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그림’을 되찾아주는 행복한 그림 이야기
그림에 관해서 누구나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미술을 전공한 사람만 그림에 관해 언급할 수 있는 것인 양 여긴다. 이는 우리 미술교육이 낳은 폐단의 한 결과이다. 마치 객관식 문제에서 정답을 고르듯이, 그림감상에서도 감상자의 생각보다 그림 속에 ‘숨겨둔’(것으로 상정하는) 화가의 메시지 파악을 우위에 두고 있는 미술교육 말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수많은 그림을 보면서 느꼈던 절절한 감동이 있어도 그것이 주관적인 탓에 함부로 얘기하지 않는다. 답이 틀릴까봐서? 또 틀리면 다른 사람들에게 창피 당할까봐서? 자기 내면의 소리는 젖혀둔 채 누구나 아는 정보를 자기 소감처럼 각색하여 들려줄 뿐이다.
그림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림에 관한 지식이 없더라도 살다가 문득 가슴을 울리는 그림을 만났다면 그 감동의 색감과 질감을 이야기하면 된다. 그리하여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신윤복의 「미인도」,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아니라 나만의 ‘다 빈치의 「모나리자」’, 나만의 ‘신윤복의 「미인도」’, 나만의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주관적인 감동을 계기로, 해당 그림에 관한 정보를 더한다면 그림감상법으로 더 바랄 게 없다. 그렇게 그림과 사귀면 되는 것이다.
감상자로서 용감해질 필요가 있다. 그림 감상은 누군가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것이다. 화가의 메시지는 그 다음에 받아들여도 늦지 않다.
이같은 현실에서, 조정육의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책은 ‘동양미술 에세이’라는 부제처럼 한/중/일(韓中日) 삼국의 그림을 통과한 지은이의 마음의 풍경들이다. 그 풍경 속에는 강세황, 강희언, 김두량, 김득신, 김명국, 김정희, 김홍도, 신윤복, 심사정, 안견, 윤두서, 윤용, 임백년, 장승업, 정선, 조희룡, 채용신, 최북(이상 우리나라), 동기창, 석도, 예찬, 왕유, 임웅, 장조화, 팔대산인, 운수평(이상 중국), 안도 히로시게, 와타나베 카잔, 요코야마 다이칸, 카츠시카 호쿠사이(이상 일본)의 그림이 두 팔을 활짝 벌리거나 골똘히 턱을 괴고 있다.
체험으로 보고, 마음으로 읽는 그림
지은이는 그림을 이야기하되 미술사적인 지식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그보다 자기 체험으로 접근한다. 그림은 지은이의 체험에 불을 지피고, 지은이는 내밀한 체험으로 그림의 의미를 발효시킨다. 가슴 아린 체험과의 따뜻한 교접으로 빚어진, 그림의 드넓은 의미망은 지은이의 삶을 되비추이며 동시에 그림의 마음을 열어주고, 다시 독자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된다. 이 책의 미덕은 여기서 찾아진다. 즉 독자가 지은이의 그림 이야기를 ‘통해서’, ‘내 인생의 그림 이야기’를 하게 해주는 것이다.
지은이는 「여는 글」에서 “어느 날 문득 그림에 가슴속에 들어왔다”고 토로한다. 그렇게 “당신의 가슴속에 물처럼 스며들어, 슬픔을 달래주고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며, 말을 걸어온 그림과의 대화는 10여 년 동안 계속되었고, 이제는 “그저 바라만 보아도 좋은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그 만남은 꽃에서 시작해서 꽃으로 마무리된다. 처음에 등장하는 꽃 이야기(「화려한 모란을 보는 슬픔」)는 치매중인 어머니로 인한 삶의 아픔이 배어 있지만 마지막의 꽃 이야기(「아침밥」)는 희망에 차 있다. 비록 마흔두 해 동안이지만 지은이가 겪은 크고 작은 상처와 고통들은 결코 그를 꺾지 못한다. 연꽃이 장관을 이룬 「연화수금도」를 보며, 지은이는 “아무리 힘들어도 힘들다고 포기하지 않는 연뿌리의 강인함”을 읽어내고 다시 아침 식탁을 차린다.
그의 삶을 수놓은 그림은 한둘이 아니다. 유난히 꽃을 좋아했던 어머니를 떠올리는 민화(民畵)인 「모란도」, 집안의 자랑거리이자 우상이었지만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작은오빠를 추억하게 하는 김두량의 「월야산수도」, 파란 많은 삶을 살다가 내림굿을 받고 제석불이 된 언니의 사연이 담긴 「삼불제석」, 죽은 엄마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보이시는 아버지(어머니의 주검에 쪽 소리가 나게 키스를 하시던)가 오버랩된 김득신의 「파적도」 등이 그것이다. 언니의 대수술과 팔대산인의 번뇌가 담긴 「팔팔조도」, 아아와 엄마의 뻐드렁니에서 느낀 ‘전통’과 ‘혁신’의 문제가 담긴 예찬의 「용슬재도」와 동기창의 「추경산수도」, 또 아이와 함께 신윤복의 「연당여유도」를 보며 느꼈던 ‘성교육’의 어려움을 들려주고, 서로가 지극히 아끼셨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떠올라 가슴이 싸아해진다는 김명국의 「설경도」, ‘복권 사는 교수님’의 일화를 통해서 예술가와 가난의 문제를 생각하는 역시 김명국의 「달마도」, 자전거 타기를 배우면서 깨달은 일상의 진리와 정선의 「금강전도」, 학생들이 감자를 먹고 싶어하자 수업중에 감자를 쪄오신 선생님과 김홍도의 「서당」, 비뇨기과와 신윤복의 「미인도」, 그림 속의 정자(亭子)에서 가슴 아픈 사랑을 묻고 사는 친구를 떠올리는 최북의 「공산무인도」등 지은이에게 그림과 삶은 하나다. 삶으로 그림을 만나고 그림으로 삶은 더 깊어진다.
이 책에 등장하는 그림은 사람들이 이 정도는 꼭 알아야 한다며 ‘거드름 피우는’ 명화들만 아니다. 인생의 어느 순간 지은이의 마음을 건드렸던 ‘사연 있는’ 그림들이다. 그것은, 다시 독자의 마음을 건드림으로써 “나이 마흔을 갓 넘긴 평범한 여자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넘어서, 우리 삶의 풍경이 된다.
지은이는 “나만큼 힘겨운 영혼에게 나는 이 글을 통해 그림 속에 들어가 편히 쉬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다”며, “알고 보면, 그림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것을…… 내가 말하지 않고 그의 곁에만 있어도 무한한 위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그림을 읽는 데는, 아니 그림을 아는 데는 지식보다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제 ‘그저 바라만 보아도 좋은’ 각자의 그림에 말을 거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