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번째이다, 어느새. 1990년 「광장으로 가는 길」을 시작으로 소설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지 십칠 년째, 그사이 그는 수많은 계절을 겪어야 했고, 그만큼 많은 변화를 감당해야 했다. 그리고 꼭 그만큼, 그의 작품도 조금씩, 그 모양을 달리해왔다. 조금씩 조금씩…… 그날그날이 똑같아 보이는 사막의 모래들이 매일같이 새로운 언덕을 만들고, 새로운 구덩이를 파듯이.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는 사구(砂丘)들처럼 그의 소설 역시 그러하다. 꼼꼼하게 들여다보았다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면 어느 사이 모래산은 자리를 옮겨 있다.
홀린 듯 썼다. 쓰고 나니 무엇을 썼는지, 누가 썼는지 아득했다. 이렇게 씌어지는 소설도 있었다. 소설이 씌어지는 동안 푸른 빛 속에 있었다. 신비로운 빛이었다. 어쩌면 나를 영원히 구원해줄 운명의 빛일지도 모른다는 환각에 사로잡혔다. 소설을 떨치고 나니 실체를 찾아 나서야 할 것만 같다. 어디까지가 소설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무엇이 환각이고 무엇이 실체인지 경계를 찾을 필요는 없다. 다만, 느낄 뿐이다. 소설 쓰는 일이 가끔 고통을 넘어서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 행복하다.
작품집에 실린 마지막 소설 「푸른 모래」를 쓰고 난 후 그는 작품노트에 이렇게 썼다. 이 말이 비단 「푸른 모래」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터이다. 한 자리에 묶인 열한 편의 소설은 그야말로 ‘홀린 듯’ 씌어졌다. 어디까지가 소설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무엇이 환각이고 무엇이 실체인지, 그 경계가 모호할 뿐이다. 저자가 그랬듯 독자들 역시 다만 느낄 뿐, 그 경계를 찾을 필요는 없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 책은 「네 마음의 푸른 눈」으로 시작해서 「푸른 모래」로 끝난다. 『버스, 지나가다』에서 환각적으로 개진된 ‘운명이 되려다 만 것들’이 보다 뚜렷한 푸른빛을 띠게 된 셈이다. 그러나 푸른빛이란, 아무리 뚜렷해도 신비로운 것, 먼 것, 차가운 것. 신비로운 것은 비현실, 아니 초현실적인 것이 아닌가. 아니, 아니다. 벼락 속에서도, 폐허 속에서도, 폭풍 앞에서도, 안개 속에서도 나는 오직 현실만을 생각했다. 현실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실과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은가. 「네 마음의 푸른 눈」의 주인공 일산 아이는 말한다, 유일하게. Nothing is real.--‘작가의 말’ 중에서
열한 편의 소설 속엔 온통 푸른 모래가 서걱거린다. 바이칼 호의 잔잔한 푸른 물결 위로 모래폭풍이 휘몰아치고, 부다페스트 후미진 골목에 자리잡은 작은 호텔방 안에도 모래바람이 머물다 간다. 더블린의 하늘에도, 프랑스의 중세 고성(古城)에도 모래비가 흩뿌리는 듯하다. 글자와 글자 사이,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에도 모래들은 흩어져 있다. 책장을 손으로 쓸어내리면 미세한 모래먼지들이 온통 손바닥에 묻어난다.
한여름 도시 한복판, 녹아내리는 아스팔트 위를 걷는 구두 속으로 뛰어들어온 모래알갱이처럼 그것은 내내 독자들의 신경줄을 잡아둔다. 꺼내놓고 보면 별것 아닌 그 작은 모래알갱이는 걸음을 옮겨놓는 사이사이 머리 뒤꼭지를 발밑까지 끌어내린다.
그 바람을 따라, 그 모래를 따라, 그 안에 숨어 있는 소설을 찾아 저자는 내내 휘적휘적, 조용히 몸을 움직인다. 소설 속 곳곳에 그가 보인다. 그는 굳이 소설 안에서 자기를 감추려 애쓰지 않는다. 작품 구석구석에서 (어쩌면 의도적으로) 그는 출현한다.
나는 한 곳을 한 사람을 오래 보고 생각하고 마음에 두는 버릇이 있다. 다른 많은 곳 다른 많은 사람을 동시에 보고 만나는 일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다. 늘 가는 곳을 가고 만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좀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으나 마음을 끌지 않는 것에는 제아무리 굉장한 보석이 박혀 있다 해도 나에게는 한갓 차가운 돌덩어리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움은 사람을 아름답게 한다. --『하찮음에 대하여』 중에서
한때 나는 ‘한 곳에 가만히 앉아 있기를!’ 간절히 청원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푸른 꽃’을 찾을 수만 있다면!’ 하고, 분연히 일어서곤 했다. 『버스, 지나가다』를 내고 삼 년 동안 나는 여전히 낯선 곳을 향해 끊임없이 떠나고, 또 돌아왔다. 모두 메아리처럼 소설이 되어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소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내 삶, 그러니까 소설적 삶의 중심이 되었다.--‘작가의 말’ 중에서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늘 다른 곳을 꿈꾸는 그에게 머리칼을 쓸어올리는 이국의 바람 한 점, 고성 벽에 씌어진 낙서 한 줄은 모두 이야기가 되어 찾아왔다.
“사람은 언제 소설을 쓰게 될까요?”
“글쎄요, 잘은 모르지만, 자기 자신을 제물로 삼아서라도 치유해야 할 상처가 있을 때 쓰게 되는 게 아닐까요.” --『춘하추동』 중에서
그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소설을 써야 할까.
함정임의 소설은 섬세하고 정성스럽다. 그늘진 곳의 아픈 사람들, 천애를 떠도는 영혼, 슬픔에 길들여진 운명에 내미는 부드러운 손길이 처처에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교양이 없는 세태, 마음이 없이 함부로 움직이는 것들을 쏘아보는 엄격한 눈길이 있다. 다정이 병이어서 떠도는 사람을 뒤따라 떠돌고 뒤따라 앓고 함께 웃고 싶어하는 것이 함정임 소설의 처신이다. 성석제(소설가)
함정임 소설을 읽을 때면, 비행기 창에 이마를 맞대고는 몇 시간째 창 밖을 보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이 그려진다. 아이는 하늘에 벼락 무늬가 그려졌다 사라지는 것을 본다. 사막을 횡단하는 낙타들. 낙타몰이꾼의 이마에 난 주름들. 대륙을 횡단하는 새떼들. 나비들의 작은 날갯짓. 이 모든 것들이 너무 선명하게 보여 아이는 깜짝 놀란다. 어깨가 움찔거린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쯤, 아이는 자기가 본 세상을 이해해야 하는지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해 잠깐 고민을 한다. 그 아이가 자라…… 함정임 소설의 그녀가 되어주었다. 그녀는 소리 죽여 울 곳이 없다. 그래서 바그다드로, 부다페스트로, 부산으로, 동남아의 어느 작은 섬으로 떠난다. 이 책을 읽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여행에서 돌아온 그녀의 옷을 털어주는 것뿐이다. 그녀가 낯선 곳에서 묻혀온 모래알갱이가 내 눈에 들어갔으면 좋겠다. 윤성희(소설가)
▶ 수록작품
네 마음의 푸른 눈 | 『21세기문학』 2002년 봄호
문어(文魚)에게 물어봐 | 『문학동네』 2002년 겨울호
부다페스트에서 순이는 | 『현대문학』 2003년 1월호
벼락 치는 4월 오후 세시 | 『작가세계』 2003년 여름호
엷은 안개 사이로 『문학동네』 | 2004년 봄호
꽃 피는 봄이 오면 『한국문학』 | 2004년 봄호
소금 한 줌 『현대문학』 | 2004년 6월호
성(城)이 의미하는 것 또는 아무것도 아닌 것 | 『파라21』 2004년 가을호
버드나무 아래 고요히 『숨소리』 | 2004년 가을호
호퍼의 주유소 『세계의문학』 | 2004년 가을호
푸른 모래 『문학사상』 | 2004년 12월호
* 초판발행 | 2006년 3월 30일
* 신국판 | 304쪽 | 9,500원
* ISBN 89-546-0133-2 03810
* 책임편집 | 조연주(031-955-88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