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가 사자와 결혼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분명 사자가 소녀를 잡아먹을 테고 그러면 이야기는 끝인데 말이다. 그리고 어떻게 물에 빠져 죽은 소녀가 악어들에 의해 되살아날 수 있을까? 그리고 말하는 표범과 영리한 비비원숭이에 이르면…… 이건 불가능한 이야기다!” (들어가는 글에서)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로 유명한 알렉산더 매컬 스미스가 두 권의 아주 특별한 책을 들고 독자들을 찾아왔다. 『사자와 결혼한 소녀』와 『이리저리 움직이는 비비원숭이』가 바로 그것. 이 책들은 매컬 스미스가 아프리카의 두 나라 보츠와나와 짐바브웨에서 구전되는 민담들을 모아 엮어낸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민담은 일상에서 접하기 어려운 기이하고 마법 같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알렉산더 매컬 스미스란 탁월한 이야기꾼이 능청스레 전하는 아프리카 민담이기 때문이다.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구렁이가 담 넘듯 술술 풀어내는 매컬 스미스의 입담에 나오미 홀윌의 아기자기하고 깜찍한 일러스트가 곁들여지면서, 이 책은 자칫 교훈적으로 흐를 수 있는 이야기들을 엉뚱한 외장 속에 웃음으로 버무려놓았다. 소녀가 사자와 결혼을 하고, 표범은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하고, 뿔닭이 사람의 아이가 되는 이야기들을 읽어가면서 우리는 용기와 이기심,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 같은 삶의 지혜를 배운다. 잔혹하고 냉혹하지만 꼭 알아야 할 생의 진실도 마주한다. 삶이 언제나 공정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순간의 탐욕이 큰 화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독자들은 멀게만 느껴졌던 아프리카라는 땅을 보다 가깝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곳 역시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살아 숨 쉬고 있는 땅이라는 것을…….
멀리 아프리카에서 깜찍발랄한 친구들이 찾아왔다!
영리하고 심술궂고 앙증맞은 동물들이 펼쳐놓는 신기하고 기묘한 이야기의 향연
『사자와 결혼한 소녀』에는 열일곱 편의 매력적인 이야기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비비원숭이』에는 열아홉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사자와 결혼한 소녀』의 처음을 장식하고 있는 「친구에게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은 친구에 대한 질투로 결국 자신의 아이를 잃는 어리석은 표범이 주인공이다. 표범과 염소는 절친한 사이였으나, 한순간의 탐욕과 이기심으로 표범은 우정도 잃고 자신의 소중한 아이들도 잃는다. 이러한 교훈적인 메시지는 굶주림에 시달리던 가난한 남자가 우연히 노랫소리에 음식을 내려주는 신기한 나무를 만나게 되는 「노래 듣는 나무」에서도 읽을 수 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배고픈 가족들은 생각지 않고 자기 배만 채우다, 나무의 벌을 받고 만다. 절친한 친구를 속였다가 그 친구의 속임수에 자신의 어머니를 죽게 만든 「거북이와 달팽이의 슬픈 이야기」, 자기 아들의 명명의식에 새끼 표범을 희생제물로 쓰려다 결국 자기가 희생되고 마는 「용감한 사냥꾼」 역시 이기심이 불러오는 무시무시한 결과를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이 책에는 기지와 용기로 위험을 물리치는 동물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다른 동물들을 속여 위기에 처한 토끼가 꾀를 발휘하여 위험에서 벗어나는 「돌이 된 토끼」나 「토끼가 다시 한번 사자를 속이다」, 총명함과 용기로 거대한 뱀을 잡고 마을의 추장이 되는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거대한 뱀」 등이 그러하다.
아니나 다를까. 사자는 멋진 갈기를 곤두세우고 강인한 어깨 근육을 산들바람에 찰랑이는 물결처럼 꿈틀거리면서 길 한가운데 서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아이가 네가 약속한 딸이로군. 아주 예쁘구나. 이 아이와 결혼할 일이 기대된다.” 남편은 대경실색해서 아내를 보았고, 아내는 땅을 내려다보면서 사자가 한 말이 사실이라고 중얼거리기만 했다. 생전 처음 사자를 본 딸아이는 그렇게 무서운 존재와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토끼는 그 길가에 빽빽하게 자란 수풀 속에 앉아 이 광경을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도와줘요! 도와줘요!” 토끼는 길 위로 깡총 뛰어오르면서 외쳤다. “도움이 필요해요!” 사자가 토끼를 보고 무슨 도움이 필요하냐고 묻자 토끼가 대답했다. “근처에 바위가 몇 개 있는데요. 이 바위들이 굴러 떨어지려고 한답니다. 바위가 떨어지면 제가 오랜 시간을 들여 기른 곡식이 다 으깨질 거예요. 제발 도와주세요.” (중략) 토끼는 세 사람을 다른 바위 아래에 서게 하고 온 힘을 다해서 밀라고 시켰다. 그리고 토끼는 물러서서 사람들이 바위를 떠받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다 몇 분 뒤에 토끼가 말했다. “아주 좋은 생각이 났어요. 바위를 바칠 막대기가 있으면 힘이 덜 들 거예요.” 사자와 사람들 모두 좋은 생각이라는 데 동의했다. 토끼는 남자에게 가서 말했다. “근처에 가서 ‘가서 영영 돌아오지 마’라는 받침대를 찾아야 해요. 부인도 데려가세요.” 그런 다음 토끼는 딸에게 가서 말했다. “너도 이 근처에서 ‘역시 영영 가버려’라는 받침대를 찾아봐.” 토끼는 물러서서 세 사람이 받침대를 찾으러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토끼가 다시 한번 사자를 속이다」 중에서)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우리에게 이렇게 살면 안 되고 저렇게 살아야 착한 사람이라고 잔소리를 해대지만, 우리는 이 훈계에 짜증을 낼 수도, 귀를 막을 수도 없다. 꼬리에 못이 박혀 어쩌지 못하는 사자의 얼굴, 사자를 속여넘기고 공중 도약하는 토끼의 뻔뻔한 표정을 보고 웃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인간사의 보편적 윤리와 도덕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러나 그에 대해 생각하기 전에, 그리고 잠깐 동안 삶의 도리에 대해 심사숙고한 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웃는 것이다. 그것도 큰 소리로.
언론 서평 이 뛰어난 이야기들은 도덕적 진실을 간결하게 보여준다. 유익하고 매력 있는,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한 작품. _헤럴드 동물 세계와 인간 세계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드는 이 이야기들은 인간이 결코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그것의 일부임을 일깨워준다. _데일리 익스프레스
알렉산더 매컬 스미스 Alexander McCall Smith
1948년 짐바브웨에서 태어나 짐바브웨와 스코틀랜드에서 교육을 받았다. 스코틀랜드에서 법학 교수를 역임했던 그는 아프리카로 돌아가 보츠와나 대학에 로스쿨을 설립하는 데 공헌했으며, 이곳에서 법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미국과 이탈리아 등 세계 여러 나라 대학의 강단에 섰던 그는 현재 에든버러 대학교의 법의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매컬 스미스는 단편집과 아동문학을 포함해 지금까지 쉰 편 이상의 작품을 출간했는데, 1998년 발표한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인기 작가로 떠올랐다. 이 작품은 그해 부커 상 심사위원들로부터 특별 추천을 받았고, 『타임스 문예지』에서 선정한 ‘올해와 밀레니엄을 대표하는 해외 도서’에 선정되기도 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 시리즈, 『일요일 철학 클럽』 시리즈, 『천국의 데이트』 『꿈꾸는 앵거스』 등이 있다.
옮긴이 이수현
197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학교 안 전공은 인류학, 학교 밖 전공은 환상문학이라고 주장한다.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석사 논문을 썼고, 『패러노말 마스터』로 제4회 한국판타지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옮긴 책으로는 『빼앗긴 자들』 『로캐넌의 세계』 『멋진 징조들』 『디스크월드』 『크핍토노미콘』 『겨울의 죽음』 『거울 속 소녀』 등이 있다.
* 2007년 5월 18일 발행 * 124*186 | 168쪽 | 값 7,500원 * ISBN 978-89-546-0288-4 03890 * 책임 편집: 이현자(031-955-88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