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 Cool! 아무 스펙 없는 이력서 한 통으로 이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아남기!
‘한자와 료. 19세. 가족―누나 한자와 도코. 면허 및 자격―어디든지 갈 수 있는 티켓. 취미 및 특기―다림질과 호신술. 지원동기―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난생처음 써본 이력서로 주유소 심야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은 ‘나’는 어느 날, 스쿠터를 끌고 와 1리터도 안 되는 기름을 넣고 간 소녀에게서 한 통의 수상쩍은 러브레터를 받는다. ‘우루시바라’라는 특이한 이름의 그녀는 약대 입학을 준비하는 재수생인데, 밤새 공부를 하는 틈틈이 주유소 직원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 유일한 취미라는 것. 혹시 괜찮다면 그런 자신을 위해 새벽 세시 정도에 체조를 해달라는 우루시바라의 부탁에, 다음날부터 매일 새벽 두 사람은 은밀한 ‘교신’을 나누게 된다. 누나의 절친한 친구 야마자키 씨와의 만남, 조금씩 알게 되는 누나의 과거, 우루시바라의 편지들, 주유소 선배 가토 씨의 수다 속에서 평화롭고도 기묘한 생활을 계속해나가는 나. 그리고 자전거 하이킹을 간 낯선 도시에서, 나는 나의 진짜 이름을 아는 누군가를 만난다……
“중요한 것은 의지와 용기.
그것만 있으면, 웬만한 일들은 다 잘 풀리게 되어 있어.”
『이력서』의 주인공 한자와 료는 흔히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모든 것이 텅 비어 있는 존재이다. 유일한 가족인 누나도 친누나가 아니라 그저 남동생이 갖고 싶단 마음에 길에서 료를 ‘주워온’ 것이고, 그에게는 이렇다 할 경력이나 학력이 전무한 것은 물론 이름과 나이마저도 진실인지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누나의 말에 그가 반 장난으로 작성한 또 한 장의 이력서에는 분명히 한자와 료라는 인간이 존재하고, 그는 이력서 속 가상의 자신을 하루하루 착실하게 현실로 만들어나간다.
수수께끼 헬멧 소녀의 청에 따라 새벽마다 달밤에 체조를 하고,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유행했던 ‘호신술’ 책(‘사과하는 척하고 공격하기’, ‘우는 여성에게는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단 머릿결 반대로 쓰다듬으면 역효과’ 같은 유의)을 들고 진지하게 공원에서 발차기 기술을 연마하고, 누나와 야마자키 씨를 위해 앤티크 가게에서 거금을 주고 고양이 재떨이를 사오는 료의 모습은 꼭 영화 <아멜리에>나 <중경삼림>의 비현실적인 몽상가 주인공들처럼 귀엽고 사랑스럽다. “친구의 남동생과 키스하는 것이 꿈이었어”라는 야마자키 씨의 말에 료가 응하는 장면에서, 작가는 아주 짧은 한순간 지상에 현현했다가 사라지는 마법 같은 밤 시간을 영화의 한 컷처럼 소박하고도 담담하게 그려낸다.
그것은 완만하게 마무리된 키스였다. 불 꺼진 거실이라는 검은 종이에서 나와 야마자키 씨만을 추출해낸, 두 사람만 떼어내서 도화지에 붙여놓은 듯한 모습의 키스였다. 굉장해, 나는 생각했다.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인생은 정말 굉장해.
_본문 중에서
언뜻 동화처럼 이어지는 장면들 사이사이, 작가는 양념처럼 톡 쏘는 현실미를 뿌려놓았다. 우연히 들어간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옛 친구를 맞닥뜨리는 가벼운 반전 이후, ‘나’는 어느새 자신의 허구를 자각하고는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는 선배에게 저도 모르게 본명을 말해버린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한자와 료’로서의 생활은 무너지지 않는다.
드디어 헬멧을 벗고 얼굴을 드러낸 신비의 소녀 우루시바라와 한밤의 데이트를 하면서, ‘나’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그녀에게 ‘나’는 ‘한자와 료’의 이름이 씌어 있는 이력서를 건네준다. 그곳에는 실제의 자기 모습은 없지만, 현재의 ‘나’인 ‘한자와 료’를 만들고 이끌어주는 ‘의지와 용기’가 또렷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은 서로의 상상 속에서 멋대로 만들어낸 상대방의 이미지를 그대로 간직한 채, 해피엔드를 향해 사이좋게 나아간다.
손바닥 위의 YES
오노 요코의 작품 중에 <예스 페인팅>이란 것이 있다. 하얀 판이 천장에 수평으로 매달려 있고, 그 밑에는 사다리가 놓여 있다. 사다리를 올라 살펴보면 판에는 아주 작은 글씨로 무언가가 씌어 있다. 옆에 매달려 있는 돋보기로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YES’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중요한 것은 의지와 용기’라는 누나의 말은, 이 ‘YES’처럼, 이 책을 손에 들고 이야기를 찾아온 모든 독자들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그 ‘의지와 용기’라는 동기는 여러 장면을 통해 보여지면서 마지막까지 과감하게 이야기를 끌고 간다. 이 소설의 생명은 바로 그것에 있다.
누군가 말해줄 듯하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누나의 그 말. ‘달에서 내려온 것 같은’ 신비한 우루시바라의 존재. 아마자키 씨와의 작은 키스신. 그것들은 이 소설이 판타지 같은 이야기라서 그려진 장면들이 아니다. 그것들 모두, 독자를 향해 내민 ‘YES’인 것이다.
_고노 다케히로(뮤지션, 록 밴드 ‘GOING UNDER GROUND’ 멤버)
따스한 시선으로 젊은 날의 풋풋함과 순수함을 가만히 축복하면서, 끝에 가서는 알싸한 뒷맛을 남기는 기분좋은 마무리. 작품 전체에 가득 찬 ‘긍정의 힘’이야말로 이 『이력서』라는 제목에 가장 잘 어울리는 주제가 아닐까. 희망과 불안, 과거와 미래가 느긋하게 교차하는 이 흔치 않은 느낌의 청춘소설을 만들어낸 작가의 행보를 앞으로 주목해봐도 좋을 듯하다.
나카무라 코우(中村 航)
1969년 기후 현 출생. 고등학교 시절부터 밴드 활동을 했으며 1993년 대학을 졸업하고 광학기계회사에 입사하였다. 1997년 밴드 활동 중지 후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고 이 년 후 회사를 퇴사, 2002년 『이력서』로 제39회 문예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이어서 2003년 『여름휴가』가 제129회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올랐으며, 2004년 『빙글빙글 도는 미끄럼틀』로 제26회 노마 문예 신인상을 수상했다. 그 외의 작품으로 『100번 울기』 『절대, 최강의 사랑 노래』 등이 있다.
http://www.nakamurakou.com
옮긴이 현정수
일본문학 전문 번역가. 상명대학교 소프트웨어학과 졸업. 옮긴 책으로 『여름휴가』 『NHK에 어서 오세요』 『목 조르는 로맨티스트』 『잘린 머리 사이클』 『네거티브 해피 체인 소 에지』 등이 있으며, 잡지 『파우스트』의 번역진으로도 활동중이다.
* 2007년 8월 20일 발행
* ISBN 978-89-546-0354-6 03830
* 124*184 | 240쪽 | 9,800원
* 담당편집 : 양수현(031-955-88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