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이 보는 것이다! 현대미술이 지닌 맹점을 누구보다 먼저 날카롭게 짚어낸, 톰 울프의 이 책은 1945년부터 75년까지 미국 현대미술의 동향을 다루고 있다. 지은이는 미국 사회의 예리한 관찰자이자 저널리스트로서 현장에서 체험한 현대미술의 흐름을 생중계하듯이 일목요연하게 들려준다.
“1974년 4월 28일, 나는 드디어 깨달았다. 이 멍청이야, ‘보는 것이 아는 것’이 아니고 ‘아는 것이 보는 것’이야! 왜냐하면 현대미술은 완전히 문예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으며, 그림이나 다른 작품은 오직 문의(文意)를 예시하기 위해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12쪽)
지은이는 책머리에서 현대미술을 ‘보는 것이 곧 아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이 곧 보는 것’라는 관점으로 풀어간다.
이른바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은 현대미술은 인상파 이전의 미술처럼 그림 속에 이야기가 들어 있어서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내용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미술은 눈으로 봐서는 알 수가 없다. 타 장르는 차치하고 회화만 하더라도 회화가 자기만의 고유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독자적인 길을 걷는다. 회화를 문학적인 요소(이야기)와 3차원의 환영을 불러일으키는 조각적 요소(입체감)의 결합으로 보고 이들 각 요소를 분리하여, 마침내 순수하게 회화적인 것(평면성!)만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캔버스는 가시적으로 감상 가능한 이미지가 표백된 완전한 평면으로 변하고 만다. 이는 한 시대의 담론을 생산하며 미술의 흐름을 좌우해온 미술평론가들의 ‘이론’을 화가들이 작품에서 그대로 실천한 결과였다. 이론이 곧 회화가 된 것이다. 이로써 미술작품은, 뭔가를 알아야만 감상할 수 있는 이론의 시대가 열린다.
현대미술의 3대 지휘자―그린버그, 로젠버그, 스타인버그 지은이는 이렇게 회화가 변질되는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생생한 필치로 예리하게 추적한다. 여기에는 미국 현대미술이 태동하고 정착하기까지의 바하인드 스토리가 지은이의 예리한 통찰과 시니컬한 입담으로 흥미롭게 녹아 있다. 미술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오기까지의 과정, 이론에 대한 화가들의 과도한 집착, 당시 뉴욕 소호거리의 화가들의 생활상, 이론가들을 중심으로 한 화가들의 모임, 잭슨 폴록 같은 무명의 화가가 평론가들의 지원사격에 힘입어 성공하기까지의 과정 등등. 당시 이론을 주도한 이들은 이른바 ‘버그 삼인방’. 그들은 추상표현주의를 탄생시킨 클레멘트 그린버그, 액션페인팅에 무게를 실어준 해롤드 로젠버그, 그리고 팝아트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준 레오 스타인버그이다. 이들이 이론으로 미술계를 지휘하면 화가들은 그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작품을 생산한 것이다.
이론에 의한, 이론을 위한, 이론의 시대! 지은이는 그린버그나 로젠버그의 독특한 논증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공리 또는 선험적인 명제로 인식하여, ‘말씀이 그려진 회화(The Painted Word)’라 단언한다. 또한 레오 스타인버그의 등장으로, 추상표현주의가 끝나고 팝아트가 대두해도 “‘미술이론’ 자체는 또다시 멋지고, 귀하고, 아름다운, ‘미술의’ 승리를” 거둔다. 이런 과정이 팝아트를 거쳐 개념미술로 접어들 때, 이론은 더욱 기고만장해진다. 그래서 지은이는 이 책의 말미에서 기발한 예언도 서슴지 않는다.
“앞으로 25년 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1945~75년의 위대한 미국 미술 회고전을 열게 되면 이 시대를 대표하는 3명의 화가 폴록, 드 쿠닝, 존스가 아니라 그린버그, 로젠버그, 스타인버그로 벽에는 그들의 거대한 이론의 설명서가 걸리고 그 밑에는 조그마한 작품들의 복사화가 붙여져 ‘말씀의 도해자’가 될 것이다.”
한국 모더니즘 미술 계열의 교과서! 이는 다분히 냉소적인 진술이지만 당시의 상황을 이만큼 적확하게 지적한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말씀의 시대가 우리나라에서도 7,80년대의 모더니즘 계열 회화를 점화시켰고, 모더니즘 회화 관련 이론서가 흔치 않았던 시대에 이 책은 현대미술에 투신한 화가들의 교과서 역할을 한다. 지금 중견화가들의 이론적인 토대에는 톰 울프라는 이름과 이 책은 진한 흔적으로 남기고 있다. 80년대 이후 우리 미술의 상황이 이전과는 현저히 달라졌다고는 하나 미술학도들이 현대미술의 실체를 일목요연하게 공부하기에는 이만큼 작지만 알찬 길라잡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