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에 활을 겨누다
- 저자
- 김호석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일
- 2005-03-07
- 사양
- 120쪽 | 200*230
- ISBN
- 89-546-0121-9 03600
- 분야
- 미술/디자인
- 정가
- 2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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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적멸. 아니, 적멸의 삶. 삶의 적멸.
어떤 죽음은 어떤 삶이다.
그러므로 적멸이 끝이 아닌 줄 누가 모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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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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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적멸 : 김호석의 그림 느끼기 - 고은(시인)
문명에 활을 겨누다
관전기 : 야생의 기억 - 김형수(시인)
비평 : 김호석의 먹빛 바람, 대적의 공간을 일렁이다 - 이태호(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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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리뷰
수묵에 일렁이는 대지의 그림자 한 화가가 있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여러 의미 있는 작업을 통해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또한 한 예술가가 가질 수 있는 예술적 성취와 영광을 동시에 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전시회를 마친 그에게 말할 수 없는 허기가 찾아왔다. 그는 자신의 작업과 익숙한 환경으로부터 떨어져 있고 싶었다. 결국 모든 것을 뒤로하고 대지의 숨결이 살아 있는 한반도 북방 지대로 떠났다. 그림을 그리기 위한 여행도, 그저 휴식을 취하기 위한 여행도 아니었다. 누군가 왜 초원 사막지대였냐고 묻는다면 그저 우연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그러나 우연은 인연이 되고, 인연은 필연이 되어, 그는 결국 마흔여덟 번이나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 관광 가이드나 통역 없이 맨몸으로 부딪힌 체험이었다. 마흔여덟 번의 유라시아 대륙 탐험에서 그가 얻은 영감은 이 책에 실린 서른여섯 점의 그림으로 남았다. 북방 초원지대에 드나들기 시작한 지 십 년, 마지막 전시회를 개최한 지 사 년 만이다. 그가 그곳에서 보고 느낀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그림을 통해서 일렁이는 대지의 그림자를, 생의 처절함과 소멸의 숙연함을, 결국 그 둘이 다르지 않음을, 그것이 자연의 냉엄한 질서임을 목격할 뿐이다. 그 화가는 김호석이다. 그는 1957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한국의 정치적 격변기를 지나오면서 역사화, 농촌풍경화, 역사 인물화, 서민 인물화, 가족화, 성철스님화, 선(禪)화, 군중화, 동물화 등의 작품을 통해 우리 시대의 정신성과 삶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데 몰두해왔다. 한편 한국 회화의 전통기법과 형식, 재료의 장점들을 되찾고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여 변화된 현대적 삶의 모습을 수묵화로 담아내 현대 미술계에 영향을 미쳐왔다. 이 책에 실린 유라시아 연작은 크게 달라진 그의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이 작품집은 더 깊고 넓어진 한 예술가의 여정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소멸 이야기에서 생성 이야기로 이번 화집에 실린 작품들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그 하나는 존재의 생과 멸에 관한 것이다. 김호석은 몽골을 포함한 유라시아 지역의 광활한 초원 여행을 통해 생명과 소멸이 한 공간에서 어우러지는 고유한 질서를 목격했다. 죽은 소의 머리통 주변에서 꽃이 피고 이빨 틈새에서 나비가 노는 모습을 그린 <죽음과 나비>뿐 아니라, 마를 대로 마른 소똥이 꽃이 되는 <아르가르의 향기> 등의 작품에서 죽음과 삶이 동시적이고 서로 다르지 않은 것임을 보여주면서 하나의 소멸이 반드시 또다른 생성의 시작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 하나의 유형은 유목민의 일상을 포착한 작품군이다. 자연의 움직임을 따라 이동하는 유목민의 삶을 그린 <해 뜨는 곳에서 해 지는 곳까지>를 비롯하여, <죽은 염소> <형제> <양은 가죽을 남기고> <늑대가 오는 밤> <초여름> <바람의 숨결> 등의 작품들은 하나 같이 유목문명을 구성하는 삶의 한 지점들을 그리고 있다. 또 다른 유형은 ‘조드(Dzud)’라고 하는 대재앙에 관한 것이다. <하늘에서 땅으로> <대지의 마지막 풍경> <조드> <사는 것과 죽는 것> <죽은 낙타의 초상> <쓰러진 야크> <대자연에게 살해되다> <말은 죽어서도 그들과 함께 있네> 따위의 작품들이 여기에 속한다. ‘조드’라고 하는 이 겨울 재해는 집중 가뭄과 강추위가 겹쳐서 유목문명 전체를 공포에 빠트리는 무서운 재난이다. 놀라운 것은 그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죽은 동물의 시체가 낙엽처럼 쌓인 풍경을 그린 그림들에서도 항시 대자연의 호흡이 살아 숨쉰다는 점이다. <쓰러진 야크>와 같은 작품에서는 수많은 바람들이 물결을 이루어 하나로 흐르는 모습과 생명이 바람에 부서져서 검은 먼지로 흩어지는 느낌이 강조되고 있다. 화가는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소멸을 통해 생성을 보고자 하는 자신의 대주제를 거의 모든 작품 속에 관통시키고 있다. 김호석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존재의 근원, 생명의 순환 본능…… 이런 것, 그리고 도시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근원적 생명력이랄까, 광활한 대지가 내뿜는 원초적인 힘이랄까 하는 것들이 주는 절대 고독, 또 외로움, 쓸쓸함 등이다. 그의 작품에서는 척박하고 황폐하기만 한 사막이 오히려 생명력으로 넘치고, ‘모양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것들’을 읽는 ‘창조적 깊이’가 느껴진다. (김형수 관전기, 「야생의 기억」 중에서)
그이의 그림은 전에 있던 어느 가풍의 핏줄이기보다 전에 아예 없던 저세상의 넋의 핏줄이 아닌지 몰라. 그러니 그이가 여기서는 처음의 사람이리라. 적멸. 아니, 적멸의 삶. 삶의 적멸. 어떤 죽음은 어떤 삶이다. 그러므로 적멸이 끝이 아닌 줄 누가 모르랴. ―고은(시인) 김호석이 표현한 유라시아의 초원과 사막의 전신(傳神)에는 그 대지에 부는 바람이 포함되어 있다. 배경에 깔린 필묵의 움직임과 농담, 그리고 선염(渲染)을 보는 순간, 선뜻 대자연의 적막한 대적(大寂)의 공기를 일렁이는 바람이 떠올랐다. ―이태호(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2006년 3월 7일 발행 *ISBN 89-546-0121-9 03600 *200×230|120쪽|값 22,000원 *담당편집: 조연주, 김송은(031-955-8862)
적멸. 아니, 적멸의 삶. 삶의 적멸.
어떤 죽음은 어떤 삶이다.
그러므로 적멸이 끝이 아닌 줄 누가 모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