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이야기꾼 다니엘 페낙, 가짜와 대역이 넘치는 현실을 풍자하다
프랑스 벨빌의 소시민 말로센 가족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그린 ‘말로센 시리즈’로 세계 각국에 마니아층을 형성한 작가 다니엘 페낙의 신작 『독재자와 해먹』이 출간되었다.『독재자와 해먹』은 라틴아메리카의 어느 나라를 무대로 광장공포증에 시달리는 독재자와 얼떨결에 그의 닮은꼴 노릇을 하게 된 이발사, 그리고 이어지는 여러 닮은꼴들이 벌이는 한바탕 익살극 같은 작품이다. 인간성과 권력의 허무에 대한 빛나는 성찰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소설 장르에 대한 페낙의 애정 어린 실험이 녹아 있는 이 작품은 프랑스 언론으로부터 “권력과 허무에 관한 보르헤스적 콩트” “다니엘 페낙이 써낸 채플린적 우화” “마르케스, 알바로 무티스, 우디 앨런을 떠올리게 한다”는 극찬을 받았고, 출간 당시 초판 12만 부가 즉시 매진되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권력의 허무와 부조리한 인생에 관한 바로크적 콩트!
“이 이야기는 광장공포증이 있는 어느 독재자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주인공 마누엘 페레이라 다 폰치 마르팅스는 라틴아메리카 어느 나라의 대지주 가문 출신 엘리트. 독재자의 막료로 일하던 그는 충동적으로 독재자를 살해하고 권력을 이어받는다. 그러나 어느 점쟁이에게서 자신이 광장에서 군중에게 몰매를 맞아 죽게 될 거라는 예언을 들은 뒤, 밤마다 악몽을 꾸고 광장공포증에 시달리게 된다. 급기야 그는 자신과 닮은 이발사를 훈련시켜 자기 대신 대통령 자리에 앉히고, 자신은 유럽으로 유람을 떠난다. 떨리는 마음으로 대통령 노릇을 하고 있던 독재자의 닮은꼴은, 어느 날 할리우드에서 온 영사기사를 통해 채플린의 영화를 접하고 영화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다. 이제 닮은꼴은 두번째 닮은꼴을 찾아 자기 자리에 앉히고, 영사기사에게서 영사기와 필름을 빼앗아 온 나라를 돌며 사람들에게 영화를 보여준다. 그는 영화배우의 꿈을 펼치기 위해 영화의 본고장 할리우드로 가는 대형 여객선에 오르고 할리우드에 입성하여 루돌프 발렌티노의 대역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렇게 여러 명의 닮은꼴이 등장하여 자신의 운명을 찾아 동분서주하는 동안, 진짜 마누엘 페레이라 다 폰치 마르팅스는 한 프랑스인 사업가로부터 고국의 소식을 듣게 된다. 현 대통령이 국민들의 대단한 신망을 얻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자, 그는 ‘진짜’ 자신을 앞에 두고 ‘가짜’ 자신을 칭찬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가고, 수도 테레지나의 중앙 광장에서 자기 흉내를 내고 있는 닮은꼴(사실은 네번째 닮은꼴)을 목격하게 된다. 그는 질투와 격분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 자리에서 닮은꼴을 쏘아 죽이고, 분노한 군중은 그에게 달려든다. 점쟁이가 예언했던 그의 운명이 현실이 되는 순간, 작가가 준비한 또하나의 반전이 독자의 뒤통수를 노린다.
사실과 허구를 뒤흔드는 해먹, 그 안에서 벌어지는 한바탕 유희
그러나 다니엘 페낙은 줄거리로만 소설을 이끌어가지 않는다. 이 소설에는 여러 가지 이종(異種)적인 요소들이 혼재되어 무한증식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브라질에 관한 작가의 추억이다. 실제로 1978년에서 1980년까지 브라질의 세르탕 고원지대에서 살았던 그는 나무 사이에 매어놓은 해먹에 누워 작품을 구상하기도 하고, 인간과 세계에 대한 갖가지 상념과 공상에 잠기기도 했다. ‘독재자와 해먹’이라는 이질적이고 관련 없어 보이는 소설 제목은 이렇게 탄생했다. 하늘과 땅 사이에 걸린 마름모꼴 해먹에 누워, 작가는 현실의 인물과 소설 속 인물의 경계를 허물고 그들이 소통하게 한다. 그는 찰리 채플린이 이발사 닮은꼴의 인생을 슬쩍 훔쳐 영화 <위대한 독재자>를 만들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급기야 이발사 닮은꼴의 시체를 처음 발견한 영화관 안내원 소냐를 실제 인물로 탈바꿈시켜, 그녀가 자신과 만나 이 소설(『독재자와 해먹』)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소설 속에서 뛰쳐나온 소냐는 소설을 읽어본 후 작가에게 묘사의 어떤 부분이 맞고 어떤 부분이 틀린지 지적하기도 하고, 모든 독자들을 대표하여 복잡하고 난삽한 소설의 구성에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관습적인 소설 형태에 익숙한 독자들이 전혀 새로운 형태의 이 소설을 읽고 당혹스러워할 것을 예견한 작가가 재치를 부린 대목이다. 작가는 또한 소냐의 입을 빌려 소설이라는 장르의 매력을 설파하기도 한다.
“모든 게 허용된 이 술병―소설이라는 술병―에 푹 잠겨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인생이라는 그 취한 상태를 알 수 있겠어요?” _(405쪽)
인간의 욕망과 그 욕망의 덧없음을 관조하는 휴머니즘
소설의 맨 끝에서 작가는 숨겨진 반전을 폭로함으로써 독자들을 또 한번 즐겁게 한다.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닮은꼴들을 찾아 세웠던 독재자들(소설 속에는 네번째 닮은꼴까지 등장한다)이, 실제로는 그 효용이 다할 때마다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바꿔치기 되어왔다는 것. 러시아 인형처럼 계속될 것만 같았던 독재자들의 역사가 한순간에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심지어 민중까지도 가짜 대통령을 진짜로 믿을 수 있었던 것일까. 책 속에 등장하는 수석통역관의 대답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민중은 남이 자기들에게 믿게 만들려 한 내용을 정말 믿는 것처럼 행동해. 그래서 때로는 그들이 진짜로 믿는다고 알게 만들기까지 한다니까.” _(495쪽)
오늘날은 가짜가 넘쳐나는 시대다. 짝퉁 루이뷔통과 짝퉁 구찌는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보인다. 진짜와 비슷하게 생긴 가짜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진짜를 구별해내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독재자가 자기 대신 닮은꼴을 세운다는 이 엉뚱한 이야기는 현실 정치에서도 왕왕 일어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자신과 외모가 닮은 이들을 선발해 훈련시킨 후 공개석상에 활용하고 있다거나,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과 각국의 정상들이 암살을 피하기 위해 대역을 쓰고 있다는 얘기는 매체에서도 자주 보도된다. 분명한 것은 모든 이들의 운명을 조종하는 것 같은 독재자가 실제로는 운명에 갇혀 움쭉달싹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 반면 끊임없이 흔들리며 몽상과 게으름과 양순한 철학을 상징하는 해먹은 인생의 수많은 주제를 성찰할 수 있는 드문 장소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 역시 독재자와 해먹을 끊임없이 오가면서, 독재자란 살과 뼈로 이루어진 하나의 덩어리에 불과한 반면, “해먹은 뭔가가 되려는 유혹에 맞선 한 현자의 고안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이다. (…) 해먹 안에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상상력이 풍부하면서도 가장 비생산적인 소설가였다”라는 페낙의 말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욕망과 그 욕망의 덧없음을 관조하는, 휴머니즘으로 가득한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소설의 즐거움을 한가득 선사해줄 것이다.
“나는 갖가지 우여곡절을 연료로 하여 작동하는 줄거리로 독자들을 이끌고 가려고 애썼습니다. 또한 나는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소설가의 작업실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독자들이 한 등장인물의 인생역정에 참여한다면 독자 또한 자신의 머릿속에 한 편의 소설을 창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_다니엘 페낙
현란한 소설이다. 경쾌한 문장은 땅에 발을 디디고 있지 않은 듯 보인다. _르 누벨 옵세르바퇴르
‘페낙 현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_리브르에브도
페낙은 현실의 인물과 허구의 인물들을 뒤죽박죽으로 섞어버린다. 그리고 우리는 꿈을 꾸게 된다. _오주르뒤 앙 프랑스
리드미컬한 판타지와 부조리의 색채를 함께 띠고 있다. 무한 증식하는 소재 속에 사실의 즐거움이 합쳐진 소설. _엘르
페낙은 매력적인 마술사다. 우리는 그의 마법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_리베라시옹
온화함과 유머로 가득한 작품. 몽상과 감미로운 광기에 대한 아름다운 서정시. _인터넷 독자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