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충만한 세상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예술의 기체 같은 본질
미학이 승리를 구가하는 시대, 미를 열렬히 숭배하는 시대의 새로운 예술론
21세기가 시작된 지 어느덧 5년이 지나고 있다. 지난 20세기와 21세기의 경계에서, 세계 각지에서는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기대에 차서 각종 행사를 성대히 열었다. 그중 단연 돋보이는 행사는 프랑스의 ‘모든 지식의 대학’이었다. ‘모든 지식의 대학’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는 2000년 1월 1일부터 365일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국민을 대상으로 지식 강의를 했으며, 이를 기초로 백과사전을 출판했다. 요컨대 ‘모든 지식의 대학’은 “지식에 대한 토론과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의 장소이며, 20세기 마지막 민중의 대학이자 21세기 최초의 백과사전이 되었다”.
이같이 지식의 시대라 일컬어지는 21세기의 서막을 여는 데 있어서, ‘모든 지식의 대학’을 계획하고 성공으로 이끌어 낸 사람이 바로 프랑스의 저명한 미학자 이브 미쇼(Yves Michaud)였다. 1989년부터 에콜 데 보자르 학장으로 괄목할 만한 정책을 펼치며 10년간 그 대학을 이끌었고, 현재 파리1대학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이브 미쇼는 당대의 대표적인 철학자이자 예술비평가로 주목받는 인물이다. ‘모든 지식의 대학’이 대단원의 막을 내린 후, 1년간 그는 동시대미술(contemporary art)의 현주소를 짚어내는 명쾌한 이론서를 집필했는데, 그것이 바로 이 책『기체 상태의 예술』이다.
우리시대 미술에 대한 이브 미쇼의 명쾌한 진단서
현대미술을 대상으로 비평작업을 하는 수많은 비평가의 글에서 이브 미쇼의 이름을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다. 그것은 그만큼 이 시대의 미술에 대한 그의 예리한 통찰이 넓은 스펙트럼을 형성하며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다는 증거이겠다.
사실 예술은 시대에 따라 부단히 변신을 거듭해왔다. 어제의 예술과 오늘의 예술은 분명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에워싸고 있다. 당대 비평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이브 미쇼. 그는 이 책에서 한 가지 중요한 진단을 내린다. 20세기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거쳐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의 예술은, 이제 기체 상태가 되어 우리 생활 곳곳에 공기처럼 퍼져 있다는 것이다.
이 시대의 예술은, 지난 세기까지의 예술처럼 경건한 태도로 예술의 아우라를 감상하는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고 한다. 예술을 ‘경험’하게 할 뿐 아니라, 보존되기 힘든 형태로 작품이 만들어짐으로써 결국 예술의 ‘개념’만이 남는다는 것이다. 또한 과거에는 캔버스에 유채라든지 청동이나 돌로 깎인 조각 등 일상적인 소재와 확연히 다른 예술 재료로 작업을 했지만,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 이후에는 일상적인 오브제와 예술의 경계가 사라지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의 예술은 예술가가 선택하기 이전부터, 이미 일상생활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마치 공기처럼 널리 퍼진 채로. 이렇듯 이브 미쇼는 미를 열렬히 숭배하고, 미학이 승리를 구가하는 오늘날 ‘기체 상태’.로 남게 된 예술의 본질을 파헤쳐간다.
현대미술을 넘어, 동시대 미술에 대해 논하다!
이브 미쇼는 논의를 하기에 앞서, 용어에 대한 분석부터 명확히 한다. 즉, ‘modern art’와 ‘contemporary art’를 구분해 사용한다(이 책에서는 전자를 ‘현대미술’로, 후자를 ‘동시대미술’로 옮겼다).
이브 미쇼는 현대미술의 시기를 “세잔의 영향을 받아 입체주의가 태동하는 1905~1906년부터, 1960년대에 등장한 20세기 최후의 전위 미술들이 쇠퇴하고 소멸하는 1975~1978년까지”라고 규정짓고, 그 이후를 동시대미술의 시대로 구분하고 있다.
현대미술 이전에도 그러했지만, 특히 현대미술은 거대담론을 주창하고 사회나 예술의 변혁을 선언하며 그룹을 지어 운동을 벌였다. 반면 동시대미술은 예술가들이 대개 개별적으로 작업을 하는 대신, 하나의 주의(ism)를 주창하는 그룹이나 모임은 사라진 것이 특징이다. 또 개인의 내면을 담거나, 대중사회의 일면을 반영하기도 했으며, 여러 문화를 복합적으로 표현해냈다. 이브 미쇼는 이러한 특징이 다다이즘의 정신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반(反)운동을 표방한 다다의 정신이 오늘날에는 동시대미술의 중요한 특질로 실현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동시대미술은 형태상에서도 물질로 보존되지 않는 일시적 형태로 만들어짐으로써, 개념만 남아 기록된다. 그래서 “이제 대(大)예술(Grand Art)이나 대작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실상 미학이 승리를 거두는 새로운 구조 속으로 진입한 것”이라고 천명한다.
동시대미술의 특성에 대해 진단하면서 이브 미쇼는 “여전히 회화와 조각으로 대변되는 기존의 미술은 겉모습만 변한 게 아니라, 참으로 전혀 다른 것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그동안 우리가 생각하던 방식이나 미술사적 구분법, 용어 등에 의지해서는 동시대미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참으로 전혀 다른” 예술이 된 이상, 새로운 관점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예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처방전을 제시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만큼 예술로부터 멀어져버린 것은 아니다. 사실 예술적인 것은 엄청나게 많이, 곳곳에, 심지어 너무 많이 널려 있다.” 동시대미술의 모태를 기존의 미술에 두기는 어렵다. 동시대미술은 현대사회, 즉 대중매체가 확산되고 과학이 발달하고 관광이 생활화된 사회를 태반으로 태어났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그는 이전과 달라진 예술가상이나 광고나 영화, 사진 등과 상호교류 관계에 놓인 동시대예술을 예로 들면서 이러한 변화를 흥미롭게 설명한다.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동시대 미술이란 대체 무엇인가?
이브 미쇼는 ‘기체 상태’가 된 동시대미술에 대해 4개의 장으로 나누어서 명쾌한 논리로 설명해간다.
먼저 제1장 ‘동시대미술에 관한 작은 민족지학’에서는 인류학적인 접근법으로 동시대미술을 설명하고, 이 시대의 광고나 인터넷 등 여러 매체들과 ‘인터액티브’한 관계를 맺은 동시대미술의 기능에 대해 살펴본다. 또한 과거와 달리 작품 구성체들의 배치(설치미술 등)와 예술 과정(퍼포먼스 등)이 작품 제작의 중요한 특질이 된 동시대미술에 대해서도 상세히 언급한다.
제2장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동시대미술’에서는 특히 현대미술과의 연관성과 차이점 등을 면밀히 분석하면서 동시대미술을 전망하고 있다.
제3장 ‘미학이 승리한 시대의 미학을 향하여’에서는 발터 벤야민, 테오도어 아도르노, 아서 단토, 앙드레 말로 등의 학자들이 예견하고 진단해온 미학적인 성찰의 결과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제4장 ‘미학의 요청―쾌락주의, 관광주의, 다윈주의’에서는 쾌락을 즐기는 사회적 특성이나 전 세계적인 관광인구의 증가로 인한 문화생활의 변화를 통해 이 시대를 기반으로 하는 동시대미술의 특질을 명쾌하게 분석한다.
이러한 전개를 통해 이브 미쇼는 예술미학이 예술을 대체하고 ‘예술 경험’이 작품 제목이나 작품보다 우위에 서게 되고, 예술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입장이 특성을 대신하고 타협과 관계가 본질을 구성하는 새로운 예술 체제에 대해 설득력 있는 논지를 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