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의 ‘생활의 발견’
대한민국 20대의 사생활에 대한 객관적 보고서
반지하와 옥탑이라는 ‘제3지대’에 대한 관찰기
요즘 잘 다니던 직장 때려치우고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해외로 떠났다 돌아와서는 책 한권 뚝딱 만들어내는 일이 유행이 되어 있다. 나를 현실의 틈바귀에 주저앉히는 세상의 여러 작용에 반항하고 용수철처럼 그 반대로 나아가는 것이 젊음의 본질이다. 현실로 돌아와서는 1년쯤 숨죽인 채 지내다가 또 생활의 질서 밖으로 튀어 나가서 정신을 해방시키고 꾸덕꾸덕해진 감각을 회복하는 일은 전 세계 젊은이들의 보편적인 라이프스타일일 것이다.
바깥에 대해, 미래에 대해, 나 아닌 것에 대해 쓰고 싶어 하는 것은 지금의 내가 누군가에게 읽히기에는 부끄럽고 멋쩍은 상태라는 심리를 반영한다. 20대가 쓰는 소설 속의 현실이 기괴하게 일그러지는 것은 남루한 일상을 감추고 싶은 욕망의 흔적이기도 하다. 뭔가 그럴듯한 것, 이를테면 커피와 같은 기호품, 잇스타일의 액세서리들, 길거리의 고양이들, 클로즈업된 사진들 등에 마니아적으로 몰두하는 것도 자신의 현실을 ‘시공간의 제약’과 ‘경제적 속박’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앉아서 손쉽게 초월하는 그들의 독특한 방식이기도 하다.
이것은 단순히 시대적 병폐가 아니라 젊음의 본질이라는 점을 다시 강조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기록의 본능’이 너무 팬덤화되어 있고 너무 장르화되어 있다는 느낌도 없지 않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20대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는 그다지 없다. 얼마 전 우석훈의 <88만원 세대>가 대단한 반향을 일으킨 가장 큰 이유는 그 책이 20대의 생활과 세대적 자화상을 리얼하게 ‘까발린’ 매우 드문 책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터넷신문 프로메테우스에서 연재중인 <88만원 세대를 위한 재무설계>와 같은 글에 출판사들이 눈독을 들이는 것도 그만큼 20대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분석하는 콘텐츠가 드물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20대, 자취의 달인>은 그런 점에서 의미 있는 ‘사회적 생산물’이다. 이 책은 대한민국 20대가 자신의 의식주 문제를 ‘주체적으로’ 관찰한 1년 동안의 기록이다. 자신이 꿈꾸는 것이 아니라, 먹고·자고·입는 그런 구체적인 생활을, 그것을 겪어내는 심리적 고충과 함께 풀어낸 ‘생활에세이’다. 직업전선의 말단에서 온갖 잔심부름을 도맡은 돈 없고 빽 없는 20대가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은 바로 ‘반지하방’과 ‘옥탑방’이다. 오직 이곳으로부터의 탈출만을 꿈꾸게 하는 열악한 이 ‘제3지대’는 ‘나만의 공간’이라는 점에서는 그지없이 소중한 최초의 선물이기도 하다. 이 책은 반지하방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20대 후반의 남자와, 옥탑방에서 서울생활을 만들어나가는 20대 중반의 여자가 각각 주인공이다.
반지하남 김귀현은 수원에서 나고 자라 늘 ‘인서울’을 꿈꿨으며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지만, 먼 거리를 통학하다가 서울에 있는 인터넷신문에 취직하면서 드디어 ‘독립’하게 된다. 옥탑녀 이유하는 부산의 방송국에서 작가로서의 첫 직장생활을 경험했으나 의도치 않은 ‘구조조정’을 당한 이후 ‘더이상 물러날 곳도 겁날 것도 없다’는 심정으로 짐을 택배로 부친 후 서울로 상경했다. 여기서 드러나듯, 이 책은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라는 오래된 표어처럼 서울 바깥에서 나고 자란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보편적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상경 후 옥탑방이나 반지하로 골인하는 상황에서 시작한다. 더구나 이 둘은 반지하와 옥탑에 도착하기 전에 ‘고시원’이라는 ‘연옥’을 거쳤다는 점에서 ‘코스’를 빠뜨리지 않고 제대로 밟은 ‘제3지대의 엘리트들’이라 할 수 있다.(*수원을 지방이라 할 수 있냐는 반론이 있을 법한데, 반지하남이 주장하는 수원 사람들의 정서는 확실히 ‘지방민’의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