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능한 화가 반 고흐와 사악하나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난
고양이 빈센트의 달콤쌉싸름한 인생유전 -
반 고흐는 실패한 화가. 그의 내면엔 위대한 화가가 되고 말겠다는 열망이 들끓었지만 빈약한 재능이 문제였다. 예술에 조예가 깊어 그림을 사고파는 일에는 빼어난 수완을 자랑했지만 그는 화가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친구인 고갱과 로트레크조차 그의 재능을 비웃자(“한심해!”) 낙망한 그는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 사이를 쓸쓸히 거닐었다.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하는가? 다른 길은 없는가?
마침내 반 고흐는 잿빛으로 칙칙한 파리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돌아올 기약 없이 단단한 결심으로 그가 선택한 곳은 따뜻한 남쪽 나라, 늘 태양이 이글거리는 남프랑스 아를이었다.
그는 노란집에 거처를 정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지만 작업은 쉽지 않았고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역시 재능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도시의 은둔자였다.
쾌락으로 흥청대는 아를의 뒷골목에서 반 고흐는 우연히 도둑고양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고양이 한 마리를 구해내 정성껏 간호해준다.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그런데 고양이 빈센트는 실로 놀라운 재능을 지닌 천재였다. 무능한 반 고흐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경이로운 재능으로 걸작을 그려낸다. 게다가 미술사에 등장하는 위대한 걸작들도 사실은 빈센트의 조상들이 그려낸 작품이라지 않는가. 빈센트는 명문가의 후예였던 것이다.
둘은 꿈 같은 나날을 보낸다. 들판에 나가 함께 그림을 그리고 낮잠을 즐기는가 하면 하루의 일을 마치면 화구를 짊어지고 다정히 집에 돌아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빈센트의 무서운 광기가 잠을 깬다. 이성에 탐닉하고 반 고흐의 돈을 훔치는가 하면 술과 도박에 빠져 흥청거리기 시작했다. 반 고흐에게 천재 빈센트는 본받아야 할 스승이었기에 늘 참고 견뎌야 하는 쪽은 반 고흐였다. 빈센트는 매번 악행을 저지르고 반성하는 척했지만 그건 거짓이었다. 아… 반 고흐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시작되었음을 알았어야 했다.
고양이 빈센트의 망상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절세미인을 품에 안고, 또 이름난 명사가 되고 싶어했지만 현실에서는 고작해야 좀도둑에, 현상금이 걸린 범죄자에 불과했다. 빈센트는 마침내 ‘꼬리가 잡혀’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갇힌다. 그런데도 착하기만 한 유일한 친구 반 고흐는 빈센트를 버리지 않았다. 거액의 보석금을 내고 빈센트를 석방시켰던 것이다.
두 사람은 다시 예전처럼 사이 좋게 그림을 그리는 생활로 돌아갔지만 빈센트의 욕심과 악행은 늘어만 갔다. 빈센트는 고해성사를 늘어놓았던 교회에 불을 질렀고 반 고흐의 절친한 친구인 고갱을 농락하는가 하면 고갱이 아끼던 앵무새 폴을 구워 요리로 만들어버리는 만행을 저지른다.
고갱은 상처만 입고 떠났고 빈센트는 점점 더 미쳐갔다. 그 자신도 어쩔 수 없었던 광기는 그의 헌신적인 조력자인 반 고흐의 귀까지 잘라버렸고, 빈센트는 결국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제정신을 잃어버렸다. 빈센트가 갈 길은 이미 정해진 있었다. 어느 달빛 휘황한 밤, 까마귀가 불길하게 하늘을 뒤덮은 날에 빈센트는 결국 자신의 머리에 권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겨버린다.
빈센트는 떠나고 반 고흐는 혼자 남겨졌다. 반 고흐 역시 예전 그대로일 수는 없었으니 반쪽이었던 고양이 빈센트에 대한 그리움으로 수척해져만 갔다. 세월은 저 혼자 잘도 흘러갔고 반 고흐는 가끔 인생을 즐기기도 했지만 옛 친구를 잊지 못했다. 빈센트는 죽었지만 그의 저주는 그림 속에 여전히 살아 있었던 것일까? 빈센트의 그림을 본 모든 사람들이 미쳐버렸다. 사람들은 흥분해서 그림을 모두 부숴버렸고, 그런 추악한 그림을 사람들에게 내보인 죄로 반 고흐는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다. 이제 반 고흐에게는 절망만 남아 제발 빈센트의 영혼이 자신 또한 데려가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정신병원에 갇힌 반 고흐에게 고양이 빈센트의 환영이 어른거린다. 늘 빈센트의 악마적인 재능을 부러워했던 반 고흐. 빈센트는 반 고흐가 그림을 그릴 줄만 알았지 꿈꿀 줄 몰랐다고 힐난하고 마지막으로 ‘꿈꾸는 법’을 가르쳐주겠다고 말한다. 빈센트의 인도로 영원한 길을 떠나는 반 고흐. 별은 무섭게 빛나고 하늘은 맹렬히 소용돌이친다. 빈센트가 남긴 해바라기, 노란집, 해변의 고깃배, 커다란 실편백나무 또한 그 무서운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려버린다. 거기에 휘말려들어가는 반 고흐의 귓전엔 천만 광년이 지나서라도 언젠가 다시 만날 거라는 빈센트의 눈물 어린 속삭임이 들린다. 지금도 여전히 반 고흐와 빈센트의 하늘은 짙푸르고 하늘과 별과 바람은 끝없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 이 책은…
1_ 구상하고 완성하기까지 14년이 걸린 책
이 책은 우선 아름답다. 현역 화가이기도 한 스무자가 수채화로 한 장 한 장 손수 그린 그림들은 놀라운 정성, 끈기, 섬세한 색감, 화풍이 전혀 다른 화가들의 작품까지 거의 똑같이 재현한 능란함과 그것들을 요소요소에 적절히 배치한 구성력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게다가 세심하게 마련된 복선, 실제 있었던 이야기와 가공한 일화를 교묘하게 직조해 만들어낸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그의 재능은 도처에서 빛을 발한다. 스무자는 오랫동안 반 고흐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어했고, 무려 14년이 지나 한 권이 책이 탄생했다. 그는 14년 동안이나 반 고흐에 사로잡혀 있었고 급기야는 자신이 반 고흐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사람들은 모두 반 고흐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하지만 광기와 고독, 절망과 천재성 등 한 인간의 영혼 속에 공존하리라고 믿기 어려운 극한의 개성을 구현한 빈센트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예술가로서 자신의 역량을 꽃피울 풍성한 자양분에도 불구하고 왜 빈센트 반 고흐는 가난했고 이해받지 못했을까? 스무자의 상상력으로부터 이 흥미로운 이야기가 흘러나왔듯이 이 모든 질문과 답은 독자의 상상력과 나름의 해석, 경험과 감수성을 요구한다. 스무자가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고양이를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특별하고 공격적이고 야성적인 화가 반 고흐의 이미지와 고양이의 날카로운 발톱이 잘 조응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당신은 고양이를 키우고 있나요? 아, 물론이라구요… 그렇다면 주의 깊게 보세요. 그 고양이가 천재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어쩌면 모차르트나 아인슈타인의 현신일 수도 있잖아요!”
2_ 그림 속의 그림들
그림 속에는 그림이 숨어 있고, 그림들은 다른 표정으로 변신해 나타난다.
스무자는 본문 곳곳에 반 고흐, 모네, 드가, 들라크루아, 렘브란트, 부그로, 프라고나르 등의 걸작들을 멋지게 분장시켜 심어놓았다. 옛 대가들의 그림은 작품 자체로 등장하기도 하고, 이야기의 배경 내지는 하나의 풍경으로도 등장한다. 이 그림들은 바로크에서 신고전주의,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에 걸쳐 있고 시간적으로는 사백 년 동안의 양식상의 변화와 사회적인 변화들을 담아냈다. 그림들을 찬찬히 뜯어보라, 마치 렘브란트와 모네가 재림하기라도 한 듯하다!
3_ 맛을 더하는 양념들
스무자는 등장인물과 역사적 사건들을 별도로 정리해 본문 뒤에 첨부했다. 독자들은 이를 통해 이 책이 실존했던 화가들의 옛 일화와 오늘의 이야기, 지은이의 상상력이 결합된 창조물임을 확인할 수 있다. 또 하나! 원서에는 없지만 본문에 패러디한 그림들이 원래의 그림과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 비교할 수 있는 부록을 덧붙여 그림 감상하는 재미를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