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대전일보에 「느림에 대하여」가, 1998년 문학동네신인상에 「중세의 시간」이 당선,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온 김숨이 첫 소설집 『투견』을 선보인다. 이 작품집에는 표제작 「투견」을 비롯해 「지진과 박쥐의 숲」 「유리눈물을 흘리는 소녀」 등 1997년부터 2005년 사이에 발표한 열 편의 소설이 실렸다. 세계와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주인공들이 겪어나가는 악몽과 같은 황폐한 현실과 내면의 풍경을 그로테스크하게 형상화한 소설들은 눈물이 되어 나오지 않는 답답한 슬픔을 느끼게 한다.
잔혹한 삶, 그보다 잔혹한 소설
김숨의 소설은 잔혹하다. 가능성 자체가 봉인되어 있는 세계에서 그가 조형해내는 소설적 공간은 잔혹성 그 자체를 강조하는 고통스러운 이미지로 조형된다. 마치 잔혹해지는 것만이 지독한 삶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듯. 악취와 어둠이 가득 찬 공간들은 우리의 삶이 은폐하고 있는 심연을 아프고 깊게 각인하는 미학적 기획으로 다가온다. 이 잔혹하고 그로테스크한 상황과 이미지는 독자의 이성보다 먼저 신경과 심장을 각성시킨다. 강유정(문학평론가)
간질발작을 앓고 있는 스물아홉 살 ‘나’의 아버지는 개를 잡아 보신탕집에 납품하는 ‘업자’이다. 한때 금산 바닥에서 ‘주먹’으로 통했던 ‘아빠’를 보면 개들은 꼬리를 다리 사이에 감아넣고 바닥을 설설 긴다. 그런 개들을 아빠는 가차없이 끌고 가 감나무에 매단다. “목이 졸리고 온몸이 까맣게 그슬린 채” 죽은 개를 손질하기 전 아빠는 개의 피를 양껏 마신다. 처참하게 죽어나가는 개들을 볼 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한기가 몰려들며 손가락들이 끝에서부터 딱딱하게 굳”고 “의식이 포말처럼 하얗게 끓어오”르다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진다.(「투견」) 김숨의 묘사는 잔혹하고 처참하고 냉정하다. 육식과 폭력을 일삼다 급기야 그것에 무감해진 아버지에 대한 이러한 잔혹한 묘사는 잔혹한 현실에 대한 제유이다. 실질적인 상징계적 법칙인 아버지가 폭력과 흡혈을 일삼는 곳, 그것은 김숨이 인식하고 있는 현실의 모습에 다름아니다.
아버지는 허리를 다쳐 일을 할 수 없고, 엄마는 이 년 전 집을 떠나버렸으며 두 쌍둥이 동생들은 고아원에 맡겨졌다. 아직 말도 못 하는 동생의 허리춤에 끈을 묶어 문고리에 걸어두고 학교에 가야 하는 소녀. 현실은 거미줄처럼 치밀하게 얽혀 빠져나갈 수 없는 미궁과도 같다. 어느 날 밤, 악몽처럼 이웃 남자에게 강간을 당한 소녀는 죽음을 택하고 만다.(「유리눈물을 흘리는 소녀」) 김숨이 직조해낸 세계는 현실의 모습에 잠식당한 거울이다. 더이상 꿈꿀 수조차 없을 때, 그 꿈이 악몽으로 변할 때, 잔혹한 세상의 풍경은 지옥의 스케치가 된다.
김숨이 보여주는 세계는 현실에 대한 전복이라기보다 현실의 잔혹함에 대한 우회적 모사이다. 개선의 여지가 봉쇄된 잔혹한 현실의 재확인은 현실의 논리에 내재해 있는 결핍을 은폐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출구 없이 봉인된 추상적 세계는 현실의 잔혹함에 대한 탁월한 성찰이자 비유로 다가오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을 벗어날 수 있을 가능성까지 휘발시킨다는 점에서 절망적 허무주의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새잎이 돋아날 봄을 기다린다”는 구절이 없어도―소설의 운명
조그만 방에 틀어박혀 조용히 책을 읽는 오빠. 그 오빠가 어느 날 자기 방 천장에 조그만 구멍을 뚫는다. 밤하늘이 그대로 보이는 낭만적인 구멍을. 하지만 그 구멍으로 비가 들이칠 때는 고스란히 젖을 수밖에 없다. 이를 용납할 수 없는 아버지는 지붕으로 올라가 구멍을 막아버리고, 오빠는 집을 나간다. 오빠가 집을 나간 이후 교통사고를 당해 빠른 것을 무서워하게 된 어머니는 자신의 느린 속도를 위반하기 시작한다. ‘나’는 겨울나무에 대한 시를 썼다가 “새잎이 돋을 봄을 기다리겠다”는 구절이 없어 시화전에 전시되지 못한다.(「느림에 대하여」)
‘느림에 대하여’라는 제목은 빠름이라는 근대사회의 절대적 윤리를 역행하는 존재인 ‘작가’ ‘소설가’의 운명에 대한 제유이다. 21세기에 소설을 쓰고, 문학을 하며 살아가는 것은 명백히 세상의 속도에 위배되는 역류이다. 느린 걸음을 걸으며 어둑한 방에서 구멍 밖 하늘을 바라보는 오빠는 후기 산업화 시대의 작가가 처한 고단한 현실을 보여준다. 지붕에 뚫린 구멍을 통해 낭만을 누릴 수 있지만, 그 구멍은 세상의 시련을 막아주지는 못한다. 낭만성을 허용하지 않는 세상에서 문학적 열망은 너무나도 무방비하게 노출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잎이 돋을 봄을 기다리겠다”는 목소리가 없어 시화전 작품 공모에 떨어진다 해도 겨울나무를 노래한 시를 쓰겠다는 화자의 고백은 소설가 김숨의 문학적 선언으로 받아들여진다. 그것은 또한 소설가의 운명이자 이 시대 문학의 운명이기도 할 것이다.
김숨의 인물들은 여린 풀잎이다. 식물성을 가졌다는 원죄 때문에 마법에 걸린 불구의 인물들이 김숨의 서사를 결정짓는 키워드다. 그들은 거대하고 머캐니컬한 세계구조의 음습한 틈에 갇혀 있다. 마법을 풀어줄 왕자님이 출현하기엔 너무도 날카롭고 협소한 면도날 같은 틈이다. 그 틈에서, 김숨은 현대사회의 병리학적 야만성에 의해 오늘도 죽임을 당하고 있는 식물성의 비명을 명징하고 예민한 문체로 드러내고 있다. 박범신(소설가)
숨막힐 듯한 음산한 열기와 그로테스크한 종말론적 풍경으로 직조된 김숨의 ‘낯선’ 작품세계를 관류하고 있는 정신은 근대성이 내장한 어두운 이면, 즉 체제-관리적 사회구조의 모순으로부터 발생한 사회-병리학적 질병으로서의 ‘소외의식’과 ‘의사소통의 불가능성’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탐구심이다. 이 작가의 거의 모든 작품에 등장하는 완상용이나 식용으로 ‘사육’되는 동물의 이미지, 혹은 ‘유산’이나 ‘불임’의 의식으로 각인된 심리적 모티프들은 바로 이러한 관리사회의 소외감과 의사소통의 불가능성에 대한 강렬한 비판적 알레고리로 작용한다. 그러니 이 불온한 작가에 의해 포착된 저 낯선 열기와 풍경은 또한 그대로 불구화된 근대의 초상이 되는 셈이다. 김진수(문학평론가)
* 2005년 3월 30일 발행
* ISBN 89-8281-971-1 03810
* 신국판 | 320쪽 | 값 8,800원
* 담당편집 : 조연주 김송은(031-955-8865/88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