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첫 시집 『반란하는 빛』을 펴낸 이래 사물에 관한 깊은 관조로 존재론적 의미를 형상화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꾸준히 시작활동을 해온 시인이자 현장 비평가인 오세영의 평론집 『우상의 눈물』이 출간되었다. 1990년부터 2005년까지 발표한 글 가운데 학술논문을 제외한 비평문을 모았다. 이 책에는 개화기 가사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시까지, 근대부터 오늘에 이르는 한국시의 생생한 역사와 원로 현장 비평가의 눈으로 본 우리 문학의 풍경이 가감 없이 담겨 있다.
근대에서 오늘에 이르는 한국시의 생생한 역사
총 4부로 이루어진 평론집의 1부는 지식인 사회의 문제점과 외래 학문의 수용 태도, 국어 교육에 관한 논의 등 학문하는 자세와 방법에 대한 글로 이루어져 있다. 사상의 독단주의, 학문의 획일주의 등 조선시대로부터 이어져온 잘못된 유산과 이를 비판 없이 이어받은 현대 지식인에 대한 쓴 소리와 문학작품을 통한 국어 교육에 관한 의견은 새겨들을 만하다.
2부에서는 현대시에 미친 불교의 영향과 선시(禪詩)의 세계를 개화기 가사에서 20세기 초현실주의 시에 이르기까지 한국시의 역사에 관한 방대한 지식을 동원해 자세히 소개한다. 불교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사물의 인식을 통해 존재론적 의미를 파악하는 데 주력하는 시인으로서 불교시와 선시에 대한 저자의 깊은 관심과 공력을 느낄 수 있다.
원로 현장 비평가의 눈으로 본 우리 문학의 풍경
3부에서 저자는 20세기 한국시의 전개를 다루고 한국시단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특히 문학작품 연구의 고질적인 병폐를 지적한 「우상의 가면을 벗겨라」에서 그는 그 문제점으로 이념 중심적 접근, 지나친 시류 편승, 기존 평가에 대한 맹목적인 추수, 작가의 전기적 사실과 작품의 상상 세계를 혼동하는 것 등을 든다. 이로 인해 정치적, 역사적 소명이라는 차원에서 훌륭할 뿐 미학적 논의가 더 필요한 여러 시들이 실체와 다르게 과대평가되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프롤레타리아 시의 전범으로 꼽히는 임화의 「우리 오빠와 화로」는 유치한 산문 수준이며, 언론이 뽑은 해방 이후 최고의 시인 김수영의 대표 시 「풀」은 알려진 대로 민중시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럼에도 이 시들이 가장 훌륭한 시로 칭송되어온 까닭은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념 중심주의, 작가의 전기적 사실과 작품 세계를 동일시하는 풍조 등에 있다고 밝힌다. 평론집의 제목 ‘우상의 눈물’에는 그러한 시들의 참 모습을 보고, 시류와 관계없이 순수하게 문학을 평가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이미 이론의 여지없이 신화화된 시와 시인들에 대한 이러한 도발적인 문제제기는 우리 문학 연구의 현주소를 반성하고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적 진실이란 어디에 있는가’와 같은 근본적인 물음을 되새기게 한다.
4부에는 이념에 매몰되어 있던 한국시가 90년대 들어 서정성을 회복하고 있는 현상에 관한 지적과 문학 연구의 활성화 방안에 관한 논의를 담았다.
저자는 문학이란 인간을 모순의 존재로 인정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시작하는 정신 활동이며, 상상력을 통해 그 모순을 통합할 때 문학적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문학작품 감상과 연구에 있어서 상상력이란 편견 없는 마음과 열린 자세를 말함일 것이다.
근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한국시의 긴 역사와 학문을 연구하는 자세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분야를 문학적 상상력으로 풀어낸 이 저서는 문학을 연구하는 이들은 물론, ‘문학적 진실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모든 이들에게 엄정한 좌표가 되어줄 것이다.
문학은 픽션이다. 그것은 사실로부터 자유로운 진실 즉 ‘거짓의 진실’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리얼리즘이라고 해서 예외로 두는 것도 결코 아니다. 문학적 진실은 깊이가 어떠하든 그 본질은 모순에 있는 것이다. 서로 모순의 관계에 있으면서도 다만 모순으로 끝나지 않고 진실이 될 수 있는 그 오묘한 이치는 이성적 사고로만 굳어 있는 사람은 이해하기 힘든 ‘진실’일 것이다. 서로 모순되면서도 어떻게 진실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상상력에 의해서 가능하다. 상상력이란 원래 모순되는 사고를 하나로 통합 혹은 조화시키는 힘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한편으로 이성을, 다른 한편으론 감성을 가졌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본질적으로 모순의 존재이다. 그리고 문학은 바로 인간을 모순의 존재로 인정하는 그 지점에서부터 시작하는 정신 활동인 것이다.
‘책머리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