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배경은 가상의 나라 V.파. 영국과 일본의 전통이 혼합된 문화를 갖고 있는 이 나라에서는 매년 특별한 행사가 열린다. 그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성지 ‘어나더 힐’로 다시 돌아와 가족친지들과 재회하는 ‘히간’이라는 축제 의식이 바로 그것. ‘손님’이라 불리는 이들은 V.파 사람들에게 공포가 아닌 환영의 대상이고,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 사라지는 이 기간 동안 그들은 생전에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눈다.
먼 친척을 따라 처음으로 이곳을 찾은 일본인 대학생 준이치로는 어나더 힐의 기이한 문화와 사람들의 독특한 사고방식에 당황하면서도, 영적인 오라를 지닌 선주민 라인맨, 다섯번째 남편을 죽인 의혹을 받고 있는 흑부인, 박학다식한 말솜씨를 지닌 박사와 교수, 비명횡사한 쌍둥이 형을 만나기 위해 찾아온 과묵한 청년 지미, 때때로 짓궂지만 현명하고 사려 깊은 여자 사촌 하나 등의 일행과 함께 어나더 힐의 불가사의한 매력에 조금씩 빠져든다. 그러나 예년과 달리 어나더 힐에서는 수수께끼의 연쇄살인범 ‘피투성이 잭’의 소행으로 여겨지는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등 불길한 징조가 계속되고, 이윽고 그 피해자들이 ‘손님’으로 돌아와 범인에 대한 증언을 시작하면서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한편 준이치로에게는 자신을 찾아오는 ‘손님’들이 남기는 수수께끼의 단서들이 하나둘 늘어가는데……
아름다운 장정의 한정본 시집을 방문판매하는 두 청년, 피해자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은 과연 누구인가? 심상치 않은 변화의 기운을 보이는 어나더 힐의 운명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거대한 수수께끼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땅에서, 잠들어 있던 감각을 일깨우는 매혹적인 지적 추리가 펼쳐진다.
책장을 넘기기 아까운 황홀한 이야기의 향연
독보적인 스케일을 지닌 온다 리쿠 판타지의 결정체
옛날에 어머니가 읽어준 아동문학 속의 서양은 늘 동경과 이국의 향취가 가득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토끼, 수학교사의 롤리타, 하늘을 나는 가정교사, 오트밀 죽과 머핀, 안개, 템스 강, 지붕 밑 다락방, 체스, 크로케, 마녀와 괴도.
그 가운데 조금 다른 위치에서 따스한 빛을 발하는 것이 V.파의 존재였다. 조금은 무섭고 흐릿한, 그러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매혹적인 세계.
_본문에서
낯선 이국의 땅에서 데자부처럼 펼쳐지는 어렴풋한 이미지, 어딘가에 숨겨진 기억을 자극하는 비밀스런 속삭임. 온다 리쿠의 장기라 할 만한 섬세한 묘사력은 가상세계를 무대로 했을 때 더욱 절묘하게 발휘된다. 한때 영국의 지배를 받았고 일본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묘사되는 V.파는, 신사와 도리이로 대표되는 일본의 전통신앙, 오후의 티타임과 영국식 펍, 정령에게 범인의 심판을 맡기는 종교의식 등, 과거와 현재, 그리고 동양과 서양의 풍습이 섞인 독특한 문화를 지닌 곳이다. 온다 리쿠는 여기에 실재 존재하는 전통문화를 살짝 비튼 상상력을 더해 일상과 비일상이 등을 맞댄 불가사의한 세계를 탄생시켰다. ‘히간(彼岸)’은 원래 조상의 성불을 기원하는 일본 전통의 불교행사를 뜻하는데, V.파에서는 죽은 사람들이 직접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실체’로 돌아와 산 자들과 대면한다. ‘‘손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법칙으로 인해 그들의 증언은 법적 효력을 지니고, 히간에 참여한 이들은 그 기간 동안 ‘손님’과 나눈 대화를 기록을 써서 남길 의무를 가진다. 평온하고 성스러워야 할 그 행사가 수수께끼의 연쇄살인사건과 얽히면서 불길한 기운을 띤 미스터리로 변모한다.
‘피투성이 잭’의 정체와 어나더 힐의 기현상에 얽힌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것이 소설의 주된 줄거리지만, 각자 매력적인 개성을 지닌 등장인물들의 일상대화에는 또다른 소소한 즐거움이 있다. 낙천적인 성격에 소문과 가십거리를 좋아하는 V.파의 사람들이 날마다 저녁식사 테이블을 둘러싸고 화제의 사건에 대한 각자의 추리를 늘어놓는 자리에서는 서로 경쟁하듯이 앞다투어 늘어놓는 기발한 발상들이 릴레이처럼 이어진다. 때때로 등장하는 고전 추리소설의 오마주에서는 작가의 재치가 엿보이고, 대화 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드러나는 의문점을 좇는 사이 독자는 마치 불투명한 안개에 둘러싸여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죽음이 잔혹한 것은 불시에 찾아와 작별인사를 할 기회도 없이 모든 것이 단절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마지막으로 한두 마디 주고받을 수 있었다면, 제대로 인사할 수 있었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유족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
그러니 이렇게 제대로 인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자기는 괜찮다고, 사랑한다고 말해준다면. 그것이 이 세상에서 살아나갈 사람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될까.
그런 기회가 약속되기 때문에,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죽음을 거실의 엔터테인먼트로 만들 수 있는지 모른다.
_본문에서
여왕과 고성, 주술과 유령이 현대에도 아직 존재하는 곳. 『네크로폴리스』의 세계는 이질적이고도 아련한 향수를 간직한 어릴 적 기억과 닮아 있다. 환상이 곧 현실이 되는 ‘죽은 자들의 도시’를 여행하는 것은 온다 리쿠 소설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권일 것이다.
신비롭고도 현실감 있는 세계관이 읽는 사람을 취하게 만든다.
온다 리쿠 작품의 새로운 경지. 대작이란 말이 아깝지 않다.
_일본 독자평에서
이야기를 좋아하는 작가가 그리는 이야기 속 세계인 이상하고 신비한 나라, V.파.
전설과 환상이 현실과 맞닿아 있는 이곳은 온다 리쿠가 늘 꿈꾸어온 세계일지도 모른다.
_권영주(옮긴이)
온다 리쿠 恩田 陸
1964년 미야기 현에서 출생, 와세다 대학교 교육학부를 졸업했다. 1991년 일본 판타지노벨 대상 최종 후보작에 오른 『여섯번째 사요코』로 데뷔했다. 2005년 『밤의 피크닉』으로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 및 서점 대상을 수상하였다. 그후 『유지니아』로 제133회 나오키 상 후보에 올랐으며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 장편부분을 수상했다. 2007년에는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로 야마모토 슈고로 상을 수상했다. 그 밖의 작품으로 장편소설 『삼월은 붉은 구렁을』 『흑과 다의 환상』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황혼녘 백합의 뼈』 『굽이치는 강가에서』 『네버랜드』 『빛의 제국』 『민들레 공책』 『엔드게임』, 소설집 『도서실의 바다』 『아침해처럼 상쾌하게』 등이 있다. 미스터리, 판타지, SF, 호러 등의 여러 장르가 혼합된 독특한 작품 스타일과 읽는 이의 향수를 자극하는 아련한 분위기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옮긴이 권영주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옮긴 책으로 『삼월은 붉은 구렁을』 『흑과 다의 환상』 『빛의 제국―도코노 이야기』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초콜릿 코스모스』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 『얼어붙은 섬』 등이 있다.
* 2008년 8월 5일 발행
* ISBN 1권 978-89-546-0642-4 04830, 2권 978-89-546-0643-1 04830, 세트 978-89-546-0644-8
* 153*224 | 각권 396쪽, 376쪽 | 각권 12,000원
* 담당편집 : 양수현(031-955-8863 shu@munha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