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한 각별한 눈길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초판 2001년, 현대문학북스)는 90년대 말 『그리운 여우』 『바닷가 우체국』에서 시인이 보여주었던 소담스럽고 소박한 시세계가 마침내 자연과 인간과 시가 하나로 수렴되는 한 경지에 이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시집에서 그는 주변의 소소한 자연과 사물들을 새롭게 발견하고 그 속으로 깊이 들어가 또다른 의미의 지평을 우리에게 열어 보인다.
때로 아무것도 아닌 것 때문에
단 한 번 목숨을 걸 때가 있는 거다
침묵 속에도 뜨거운 혓바닥이 있고
저 내리는 헛것 같은 눈, 아무것도 아닌 저것도 눈송이 하나하나는
제각기 상처 덩어리다, 야물게 움켜쥔 주먹이거나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중에서
그의 각별한 눈길 덕분에 아무것도 아닌 것은 비로소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게 되고, 곧 상처 덩어리로 끙끙대는 우리 삶이 되며, 마침내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한 편의 시가 된다. 해설을 쓴 평론가 김수이가 지적하는 것처럼, 시인은 생명의 원리를 품고 있는 자연을 발견하는 동시에 자신을 둘러싼 현실의 상처를 지각하고, 그 간격을 시의 열정으로 메우고자 한다. 그의 시가 태어나는 곳이 바로 그 지점이다. 그것이 ‘낡은 배를 산꼭대기까지 밀어올리는’(「낭만주의」) 것과 같은, 그가 말하는 시 본연의 낭만주의일 것이다.
건강하고 순정한 시인이 전하는 환한 발견의 순간
시인은 순정한 시인에서부터 질박한 농사꾼, 건들건들한 건달에 이르기까지 여러 빛깔의 자아를 소화해내면서, 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자연에 대한 미적 인식, 토속적 세계에 대한 애정, 삶의 작은 발견과 고뇌 등 다양한 관심을 표출한다. 한 권의 시집 안에 나타나는 이런 다채로움이 그의 시의 유려한 질감을 만들어내는 바탕이 된다.
특히 시집 곳곳에 드러나는 전라도 농촌의 토속 정서는 시인의 기지 넘치는 언어와 만나 능청스럽고 재치 넘치는 해학을 일구어낸다. ‘봄똥’을 생각하며 눌러앉고 싶은 곳, 논물 드는 금만경 너른 들판, 개펄에서 놀던 강과 거름 더미에 뒹구는 햇살 등이 시인과 교감을 나누는 그곳이 곧 그의 시의 한 바탕을 이룬다. 질박하고 싱싱한 자연 안에서 시인은 늘 건강하고 순정하다. 그것이 그의 시를 밀어온 힘이기도 할 것이다.
시집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는 그의 시세계를 이끌어온 동력과 바탕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해준다. 이 시집을 통해 “이 세상의 비밀을 훔쳐보다가 왠지 들켰다는 생각”(‘自序’)의 일부를 슬쩍 건네 보인 시인이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건강하고 환한 발견에 계속 귀를 기울이고 싶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다가 베고 잠들어서 무례하지 않을 시들
존재의 맨살을 끝끝내 추적하여 그 바탕을 확인하고자 하는 시혼이 그의 시편들 속에는 치열하게 살아 있다. 시집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를 아무 데나 펴보아도 펼쳐지는 곳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시편들이 눈길을 사로잡곤 하는데, 그것은 아마도 번쩍번쩍 날이 서 있는 그 시혼이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정양(시인)
안도현 선배의 이마에서 눈길에서 손끝에서 시는 때로 이슬처럼, 때론 진물처럼 잘도 맺혀 나온다. 이 맺혀진 시들 속에 ‘나’도 있고 ‘너’도 있고 ‘우리들’도 저 느티나무의 그 많은 잎들처럼 반짝이며, 그늘지며 있다. 그리하여 세상 모든 것, 일상의 모든 사건과 사물들이, 사랑과 헤어짐이 모두 어깨동무를 하고 살고 있다는 것을 선배의 시는 역설하지 않고 제시한다. 때로 미소짓고, 때로 눈이 젖고 그러다가 베고 잠들어서 무례하지 않을 시들, ‘마당이 빗방울을 깨물어 먹는’ 그 소리들, 화음들……
장석남(시인)
* 2005년 8월 16일 발행
* ISBN | 89-546-0033-6 02810
* 121×186 | 112쪽 | 값 7,500원
* 책임편집 | 이상술(031-955-88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