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대학 강의실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는 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
200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오스트리아 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는 현대 독일어권 문학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천재성과 작가적 실험정신 및 문제의식으로 격찬을 받는 동시에 도전적 문제제기, 언어유희에서 비롯되는 작품의 난해성, 그리고 지나치게 노골적인 성애 묘사 등으로 비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또한 주제나 언어적인 측면에서 많은 논의거리를 내포하고 있는 옐리네크의 작품은 독일 대학의 문학 강의에서 매우 빈번하게 다뤄진다.
엘프리데 옐리네크는 창작 초기부터 페미니즘을 자기 문학의 근간으로 삼았고, 소설 『피아노를 치는 여자』 『욕망』, 희곡 『노라가 남편을 떠난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클라라 S.』등의 대표작을 통해 그 메시지를 전달해왔다. 여성 억압이라는 주제에서 시작한 옐리네크의 문제의식은 오스트리아의 나치 역사 청산 문제, 유럽 정치권의 극우화 경향,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의 스포츠 행사에서 나타나는 국가주의,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확대 등 이 시대의 정치 사회 문제로 범위를 넓혔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서 이런 민감한 이슈들을 꾸준히 다루며 목소리를 내왔고, 그 결과 오스트리아의 가장 불편한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옐리네크의 이런 비판적 참여정신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이 주제적 무게와 깊이의 면에서 결코 녹록지 않은 그의 문학적 성과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2004년 스웨덴 한림원이 옐리네크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결정한 것도 거의 음악적인 경지에 가깝게 언어를 구사하는 탁월한 능력과 더불어 유럽의 ‘비판적 지성’으로 대표되는 그의 문학이 지향하는 사회적 참여성을 높이 평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_ ‘해설’ 중에서
『피아노 치는 여자』는 폭력과 굴종의 냉혹한 세계를 잘 표현해낸 작품이다. _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
1983년에 발표된 옐리네크의 대표작 『피아노 치는 여자』는 자전적 성격이 강한 소설이다. 주인공 에리카 코후트처럼 옐리네크도 어린 시절 자신을 탁월한 피아니스트로 만들기 위해 철저하게 스파르타식 훈련을 시켰던 어머니를 증오했고, 어머니에 대한 반발심으로 음악대학을 졸업하고도 음악가의 길을 가지 않고 독문학과 연극을 공부했다고 고백한다. 옐리네크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종속적이고 비정상적인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동정 혹은 서글픔 같은 감정은 완전히 배제된, 섬뜩할 만큼 냉정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피아니스트가 되는 데 실패하고 음악원 피아노 선생으로 남게 된 에리카는 삼십대 중반의 나이에도 어머니에게 ‘내 귀여운 회오리바람’이라고 불린다. 어머니에게 있어 딸은 남편(남근)의 부재를 채워주고 자신의 나르시시즘을 충족시켜줄 유일한 존재이다. 어머니는 에리카의 생활 전체를 통제하고, 딸에게 ‘유일하고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될 것을 역설하면서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차단한다. 자신과 딸 사이에는 그 누구도 끼어들 수 없다. 에리카가 옷, 구두, 장신구 따위를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도 딸이 예쁘게 꾸미고 다녀 남자들의 시선을 끄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딸이 오로지 ‘자신만의 에리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어머니의 통제는 어려서부터 에리카에게 남들이 가진 물건을 부러워하는 마음을 갖게 했고, 그것은 곧 자신이 갖지 못한 물건들을 파괴하고 그 소유자들을 학대하려는 사디즘 성향으로 이어진다.
어머니의 지나친 간섭과 지배로 인해 에리카는 사디즘뿐 아니라 자신을 학대하는 마조히즘 성향도 갖게 된다. 자기 방에 혼자 있을 때면 아버지가 쓰던 면도칼로 자기 몸을 베는 것이다. 이런 행위를 통해 그녀는 자해를 하는 권력자와 그 고통을 감수하는 순종적인 피지배자라는 두 가지 자아를 연출하며 사도마조히즘 성향을 드러낸다.
어머니에게 남성을 대신하는 의미로 존재하는 에리카는 자신의 여성성을 증오하고 부정한다. 가끔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하고 핍쇼(peep show)를 보러 가서 남성들 틈에서 남성적인 태도로 관람하지만, 아무 감정 없이 대상을 관찰하기만 할 뿐, 남성이 될 수도, 남성이 느끼는 감정을 가질 수도 없고, 결국 자신은 여성일 수밖에 없음을 절감하게 된다.
에리카의 제자인 대학생 클레머가 에리카에게 남성으로서 접근해온다. 그는 에리카와 성적인 관계를 맺으려고 집요하게 노력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클레머의 ‘일반적인’ 욕망과, 성적관계에서 남성의 지배자 역할을 박탈해 자신이 그 위치를 점하고자 하는 에리카의 비뚤어진 욕망은 결코 맞닿을 수가 없는 것이다. 에리카는 성적 흥분이 고조에 달해 고통을 느끼기까지 하는 클레머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명령하고는 클레머의 몸을 관찰하며, 자신이 원하는 행위, 즉 사슬로 묶고 채찍질을 해달라는 등의 비정상적 요구를 편지에 자세하게 적어 클레머에게 전달한다. 그러면서도 내심 클레머가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보통의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이중적이고 자가당착적인 심리를 보인다.
클레머는 남성인 자신이 주도하는 성적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것에 모욕감을 느끼고 복수심에 에리카를 찾아가 그녀가 편지에 쓴 대로 그녀를 폭행하고 성적으로 학대한다. 에리카는 그 일로 깊은 심리적 상처를 입고, 다음 날 칼을 지니고 클레머를 찾아가지만, 마음먹은 대로 하지 못하고 자기 어깨에 칼을 꽂고 만다. 점점 강렬해지는 햇볕을 받으며 걸어가는 에리카는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 알고 있다. 그녀는 집으로, 즉 ‘어머니에게로’ 돌아간다. 결국 에리카는 자신을 철저하게 성불구자로 만든 어머니에게서 끝까지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추천사
어머니와 딸, 예술가와 연인의 눈부시면서도 쓰디쓴 초상화. _ 존 호크스(소설가)
씁쓸한 아이러니의 강렬함으로 독자를 유혹하는 감탄스러운 작품. _ LA 타임스
노골적이고 맹목적인 성 묘사, 가차 없는 현실 폭로, 마구잡이로 토해내는 언어 등으로 격찬과 비판을 동시에 받는 옐리네크는 『피아노 치는 여자』에서 보여주듯 충격적인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가장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작가이다. _ 조선일보
옐리네크는 사회적, 정치적 부조리와 남성 중심적 권력체제에 대한 분노와 항거의 목소리로 강력한 언어적 열정을 갖고 독자들의 의식을 뿌리째 흔들어놓는다. _ 동아일보
옐리네크의 작품들은 장르를 불문하고 성적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서구사회와 인류 문명 전체에 대한 근원적인 비판으로 나아가는 면모를 보인다. _ 한겨레
담당: 해외문학 2팀 이은현(singing36@munhak.com, 031-955-26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