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2004년 첫 소설집 『철제계단이 있는 천변풍경』을 내놓으며 현대인의 불안과 욕망에 대한 다양한 천착을 선보였던 김도언의 두번째 소설집 『악취미들』이 출간되었다. 2004년부터 올해까지 이 년 남짓한 기간 동안 ‘악취미들’이라는 부제를 붙이고 일련번호를 매겨 발표한 열 편의 작품을 역순으로 묶었다.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 상식과 금기를 깨뜨리는 대담한 상상력으로 인간 내면의 상처의 핵을 파고드는 집요한 탐색을 벌인다.
악취미, 병(病)의 기원 찾기
김도언의 소설은 위험하고 치명적이다. 위악과 냉소, 억압과 분열, 엽기와 탈주로 뒤엉킨 그의 소설은 그래서 불온하고, 불안하다. 『악취미들』은 한마디로 그 병적 징후의 극단을 보여주는 소설집이다. 책을 통해 작가가 시도하는 것은 징후뿐인 병의 실체, 즉 상처의 기원을 밝혀내는 일이다. 이를 위해 대체로 심리적 불구 상태에 놓여 있는 등장인물들이 동원된다. ‘악취미’는 그들의 기호인 동시에 존재 지표로써 작용하는 상징기제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한 도시의 시장 후보를 총으로 쏴 죽이려고 하는 음울한 낯빛의 청년이 있다. 그는 군복무중 사령관에게 치욕적인 성폭행을 당했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령관은 전역 후 정치계에 투신해 승승장구하고 있다(「B시 오후, 비 오고 흐림―악취미들 9」). 밤마다 제정신이 아닌 아내를 뒷자리에 태우고 다니는 택시기사와 승객에게 몸을 파는 아내. 그들의 상처는 실수로 죽인 자신들의 아이와 뜻하지 않게 찾아왔던 실업이다(「택시 드라이버―악취미들 8」). 고양이에게 알몸을 내맡긴 채 일종의 유사 수간을 벌이거나 의붓오빠와 성관계를 맺는 여자아이는 외삼촌과 근친상간을 범한 엄마의 ‘나쁜 피’가 유전된 경우다(「지붕 위의 날들―악취미들 4」). 좀더 선뜩한 예도 있다. 애완견을 자동차로 깔아뭉갠 뒤 버젓이 그 사진을 찍어 동호회 전시회장에 내걸고, 기르던 고양이를 갈기갈기 찢어 죽이는 여자. 그 가학심리의 기원은 사랑을 고백했다가도 잠자리에서 끔찍한 화상 자국이 남아 있는 자신의 몸을 보고 난 뒤에는 가차 없이 돌아선 남자들이다(「잔혹―악취미들 3」). 이 불구적 인간 군상들의 연극적 악취미를 통해 작가는 “삶이 어쩔 수 없이 지니는 불안과 공포에 대한 처절한 연민”(작가의 말)을 여실히 그려낸다. 즉 그의 소설은 인간의 삶이 감내하는 이율배반과 상처 입은 개인들의 날것 그대로의 역사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구조화해내고 있는 것이다. 김도언 소설의 맥락에서는 삶 자체가 곧 치유 불가능한 병이다. 횡행하는 온갖 악취미는 그 가장 확실한 징후다.
악몽으로부터의 도피, 데카당스
김도언의 소설의 모티프는 자못 퇴폐적이다. 그것은 그가 일관되게 유지해온 뚜렷한 개성 가운데 하나로 『악취미들』에서도 강박적으로 변주되는 모습이 보인다. 열네 살짜리 중학생 남자아이가 있다. 아버지는 시장이고 어머니는 절세미인이다. 하지만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스물네 살 먹은 입주 가정부다. 어머니는 그녀를 늘 못마땅해한다. 어머니에게 꾸지람을 듣는 날이면 가정부는 아이를 성적 노리개로 삼아 화풀이를 해댄다. 아버지가 외국 출장에서 다녀온 어느 날 가정부는 기분 좋은 얼굴을 하고는 아이를 방으로 부른 뒤 혀로 자신의 음부를 핥도록 한다. 가정부의 음부에는 은단 알이 서너 개 박혀 있다. 아버지의 입에서는 늘 은단 냄새가 난다. 아이는 누나의 음부를 정성껏 핥으면서 숨이 넘어갈 듯, 서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누나, 나 누나를 좆같은 아버지에게 빼앗기기 싫어. 내가 더 잘할게. 알았지, 누나? 응응.”(「나쁜 교육―악취미들 6」) 한편 대놓고 바람을 피우는 엄마를 둔 여자아이는 갑자기 섹스를 요구하는 택시기사에게 오늘은 몸이 안 좋다며 아무렇지도 않게 수음으로 대신해주고, 새벽녘 자신의 집 앞에서 쉬고 있는 청소부와 술집에서 만난 외국인 노동자를 집으로 데리고 가 섹스를 나누기도 한다. 이 여자아이의 꿈은 시인이 되는 것이다(「밤하늘은 호수다―악취미들 2」). 퇴폐는 전통적으로 절망과 도피의 심리와 맞닿아 있다. 김도언의 소설이 반복적으로 표출하는 퇴폐적 경향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것은 삶의 가혹한 현실, 즉 끊임없이 반복되는 악몽으로부터의 도피 의지를 간접적으로 의미하는 셈이다. 삶이 곧 고통스러운 병이며 악몽의 끊임없는 되풀이라는 우울한 전언을 내걸고 있으나 한편으로 『악취미들』은 그렇게 때문에 삶에 대한 의지와 연민이 얼마나 진정할 수 있는지를 다각도로 역설한다.
오한을 느낄 정도의 『악취미들』!
그의 『악취미들』은 삶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비수 같다. 말이 의표를 찌르고 악취미들 뒤편의 여운이 마음의 바닥까지 울린다. 생의 존재의의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하는 『악취미들』의 편편들은, 내 안의 결핍을 알 수 없어 외로웠다고 말할 때 요로에 박힌 결석처럼 아프다. 그 말은 누구도 고통을 대신할 수 없어서 고통은 위대하다는 어느 시인의 말에 겹쳐진다.『악취미들』은 창자를 끊어내듯 처절하고 음울한 소리로 우는 무연새의 고통기록이며, 어둠을 말하는 자들의 진실기록이다. 자신의 허물을 보고서 내심(內心)으로 자책하는 그 기록은 영구불변하는 금강석 같다.
진정한 작품은 최소조건을 ‘고통’으로 삼는다는 아도르노의 말이 바로 『악취미들』의 몫처럼 느껴진다. 읽는 내내 그늘져 어두운 곳과 구부러져 잘못된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악취미들에도 뒷모습의 슬픔이 가지는 아름다움이 있구나 싶었다. 오한을 느낄 정도의 『악취미들』! 내가 치열할수록 삶은 더 잔혹한 것일까 책장을 덮으며 깊은 숨을 쉬어본다.
천양희(소설가)
도무지 소설과 소설가가 겹쳐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더욱 매력적일 수도 있다. 내겐 김도언이 그랬다. 김도언의 이번 소설집 『악취미들』은 불안하고 위태위태하다. 다분히 정적이고 가끔 수줍은 소년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하는 그와는 영 딴판이다. 극한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이들을 쫓아가다보면 막다른 골목에서 길이 끊길 것 같은 불안으로 조마조마해진다. 그런데도 이 질주를 멈출 수 없다. 문장은 가속도가 붙는다. 내 속의 내게도 낯선 내가 누런 이를 드러내고 씨익 나를 향해 웃었다. 뜨끔, 한순간 나는 왜 김도언이 『악취미들』을 썼는지 깨닫게 되었다. 이 불온하고 불완전한 인간들을 속에 키우는 동안 그는 앙상하게 말라갔을 것이다. 내 안의 모래시계가 한 곳으로 와르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성란(소설가)
수록작품 발표지면
권태 ― 악취미들 10 ……『실천문학』 2006년 여름호
B시 오후, 비 오고 흐림 ― 악취미들 9 ……『한국문학』 2006년 여름호
택시 드라이버 ― 악취미들 8 ……『문학과경계』 2006년 여름호
고통의 관리 ― 악취미들 7 ……『창작과비평』 2005년 겨울호
나쁜 교육 ― 악취미들 6 ……『문학동네』 2005년 겨울호
너의 형에게 말해야겠다 ― 악취미들 5 …… 웹진 문장 2005년 6월
지붕 위의 날들 ― 악취미들 4 …… 테마 소설집 『어젯밤에 우리 아빠가』(샘터, 2005)
잔혹 ― 악취미들 3 ……『문학과사회』 2004년 가을호
밤하늘은 호수다 ― 악취미들 2 ……『내일을 여는 작가』 2004년 가을호
톱스타 살인사건 전말기 ― 악취미들 1 ……『문학ㆍ판』 2004년 봄호
* 초판발행 | 2006년 9월 22일
* ISBN 89-546-0164-2 03810
* 신국판 | 344쪽 | 9,500원
* 담당편집 | 조연주, 오경철(031-955-8865, 35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