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가 온다
- 저자
- 김형술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일
- 2004-11-10
- 사양
- 144쪽 | 121*186
- ISBN
- 89-8281-899-5
- 분야
- 시
- 정가
-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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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그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우리의 시력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사물의 이면을 들추어내는 능력이 그것이다. 그의 언어를 읽고 있으면 그가 축조해내고 있는 시적 공간은 물론 그 공간 속의 모든 사물들이 독특한 얼굴로 걸어온다.
강은교(시인, 동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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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경남 진해 출생. 1992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의자와 이야기하는 남자』 『의자, 벌레, 달』 『나비의 침대』, 산문집 『향수 혹은 독』 『영화, 시를 만나다』 『물고기가 온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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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자서
바닷가의 의자
물고기의 말
보일러, 보일러
물고기가 온다
헬리콥터가 떠 있었다
안녕하세요! 물고기
독서
어둠 속의 흰 말
풍경
있다, 없다
어디에다 앉힐까
거위와 나
구멍
식사
폐차장에서 부르는 노래
폐차장의 저녁
폐차장에서의 식사
폐차장에서의 독서
물고기 편지
웃는 물고기
욕망이라는 이름의 물고기
구름 속의 교회
물고기의 혼잣말
물고기와 춤을
저녁 물고기
천국의 물고기
청어 굽는 저녁
물고기의 죄
물고기의 별
이발소
악몽을 방지하는 법
구름의자
잠
택시, 택시
매혹
유리침대
카니발의 아침
시간의 유령
소풍
벽과의 긴 연애
꽃들은 모두 어디로 가나
글자인간
달 속의 의자
개와 담배와 거울
꽃과 우레
나비무덤
상자
달이 있는 겨울
새인간
뱀의 말
해설. 도시의 아웃사이더, 꿈을 꾸다 / 문혜원
시인의 말. 그 봄 달빛이 내게 뭐라고 속삭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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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리뷰
사물의 이면을 꿰뚫어보는 예민한 감각의 시인 김형술의 네번째 시집
『물고기가 온다』는 199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해 꾸준히 활동해오고 있는 김형술 시인의 네번째 시집이다. 특히 시인의 시는 도시적 일상과 체험을 날카로운 감각과 지성으로 포착하고 도시의 미로 속에서 삶의 진정한 길을 찾는 ´도시시´로 알려져 있다. 자기 성찰을 거듭하며 변신을 시도해온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서 ´물고기´라는 이미지를 매개로 한 환상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시공간의 경계를 일시에 무너뜨리는 이 세계는 곧, 물고기의 혀에서 쏟아지는 말을 듣는 시인의 예민한 감각이 포착해낸 새로운 도시 풍경이다.
검은 도시를 가로질러 물고기가 온다
시인이 보여주는 도시 풍경은 어둡고, 황량하고, 그로테스크하다. 그리고 이 공간은 ´폐차장´으로 형상화된다. 「폐차장에서 부르는 노래」 「폐차장의 저녁」 「폐차장에서의 식사」 「폐차장에서의 독서」와 같은 시들은, "화려한 색전구로 치장한 건물들"의 뒤편, 곧 "찌그러진 드럼통, 붉고 푸른 폐수, 죽은 꽃, 썩지 않는 주검, 희고 붉은 전염균"(「폐차장에서 부르는 노래」)들이 지배하는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이곳에서 "즐거운 집 없는 사람, 아무도 아닌 사람"인 ´나´는 "구운 폐타이어 한 조각, 녹슨 나사 한 접시, 번들거리는 한 컵의 폐유"로 식사를 하고(「폐차장에서의 식사」), "날마다 주검을 준비하"며 "거리낌없이 죽음을 폭음"한다.(「식사」) 시인의 눈에 비친 도시는 "아름다운, 쓰레기 세상"이다. 화려한 자본주의 도시의 이면을 향해 감각을 열어두고, 인간 소외라는 현대적 현상이 도시의 뒷골목에 남긴 추함과 환멸을 포착해서, 그것을 문명과 도시의 일상이 마치 신체 일부처럼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 날카롭게 환기시켜주는 것, 그것은 시인의 시세계가 일관되게 추구해왔던 바이기도 하다.
이런 도시에서 개개인은 유령처럼 배회할 뿐 진정한 소통을 하지 못한다. 이와 같은 도시인의 소통 단절을 드러내는 이미지가 ´벽´이다. "세상에 벽 아닌 것"(「구멍」)은 없다는 ´나´의 말은 시인의 비관적인 세계인식을 나타내주고 있다.
그런데 이제 "벽을 뚫고 흰 물고기들이 쏟아져나온다"
안개처럼 물고기떼는 밤을 건너온다 / 지붕 위의 고양이 날카롭게 울면 / 누군가 흐린 잠에서 걸어나와 / 퍼덕이며 눈앞을 지나치는 흰 물고기떼를 헤아린다 // 벽이 젖는다 / 어둠은 싱싱한 해초 냄새를 풍긴다 // (……) // 물고기떼는 언제나 / 기척도 없이 어둠을 건너온다 / 나무들 향기로운 잎새들 피워올리고 / 샘마다 시린 수맥이 차오른다 // 물고기떼가 온다 / 벽이 눈뜬다 / 꽃잎 같은 먼 아침과 마주 선다
―「물고기가 온다」 중에서
"밤을 건너 (……) 언제나 기척도 없이 어둠을 건너오는" 물고기(「물고기가 온다」), "벽을 가지지 않는" 물고기(「물고기의 별」), 벽을 "눈"뜨게 하는 물고기(「물고기가 온다」), "어두운 벽들마다 피"어나는 물고기(「안녕하세요! 물고기」)는 도시의 딱딱하고 날카롭고 뾰족한 물질성과 대립되는 유연성과 일렁임, 곡선, 생명의 호흡 등을 상징한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벽들에 구멍을 내고 경계를 무너뜨림으로써 의사소통을 가로막는 것들을 허물고 길을 낸다. 환상의 극치를 보여주는 물고기는 건조하고 삭막한 현실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시인의 바람이 만들어낸 이미지이다. 문학평론가 문혜원은 이처럼 ´인공, 문명, 부자연스러움, 어둠, 현실, 딱딱함´과 ´자연, 날것, 자연스러움, 빛 환상 부드러움´, 이 두 가지 축이 크게 시집을 지탱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서로 다른 본성을 가진 것들을 정형화된 틀 안에 가두어 획일화하는 것이 도시성이라면, 물고기들은 "물의 힘살"을 물어뜯듯 경직된 현실의 힘살들을 물어뜯어 부드럽게 풀리게 함으로써 자연스러운 본성을 회복하게 한다. 이 점에서 물고기는 현실에서 억압받는, 자유롭지 못한 존재를 해방시키는 속성을 지닌 것이다.
침묵 속에서 저미고 벼려 얻은 희디딘 말의 뼈
시인이란, 말을 이해하고 그것을 다듬으며 끊임없이 말과 싸우는 존재이다. 특히 「어둠 속의 흰 말」은 말(言語)에 대한 시인의 체험적 각성과 엄숙한 자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무표정하게 누워 있는 나에게 말 한 마리가 온다. 그 말은 "어둠에 속하지 않는, 어둠이 지우지 못하는 어슴푸레한 빛"을 지니고 있다. 내가 말, 이라고 단정짓는 순간, 그것은 구름으로, 의자로, 비수로 바뀌며 "둥둥 떠다닐 뿐" 붙잡히지 않고, 결국 떠도는 "말의 문신들"만이 몸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침묵 속에서 마디마디 살을 저며 몸을 벼린, 앙상한 뼈만으로 말은 걸어나온다". 이 시는 역동성을 가진 말(馬)로 치환되는 말(言語)을 통해 시인이라면 한 번쯤 겪었을 고통과 한계를 암시하는 동시에, 어둠에 속하지 않는 신비한 아우라를 지닌 말에 대한 시인의 믿음을 보여주고 있다. 쉽게 길들여지지 않는, "결코 길을 갖지 않는" 말이기에 시인은 오로지 살을 저미고 몸을 벼리는 침묵의 고통 속에서만 그것을 얻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시인, 과연 "제 안의 말을 태워 세상을 지키는"(「보일러, 보일러」) 의지적인 존재이다.
꽃보다 붉고 뜨거운 예민한 청각이 포착한, 광야보다 넓고 적막한 소리의 세계
김형술의 촉수는 귀가 밝다.
´물고기의 혀´에서 쏟아지는 말을 듣는 그의 청각은 ´꽃보다 붉고´ 뜨겁다. 새파랗게 벼린 화염감각으로 달군 칼날 이미지 너머로 뜨는 실루엣에 눈을 돌리게 한다. 그것은 새로운 도시 풍경이다. 그 속에 품고 있는 아득한 그리움이다.
때로 그의 시세계는 넓고 적막한 광야의 소리를 한다. 이국 풍경처럼 낯설게 다가오는 그의 언어가 설계하고 감수한 시의 구축물은 오히려 새롭다. ´날마다 주검을 먹´는 전율에서 벗어나면 또다른 전율의 무대가 입을 벌린다. 소름끼치는 그의 언어는 그러나 짙은 비애미를 시의 바닥에 넌지시 감추고 있다. 그것을 찾아 읽는 맛이 김형술 시학에로 접근하는 참된 길이기도 하다.
유병근(시인)
그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우리의 시력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사물의 이면을 들추어내는 능력이 그것이다. 그의 언어를 읽고 있으면 그가 축조해내고 있는 시적 공간은 물론 그 공간 속의 모든 사물들이 독특한 얼굴로 걸어온다. 우리는 현대적인, 공간의 상상력에 충만한 그의 언어들을 읽으면서 보다 깊은 내면의 교환을 경험하고, 연결을 체화하게 되는 것이다. 보다 많은 독자들이 그 독특한 언어에 의한 교환과 연결을 선물받기를 바라는 심정, 간절하다.
강은교(시인, 동아대 교수)
그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우리의 시력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사물의 이면을 들추어내는 능력이 그것이다. 그의 언어를 읽고 있으면 그가 축조해내고 있는 시적 공간은 물론 그 공간 속의 모든 사물들이 독특한 얼굴로 걸어온다.
강은교(시인, 동아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