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분명 누군가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 _스티븐 킹
이 소설, 참 괴상하다. 주인공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가 없다. 누구 하나 논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없다. 읽다가 ‘뭐, 이런 황당한’이라고 생각한 순간 어쩌면 내 주위도 그러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돌이키게 된다. 웃기고, 어이없고, 자연스럽고 마음을 휘젓는다._ ‘옮긴이의 말’에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 A. M. 홈스는 미국에선 이미 그녀만의 독특한 문학 세계를 인정받은 중견 작가이다. 1989년에 아버지가 커밍아웃을 한 열다섯 살 소년이 주인공인 장편소설 『잭』을 발표하며 데뷔한 홈스는 이후 발표하는 작품마다 일대 파란을 일으키며 평단과 독자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겉으로는 평범한 듯 보이는 동시대 미국 사회에서 쉽사리 끄집어내기 어려운 소재를 과감하게 소설로 형상화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1990년 발표한 날카롭고 도발적인 소설들을 모은 단편집 『사물의 안전성』은 결코 ‘무난하지 않은’ 작가로서 그녀의 입지를 확실히 다지는 계기가 되었고, 홈스는 이 책으로 1999년 <뉴요커>가 선정한 ‘21세기를 빛낼 작가 20인’에 이름을 올렸다.
홈스에 대한 평가에는 언제나 ‘대담한’ ‘독창적인’ ‘도전적인’ ‘불편한’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녀가 결코 안전한 글을 쓰는 작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가 1996년에 발표한 아동성애자의 관점에서 쓴 소설『엘리스의 끝』을 두고 퓰리처상 수상 작가 마이클 커닝햄은 “이 책은 A. M. 홈스를 오늘날 문단에서 가장 용감하고, 가장 무서운 작가 반열에 올렸다. 그녀는 결코 안전하게 움직이는 법이 없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평했다. 그리고 2002년 출간된 단편집 『당신이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해 영국 소설가 알리 스미스는 “재미있고, 반짝반짝 빛나고, 공기처럼 초연하며 가볍고, 꿈처럼 기묘하고, 진실만큼이나 기괴하다. 그래서 현실적이고 전형적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홈스에게 주목해야 할 또하나는 바로 문체이다. 그녀는 ‘평범하고 기괴한 삶’을, 독특하고 충격적인 소재를 주로 3인칭 시점을 사용해 군더더기 없이 담담하고 간결한 문체로 서술한다. 그래서 그녀가 다루는 소재가 충격적으로 느껴짐에도 이 문체 때문에 어느 정도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며 작품에 몰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홈스가 가장 최근에 발표한 장편소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에서도 홈스만의 이 독특한 문체는 빛을 발한다. 이전 작품들에 비해 온건하고 폭넓은 시선으로 ‘보통’의 평범한 세계가 어떻게 ‘보통 이상’이 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이 소설에서 홈스는 서서히 변화해가는 주인공 리처드 노박의 일상을 그녀만의 문체로 그려낸다.
고립되어 있던 그의 인생이 궤도를 벗어나
세상 속에서, 사람들 속에서 공전하기 시작한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베벌리힐스의 높은 언덕 중턱에 자리한 대저택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서 있는 이 남자는 젊은 시절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온 대가로 남부럽지 않은 부를 거머쥔 성공한 주식 중개인이다. 그는 일상을 윤택하게 가꿔주는 가정부와 트레이너와 영양사를 두고 있으며, 자신의 삶을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극심한 통증이 엄습한다. 온몸을 둘로 쪼개놓는 듯 날카로운 통증에 시달리며 그는 처음으로 ‘죽음’을 생각한다. 그리고 잠시 소파에 눕는다. 이는 지금까지 지켜온, ‘침대가 아니면 눕지 말 것, 낮 동안에는 절대 눕지 말 것’이라고 정해놓은 ‘혼자만의 규칙’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완벽하다고 생각해온 그의 세계에 틈입한 첫번째 균열의 징조이다.
응급차에 실려 병원 응급실로 들어간 그에게 간호사가 전화기를 건네주며 누구에게든 전화를 하라고 한다. 그러나 전화를 걸 만한 단 한 사람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철저히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우고, 의무를 없애버렸는지, 얼마나 바보같이 독립적이었는지’ 깨닫는다. 두번째 균열의 징조이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따스한 버터색 불빛에 끌려 택시를 세우고 들어간 도넛가게에서 가게 주인 앤힐이 내준 따뜻한 도넛과 커피 한 잔을 먹으며 그와 대화를 나눈다. 그는 오늘 처음 만난 앤힐에게 친근감을 느낀다. 생면부지인 앤힐이 스스럼없이 내미는 따뜻한 손을 잡는 순간, 그만의 세계는 쩍 갈라지고 언덕 아래 세상 속에서의 ‘모험’이 시작된다.
이혼한 전처와 아들 벤을 뉴욕에 두고 혼자 이곳 로스앤젤레스로 온 이후 리처드 노박은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진심으로 관심을 갖거나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앤힐을 다시 만나러 도넛가게가 있는 언덕 아래로 내려온 그날부터 그의 눈에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가족들에게 ‘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 것이 서글퍼 식료품점 야채 코너에서 울고 있던 가정주부 신시아가, 집 앞에 깊이 팬 구덩이에 빠진 말을 구해주기 위해 도움을 청하러 갔다 옆집에 산다는 걸 알게 된 영화배우 태드가, 납치당해 차 트렁크에 갇힌 여성이 보낸 SOS 신호가, 퇴근한 뒤 어떻게 집으로 돌아가는지도 몰랐던 가정부 세실리아가, 가족의 상처를 떠안고 고향을 떠난 뒤 한 번도 돌아가지 못한 괴짜 은둔 작가 닉이, 유방암에 걸려 한쪽 가슴을 도려내야 했던 요가 강사 시드니가,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상처로 게이가 된 훌쩍 커버린 아들 벤이…… 리처드는 앤힐이 자신에게 그랬듯 자기도 그들에게 혹은 다른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머뭇머뭇 손을 내민다.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에요? 여기저기 돌아다닌 선한 사마리아인?”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일 뿐입니다.”(89쪽)
그는 지금보다 큰 존재가 되고 싶고, 더 많은 것을 하고 싶다. 그리고 기분이 나아지고 싶다. 인생을 뛰어넘은 영웅이 되고 싶다. 불타는 건물에서 사람들을 구하고, 지붕 위를 건너뛰고 싶다. 사람들이 그를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는 크름으로 만든 우유통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본다. 어떻게 하면 중년의 평범한 남자가 뭔가가 될 수 있을까? 슈퍼 히어로는 아니더라도 말이다.(90쪽)
리처드가 내민 손을 그들이 자신들의 마주 내밀어 잡으면서 리처드의 삶은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는 더이상 혼자가 아니다. 어떻게 그 긴 시간을 그토록 혼자 고립되어 살 수 있었는지 믿기지 않을 만큼 누군가와 함께라는 사실이 행복하다.
그는 전율을 느낀다. 마침내 뭔가 할 일을 생각해냈다. 이제 그는 쓸모 있는 사람이다. 그는 플로리다에 있는 부모님에게 전화해 이 좋은 소식을 전하는 상상을 한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 사람들이 왜 널 필요로 하니? 돌봐줄 자식이 없대?”
“때로는 스스로를 위해 할 수 없는 일을 남에게 해줄 수도 있는 거죠.”(498쪽)
그러나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리처드의 삶만이 아니다. 그에게 마주 손을 내민 이들의 삶 또한 더이상 예전과 같지 않다. 리처드와 함께 공전하며 그들도 변화한다. 어쩌면 알게 모르게 그들 또한 혼자서 자전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괜찮아, 다 잘될 거야”라고 말하며 손을 내밀어주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분명 누군가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
홈스는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주인공 리처드 노박에게 일어난 이 모든 변화를 전혀 과장하거나 감정을 고양시키거나 갑자기 절정으로 치닫거나 하지 않고 담담하게 풀어간다. 심지어 찡하고 울릴 만한 결말다운 결말을 내놓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한번 리처드의 ‘모험’에 발을 들이면, 그 모험이 끝나기 전까지는 쉽사리 빠져나올 수가 없다. 어찌 보면 참 평범할 수 있는 삶이 전혀 평범하지 않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면서 차츰 빠져든다. 그리고 끝에 가서는 왠지 모를 카타르시스까지 느끼게 된다. 이게 바로 홈스의 문체가 가진 힘이 아닐까 싶다. 목소리 톤의 높낮이 없이 두런두런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더 애달아하며 뒷얘기를 궁금해하게 만드는 힘 말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 소설은 홈스의 이전 작품에 비해 다소 평범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책의 제목만큼은 그 어떤 작품보다도 도발적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 일종의 선언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이 제목은 어느 누구도 쉽게 던질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홈스는 정말 ‘대담한’ 작가가 맞다. 그러나 그만큼의 자신감이 없었다면 이를 제목으로 내세우지 못했을 것이다. 홈스는 리처드 노박의 모험을 통해 우리들의 인생에 찾아온 혹은 찾아올 ‘두번째 기회’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기회를 절대 놓치지 말라고, 자기 인생이 훨씬 더 풍요로워질 수 있는 기회를 꽉 움켜잡으라고 말이다.
이 책에 쏟아진 찬사
뭔가를 잃어버린 한 남성이 세상과 새롭게 조우하는 이 용기 있는 이야기는 한 세대의 시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캐치 22』나 『몽키 렌치 갱』 『호밀밭의 파수꾼』 같은 작품처럼. 이 소설에는 기운을 북돋아주는 요소가 많지만, 홈스의 담담한 문체가 이 소설이 축하카드가 되어버리는 것을 막아준다. 21세기 로스앤젤레스의 기묘한 분위기를 절묘하게 연출한 작품이다. 아마도 이 책은 분명 누군가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 스티븐 킹(소설가)
홈스의 소설은 기묘하고 따뜻하고 지혜롭고 정말로 굉장하다. 일종의 마법이 담긴 소설이다. 설명하기 쉽지 않은 중독성을 지닌 책. 마크 해던(소설가)
정신과 전문의로서 나는 언제나 영향을 줄 수 있는 예술 작품들을 눈여겨봐왔다. 홈스의 소설은 이러한 매우 특별한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이 책은 내 마음을 즐겁게 해주었다. 동시대 미국 사회를 살아가는 작가로서 홈스는 정신적으로 귀중한 보물과도 같은 글을 쓴다. 그녀의 글이 뿜어내는 빛은 매혹적이고도 놀랍다. 마크 엡스타인(정신과 전문의)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는 주목할 수밖에 없는 놀라운 책이다. 대도시 로스앤젤레스가 인간의 불안을 가중시킬 수도, 동시에 구원으로 가는 확실한 문을 열어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희망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무척 큰 위로가 되어줄 섬세하고 아름다운 책. 마이클 톨킨(영화제작자, 소설가)
홈스는 대담한 작가이다. 키르케고르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부른 것과 다르지 않은 주제를 유쾌하고 완벽하고 감동적인 소설로 풀어냈다. 릴리 턱(소설가)
옮긴이 이수현
197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학교 안 전공은 인류학, 학교 밖 전공은 환상문학이라고 주장한다.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석사 논문을 썼고, 『패러노말 마스터』로 제4회 한국판타지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현재 환상문학 웹진 거울(http://mirror.pe.kr)의 필진으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꿈꾸는 앵거스』 『천국의 데이트』 『사자와 결혼한 소녀』 『이리저리 움직이는 비비원숭이』 『기프트-서부 해안 연대기 2부』 『보이스-서부 해안 연대기 2부』 『파워-서부 해안 연대기 3부』 『유리 속의 소녀』 『빼앗긴 자들』 『로캐넌의 세계』 『멋진 징조들』 『디스크월드』 『크립토노미콘』 『겨울의 죽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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