하는 알바니아와 봄의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그곳은 꿈의 궁전이 통제하고자 해도 할 수 없는 곳, 생명이 움트고 자유가 숨쉬는 인간의 땅이다.
“오래 전부터 나는 지옥을 형상화하고 싶었다. 지옥은 법이 탄생한 곳이자 인류의 첫 형법이다.” 이스마일 카다레
매우 특별한 자리를 매김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위대한 소설가. 르몽드
『꿈의 궁전』은 운명의 변덕과 국가 앞에서 무기력한 인간에 관한 인상 깊은 초상화이다. 키르쿠스
기이하고, 무어라 규정짓기 어려운 책. 카다레는 탁월한 농담을 재치 있는 솜씨로 우아하게 풀어나간다. 데이비드 R. 슬라비트(소설가, 시인)
이스마일 카다레 Ismail Kadare
매년 유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이스마일 카다레는 1936년 알바니아 남부의 기이로카스터르에서 태어났다. 알바니아 최고의 명문 티라너 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했으며, 26세 때 발표한 처녀작 『죽은 군대의 장군』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의 등장으로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던 알바니아의 정치적 상황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공산 독재정권하의 조국 알바니아의 혼과 집단기억을 문학을 통해 생생하게 되살리는 그의 작품세계는 마르케스의 그것에 비견되며, 전제주의와 유토피아의 위험을 고발하는 헉슬리와 오웰의 뒤를 잇는 반(反)유토피아 가계의 마지막 후손으로 꼽히기도 한다. 우스꽝스러운 비극과 기괴한 웃음의 조화, 우화와 신비에 싸인 놀라운 이야기로 세계적 작가의 자리를 굳혔으며, 1990년 독재정권의 탄압을 이기지 못하고 프랑스로 망명한 이래 그곳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죽은 군대의 장군』 『돌에 새긴 연대기』 『부서진 사월』 『콘서트』 『H서류』 등이 있다.
옮긴이 장석훈
출판기획 및 전문번역가. 서강대학교 철학과와 불문학과를 졸업했다. 리옹 2대학 심리학연구소 2기 과정을 수료했으며, 현재 서울대 대학원 비교문학과에 재학중이다. 영어 및 불어 도서 40여 권을 번역했다.
*2004년 10월 5일 발행
*사륙판 양장/304쪽/값 9,000원
*ISBN 89-8281-892-8 03890
*책임편집: 김지연(031-955-8860)
카프카, 헉슬리, 오웰의 계보를 잇는
거장 이스마일 카다레가 지상으로 끌어올린 지옥,
그 디스토피아에 대한 풍자적 묵시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