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여행자로 살기
그는 여행자다. 대학 졸업 후 여러 잡지사에서 일하며 팔도강산을 쏘다녔고, 히말라야에 매료되어 1996년부터는 아예 네팔에 눌러살다가 2002년에는 카트만두에 ‘소풍’이라는 간이음식점을 열고 네팔을 찾는 이들의 안내자 역을 맡아오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틈틈이 잡지글을 쓰고, 시를 쓰고, 기행문을 모아 몇 권의 책을 펴내기도 했다. 시집은 『나팔꽃 피는 창가에서』가 처음이다.
그는 산이 좋고, 사람이 좋고, 술이 좋은 모양이다. 그는 산을 올라 사람을 생각한다. “뻐꾸기 우는 능선에 올라서” “삶을 다시 한번 보듬어안는 꿈”을 꾼다 (「엽서」). 설산 넘어 수행자들의 성지 묵티나트에서도 “천하에 둘도 없는 해탈주”를 찾는다(「묵티나트」). 하얀 설산이 내다보이는 히말라야 산골 ‘나팔꽃 피는 창가’에서 히말라야 산골 사람들의 인정을 만나 괜스레 눈물을 찔끔거린다.
히말라야 산골 사람들은 창을 무척이나 사랑한다. 하얀 설산이 내다보이는 창 하나 새로 내달고는 온 동네 사람들을 불러모아 하루 종일 잔치를 벌인다.
(……)
집집마다, 아낙마다 뒤질세라 열심히 가꾸는 창가의 꽃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어린 딸들처럼 작고 예쁜 꽃들이 조르르 앉아 있는 창을 만날 때마다 나는 괜히 눈물이 났다.
―「나팔꽃 피는 창가에서」 중에서
그의 네팔에서, 히말라야의 신성함은 사람들의 삶을 넘어서지 않는다. 창이 신성한 것은 그 창에서 나팔꽃을 가꾸며 사람들이 사람들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순수하고 무구하니 산이 순수하고 무구한 것이다.
그의 시가 소박하고 애틋한 것도 그의 생활과 여행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의 시는 그의 생활과 여행을 초과하지 않는다. 그가 강원도 내린천에서 스님들을 만나 ‘이 근처 어디에 저 스님들이 암자를 지으면 나는 그 암자의 불목하니로 살까보다. 장작을 패서 아궁이에 불을 때고 장에 나가 쌀을 사오고, 초파일날은 연등도 만들까보다’ 하고 속으로 읊조릴 때(「가을에 만난 스님들」), 그의 생활과 산문과 시는 굳이 구별되지 않는다.
말 못 할 슬픔과 고운 것들이 수시로 여리게 반짝이는 시
그의 시집에 훈훈한 발문을 붙여준 유성용 시인은 그가 조숙한 아이이거나 함부로 성장하지 않는 아이, 혹은 ‘이 지상에 처음 온 아이’ 같다고 한다. 술과 여행의 나날은 아이에게도 말 못 할 슬픔과 고운 상처를 새기겠지만, 시인은 그것들을 다시 고운 시로 바꾸어내며 여행을 떠나고, 다시 고운 시와 함께 생활로 돌아오며 나이를 먹어갈 것이다. 그래서 영영 ‘이 지상에 처음 온 아이’ 같은 해말간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시인의 말’에서 그는 단 한 편의 자작시를 낭송하며 전국을 떠도는 방랑자를 만난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면서 자신은 한술 더 떠서 자신의 시집을 배낭 가득 짊어지고 팔도강산을 떠돌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고 한다. 그게 어디 소용이 닿겠느냐는 그의 겸사에도 불구하고, 그것 또한 그다운 생활이고 여행이고 시일 수도 있겠다 싶다.
그는 고작 여행자다. 여행이 생활이 돼버릴 만큼 긴 시간이었대도, 그는 여행자다. 어쩌면 여행이란 말도 적당치 않다. 그는 떠도는 자다. 그리고 누구보다 그 한계를 정확히 눈치채고 있는 사람이다. 삶의 근거가 없이 고작 여행하는 일은 언제나 허방 위에 자신의 누각을 짓는 일이다. 그것은 허무한 일도 아니고 오히려 나서서 그 허무 속을 걷는 일이다. 그 막막한 걸음 중에 그는 또 얼마나 많은 꿈을 꾸었을까. 그 꿈은 생활을 벗어나는 어떤 초월이 아니라, 오히려 생활로의 회귀였을 터다.
이 지상에 그는 처음 온 아이인가 싶다. 지구에 여러 차례 파견된 아이들을 인디고라 하지만, 그는 아무래도 이 지상에 처음 와본 아이다. 사람들은 그런 아이를 크리스털 베이비라고 부른다. 백지 영혼인 크리스털 베이비들은 얼마나 많은 체험을 하고 싶겠는가. 거대한 우주 도서관에는 크리스털 베이비들의 현장감 있는 경험을 정리한 새 도서들이 필요하겠지만, 나는 다만 늙어가는 자신을 바라보는 크리스털 베이비의 표정이 자꾸 떠오른다. 그의 시를 읽으면 말 못 할 슬픔과 고운 것들이 수시로 여리게 반짝인다.
_유성용(시인)
* 2006년 6월 30일 발행
* ISBN 89-546-0166-9 02810
* 121*186 | 112쪽 | 7,000원
* 담당편집 : 조연주, 이상술(031-955-8865, 88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