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변증법적 시각으로 문화 전반을 분석하는 탁월한 에세이들
이 책의 간판 에세이라고 할 수 있는 「문화비평과 사회」에서 아도르노는 문화와 문화비평이 비판적 의미를 상실하고 현실 개입을 포기하며 소비재가 되어 단순한 이데올로기로 타락해온 현상에 주목한다. "문화비평 전반은 정작 문화를 이루고 있는 인간과는 무관하게 되어버린 총체적인 야만상태"이며, "문화비평가는 삶 자체의 사물화가 과도한 계몽보다는 계몽의 부족에 근거한다는 점, 현재의 편협한 합리성에 의해 인류가 당하는 훼손들은 총체적 비합리성의 상흔이라는 점을 통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아도르노는 현대 사회 전체가 옥외감옥으로 변해 그 속에서 무엇이 무엇에 종속되느냐가 전혀 문제시되지 않을 만큼 모든 것이 한 덩어리가 되는 경향을 지적한다. 아울러 문화비평의 여러 방향을 분석, 검토한 후 이에 맞서는 것으로 변증법적 문화비평(가)을 내세우고 있다.
어떠한 이론도, ´참´인 이론조차, 일단 객체에 대한 자발적 관계를 포기하면 망상으로 뒤집힐 수 있다. 변증법은 문화적 객체에 사로잡히는 상태 못지않게 그러한 측면 역시 경계해야 한다. 변증법은 정신 숭배에도, 정신에 대한 적대관계에도 빠져서는 안 된다. 변증법적 문화비평가는 문화에 가담해야 하며 또한 가담하지 말아야 한다. _본문 중에서
"문화가 일단 전체로서 받아들여질 경우, 이미 문화 자체의 진리 요소, 곧 부정은 소멸한다"는 것은, 아도르노의 핵심 명제인 "전체는 비진리다"와도 상통한다. 기존 지배질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여러 형태의 사고방식에 대한 아도르노의 단호한 거부태세 또한 이러한 맥락에 닿아 있다.
각각 만하임, 슈펭글러, 베블런을 다루고 있는 「지식사회학의 의식」 「몰락 이후의 슈펭글러」 「문화에 대한 베블런의 공격」은 바로 아도르노의 이러한 입장을 드러내고 있는 에세이다. 여기에서는 "아무 탈출구도 찾지 못하는 자유주의자가 독재적인 사회조직에 자신은 반대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의 대변자가 되는" 사례로서의 만하임, 언론의 위력, 대중의 노예화, 독재정치 등과 관련해 뛰어난 예견력을 보이면서도 "현상으로 나타나는 모든 것을 ´모든 것은 이미 존재한 것이다´라는 공식만으로 추상해버리는" 폭력을 가하는 "환멸의 역사철학자"로서의 슈펭글러에 비판의 초점이 맞춰진다. 또 "상품 소비는 약탈의 원칙을 특징으로 하는 역사의 초기 단계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진정한 욕구 충족이나 베블런이 즐겨 삶의 풍요라고 칭하는 것에 복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특권, 지위에 복무한다"면서 베블런의 과시소비설을 비판한다. 「올더스 헉슬리와 유토피아」에서는 지배체제에 의해 욕구가 만들어지고 조작되는 메커니즘을 인상적으로 그려낸 올더스 헉슬리에 대한 아도르노의 관심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물질문명을 야유하며 정신적 가치를 회복하려는 헉슬리의 입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한편 아도르노는 철학자, 사회학자로서의 재능도 뛰어났지만 쇤베르크의 현대음악에 영향을 받은 음악가요 작곡가이기도 했다. 또한 음악비평가로서 고전음악과 대중음악을 가리지 않고 음악의 모든 면에 대해 광범위하게 글을 써왔다. 이 책에도 세 편의 음악비평 에세이가 실려 있다.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론의 핵심이 담겨 있는 「초시대적 유행」에서는 재즈를, "사실상 현재의 전체 이데올로기와 모든 문화산업에 귀속되는 메커니즘들이 두드러지게 표면화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재즈는 유행과 마찬가지로 "사태 자체가 아니라 내보이는 것이 중요"하며 변형 속에서도 규격화되어 있는 컨베이어벨트 방식, 규범화된 즉흥성, 일탈의 제거, 사이비 개성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실내에 어울리게 깨끗이 잘 세척되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제도로서의 재즈, 그 안에 담겨 있는 지배질서에 대한 순응의 계기를 비판하고 있다.
「바흐 애호가들에 맞선 바흐 옹호」는 종교적으로 채색함으로써 바흐를 "중립화된 문화재" "잘 보존된 바로크 식 도시를 위한 오르간 축제극의 작곡자"로 만든 바흐 애호가들에게 이 또한 한 토막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라는 신랄한 일격을 가한다. 아도르노는 그의 음악을 교회의 영역에 묶어놓는 데 반대하며 당시 매뉴팩처를 통해 진행되던 물질적 생산의 합리화 과정과 유사하게 합리적으로 구성된 작품의 이념을 최초로 구체화했다는 데서 바흐의 음악사적 의의를 평가한다.
「아르놀트 쇤베르크」는 현대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12음기법의 창시자이자, 아도르노가 지배질서에 대한 순응의 자세를 방해하는 진정한 현대예술의 전범으로 꼽는 아르놀트 쇤베르크에 관한 논의이다. 쇤베르크의 음악은 듣는 사람의 적극적이고 집중적인 동참을 요구한다. "다수의 동시적인 것에 예민하게 주목하고, 무엇이 나올지 항상 이미 알고 있는 관습적 청취지침을 포기하며, 일회적이고 고유한 것을 긴장하며 지각하는 자세"를 요구한다. 쇤베르크의 음악은 수용자에게 일종의 실천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며, 이로써 음악은 즐거움을 준다는 식의 상투적 관념을 일거에 무너뜨린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쇤베르크의 음악 못지않게 카프카의 작품 또한 독자의 관조를 방해한다. 「카프카 소묘」에서 아도르노는 『성』 『심판』 「변신」 등의 작품들을 치밀하게 분석하면서 감상자의 관조적 거리감을 깨면서 끝없이 재해석을 요구하며, 자신과 동일하지 않은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극히 미미한 일탈조차 허용하지 않는 체계(이를테면 자본주의)를 "음화상태로 그만큼 더 정확하게 규정하는" 데서 카프카 문학의 본질을 찾고 있다.
그밖에도 호프만슈탈과 게오르게의 상징주의가 소재신앙과 지나친 알레고리에 빠져 있음을 비판하면서도 그들의 유미주의에서 반사회적 저항의 의미를 찾고 있는 「게오르게와 호프만슈탈」, 박물관 혹은 예술의 생명력에 대한 발레리와 프루스트의 상이한 입장을 대비시키고 있는 「발레리 프루스트 박물관」이 실려 있다. 말미에 실린 「발터 벤야민 초상」은 ´비동일자´ ´짜임관계´ 등 아도르노 이론의 핵심이 되는 개념을 제시하며 그의 사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발터 벤야민에 관한 에세이다. 이 에세이에서 아도르노는 최소한의 객체 혹은 초라한 객체들에 대한 벤야민의 편애("영원한 것은 어떤 이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옷에 달린 한 조각의 레이스이다")에 공감을 표하면서도 벤야민이 풍기는 유대교 신비주의와 권력 지향성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고 있다.
수동적인 독자들에게는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견고한 사상체계,
그 안에 담긴 폭발적인 비판의 에너지!
기존의 지배질서에 순응하는 여러 가지 사고에 대한 비판, 그 순응에 거부하는 진정한 현대예술에 대한 치밀한 논의를 담고 있는 이 책은 풍부한 지적 자극을 제공한다. 하지만 아도르노를 읽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아도르노 독일어´라는 말이 생겨날 만큼 특별한 그의 언어는 한순간도 긴장이 해소되지 않는 철저한 반성적 사유를 담고 있어 그야말로 현기증이 날 정도이다. "각각의 문장은 ´나를 해석하라´고 말하는 듯하지만 어느 문장도 해석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그의 저술은 그러나, 수동적인 독자가 노력 없이 받아들이는 일을 방해하도록 의도적으로 고안된 것이다. 감상자의 관조뿐 아니라 실천을 요구하는 쇤베르크의 음악처럼.
수록 에세이(수록 순)
문화비평과 사회|지식사회학의 의식|몰락 이후의 슈펭글러|문화에 대한 베블런의 공격|올더스 헉슬리와 유토피아|초시대적 유행 재즈에 대해|바흐 애호가들에 맞선 바흐 옹호|아르놀트 쇤베르크 1874∼1951|발레리 프루스트 박물관|게오르게와 호프만슈탈 1891∼1906년의 서신 교환|발터 벤야민 초상|카프카 소묘
테오도어 W. 아도르노(1903∼1969)
독일의 철학자, 사회학자, 음악이론가. 1903년 9월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1921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철학, 음악학, 심리학을 공부하고, 1925년에는 알반 베르크에게서 작곡을 배웠다. 1931년 「키에르케고르 : 미의 구성」으로 교수자격을 취득했다. 1933년 나치에 의해 교수자격을 박탈당하고 이듬해 영국으로 망명하여 이후 1949년까지 영국과 미국에서 생활했다. 이때 호르크하이머와의 공저 『계몽의 변증법』(1947)을 출간했다.
독일로 돌아온 후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사회학과 철학을 강의했고, 『신음악의 철학』을 출간하면서 음악비평가로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또한 미국 망명 기간중에 이미 함께 작업해온 호르크하이머와 비판이
변증법은 정신 숭배에도, 정신에 대한 적대관계에도 빠져서는 안 된다. 변증법적 문화비평가는 문화에 가담해야 하며 또한 가담하지 말아야 한다.
_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