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통해 환기되는 삶과 사랑의 실체 『이런 사랑』
메디테라네 상 수상작, 공쿠르 상, 메디치 상 후보작
수직으로 내리꽂히며 대지를 달구던 태양도 식어가고 찬바람이 한줄기 불어오는 늦여름의 피렌체. 아르노 강의 한 다리 아래서 한 남자의 익사체가 발견된다. 그의 약혼녀가 실종 신고를 한 지 이틀 만의 일이다. 피렌체의 내로라하는 명가(名家)의 아들 루카 살리에리, 나이는 스물아홉 살. 그는 어떻게 죽었는가? 사고인가, 자살인가, 아니면 살인사건인가?
한 남자의 의문사를 알리는, 조서와도 같은 담담한 목소리로 포문을 여는 『이런 사랑』은, 한 남자와 그가 사랑한 한 여인과 남자(그렇다, 그의 두 연인 중 하나는 남자이다)의 기이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세 연인은 각자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사랑을 추억하고, 망자를 추모하고, 비정한 삶의 아린 맛을 독백한다. 더없이 로매틱한 이야기를, 미스터리적 구조와 뼈만 발라낸 듯 정련한 스타일이라는 역설적 조화로 완성한 이 소설은 지금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 꼽히는, 그리고 이제는 작가의 신작 발표가 문단의 한 ‘사건’으로 자리 잡힌 필립 베송의 메디테라네 상 수상작이자 공쿠르 상, 메디치 상 후보작이다. 숨 막힐 듯 섬세하고 절제된 문체로 죽음, 고독, 타인과의 관계라는 주제를 깊이 천착해온 필립 베송이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것은 『이런 사랑』이 처음이다. 작가 고유의 세계관과 천착해온 주제를 가장 선명하면서도 뛰어난 스타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이 우리나라 독자들도 깊이 공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들 중 가장 먼저 선보이게 되었다.
이런 사랑, 도 있다
삶을 기어이 운명으로 바꾸어놓고야 마는
이런 사랑, 도 있다…
『이런 사랑』을 이끌어가는 것은 이미 주검이 된 루카 살리에리와 그의 두 연인 안나 모란테, 레오 베르티나의 ‘목소리’다. 그들은 번갈아가며 마법 같은 첫 만남의 순간을, 뜨거웠지만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사랑의 순간을, 배신당한 사랑 때문에 휘청거리는 순간을 말한다. 루카는 숨을 거둔 후에 겪는 육체의 변화, 장례 절차와 매장, 고요한 무덤 속, 안나와 레오를 향한 각기 다른 사랑을, 안나는 갑작스러운 연인의 죽음과 배신에 직면한 고통을, 레오는 타인과의 유일한 끈이었던 사랑을 잃은 상실감과 고독을 노래한다. 작가 특유의 세심하고 정교하며 강박에 가깝게 다듬어진 문체로 포착된 세 인물의 내면의 독백은 금세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갑작스럽게 상(喪)을 당한 안나는 루카의 부모님과 함께 장례식을 치르는 등 현실적인 일을 처리하는 한편, 수수께끼 같은 루카의 죽음을 끊임없이 그리고 고통스럽게 곱씹는다. 부검 결과에 접근할 권리가 없는 안나는 죽은 애인의 빈집으로 찾아가지만, 그녀가 깨닫게 된 것은 애인의 부재와 “몸을 가눌 수 없는” 고통이다. 그러나 그녀는 함께한 사랑의 세월만큼이나 두꺼운 미스터리의 장막을 걷자고 결심한다. 그녀는, “끔찍한 진실과 완벽한 소설”을, 심지어 믿을 수만 있다면 거짓말이라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그리고 마침내, 루카가 용의주도하게 숨겨온 어둠을 발견한다. 그녀가 사랑했고,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고 믿은 남자, 총명하고 아름다운 청년에게 감춰진 어둠을. 안나 모란테가 고통 속에 찾은 불편한 진실은 바로 레오라는 청년이다.
레오 베르티나는 피렌체 역에서 몸을 파는 남창이다. 벼락같은 첫 만남의 순간 둘은 서로의 모든 것을 알아보고 사랑에 빠진다. 서로에 대한 감정을 말로 표현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사랑은 처음 순간부터 그들에게는 영원한 진실이었다. 레오는 신문의 부고 난을 통해 루카의 죽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는 장례식조차 참석할 수 없다. 그는 숨겨진 연인,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으므로.
어느 날, 한 젊은 남자가 단호한 걸음걸이로 나를 향해 걸어왔다. 차분한 인상에 긴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늘어뜨린 남자였다. 파솔리니 영화에 나오는 길 잃은 예수 같았다. 그는 단지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내 이름은 루카야.’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슨 말을 할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부터 내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리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전과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으리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몇 마디 말이면 충분했다. ―레오 베르티나
안나는 루카의 사건을 담당한 형사에게서 루카의 몸에서 레오 베르티나의 정액이 발견되었음을 알게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암흑의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던 안나가 잡은 것은 날카로운 칼. 레오와 루카가 연인이라는 진실은 그녀를 단숨에 무너뜨린다. 그들의 관계는 거짓이며 사랑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는 절망한다.
루카가 레오에 관해 거짓말한 것으로 봐서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도 거짓말하지 않았다는 보장이 없지 않는가? 모든 것이 그런 척한 것이었다면? 진심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면? 우리 두 사람의 관계는 비참한 가장 행렬에 불과했고 연극에 지나지 않았으며 나는 그 연극에서 알지도 못한 채 역할을 맡은 것뿐이었다면?” ―안나 모란테
한편 죽음 저편에서 그림자처럼 떠도는 루카 살리에리는 자신의 육체가 진흙탕의 강물에서 차가운 방의 검시 테이블 위로 옮겨지는 과정, 검시관이 부검하는 과정, 염습해 관에 들어가고 장례식을 치르고 마침내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모두 지켜본다. 절망하는 안나와 장례식장 밖에 혼자 서 있는 레오를 지켜보고, 그들을 사랑했던 시간을 회상한다. 그리고 안나와 부모님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자신의 그늘과 어두운 비밀을 발견하고는 가증스럽다고, 배신이라고 소리칠 것임을 안다.
약간의 거짓말과 생략이 안나를 사랑하는 데 장애가 된 적은 한 번도 없다. 나는 진정으로 안나를 사랑했다. 여기에는 어떤 모호함도 없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다. 곰곰이 돌이켜보건대, 나는 레오의 존재 외에는 안나에게 숨긴 것이 하나도 없다. 레오 외의 모든 것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투명했다.
당신, 당신은 모든 진실을 말했는가? ”―루카 살리에리
안나는 레오를 만나러 피렌체 역으로 간다. 출발과 도착을 알리는 안내방송, 스낵 코너에서 풍기는 음식 냄새,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불결한 역에서 안나와 레오가 마주 선다. 그리고 또다른 배신과 씁쓸한 환멸감을 안고 돌아선다. 두 사람이 피렌체 역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는 장면은 이 소설의 백미로, ‘내 작품들은 거의가 내면의 독백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일은 등장인물들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며 외부는 이제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작가의 말을 뒷받침하는 모범적인 사례다. 침묵이 더 많은 말을 하고, 말해지지 않은 것들이 뚜렷이 모습을 드러내며, 두 사람의 머릿속 상념 외에 모든 것이 정지된 순간.
결국 경찰은 루카의 죽음이 사고사라는 결론을 내리고 수사를 종결짓기로 한다. 레오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가을밤, 혼자 호텔방에서 루카를 생각한다. 그와 나눈 키스를, 처음부터 그들의 감정이 “확고하고 영원히 자리 잡은 진실”이었음을 떠올린다. 안나는 고독한 집에 웅크리고 앉아 한때 자신의 것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이 “모조품”일지 모르며 루카와의 관계가 “모래 위에” 세워진 것이라는 냉혹한 진실을 깨닫고 자문한다.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가능한가. 그리고 최후의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히는 루카의 목소리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함께한 사랑의 시간은 욕망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간만큼 수수께끼와 비밀의 두께만 두툼해질 뿐. 함께한다는 자체가 어쩌면 지독한 환상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관계의 이면에 감춰져 있던 것이 드러나는 순간, 견고하다고 믿었던 사랑은 가면극으로 변질될 수도 있으며 사랑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 사랑함에도 얼마나 고독한지 『이런 사랑』은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는다. 사랑의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읽힌다기보다는 피부로 느껴지는 소설을 쓰는 작가 필립 베송
필립 베송은 프랑스에서는 이미 평단의 두터운 신망과 열성적인 고정 독자층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는, 출판사의 ‘보증수표’ 같은 작가다. 2001년 『인간의 부재 속에서』로 데뷔하며, 『이방인』『구토』에 버금간다는 찬사를 받은 그는 지금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왔고 아카데미 공쿠르에서 수여하는 에마뉘엘 로블레스 상, 에르테르엘 리르 그랑프리 등을 수상하며 프랑스 문단의 가장 중요한 작가로 자리잡아왔다.
대중과 평론가들에게 공히 인정받는 것은 간결하면서도 시적 감수성이 풍부한 필립 베송만의 언어. 그는 등장인물들이 격렬하게 느끼고 반응하는 것을 온전히 소화해내어 자신만의 고도로 정련된 언어를 통해 차분하고 담담하게 짚어나간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읽힌다기보다는 오히려 피부로 느껴진다. 그의 이런 글쓰기는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사였던 아버지에게 글씨 쓰는 법과 철자법을 철저히 배웠으며 열다섯 살부터 랭보, 프루스트, 뒤라스 등의 작품을 접했다. 글자에 대한 강박은 이후 문학과는 상관없는 법률가로 살면서도 매일 세 통씩 지인에게 편지를 쓰게 했고, 그는 결국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필립 베송의 이력 중 또 하나 특기할 만한 사실은 대부분의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졌거나 만들어질 예정이라는 것이다. 『그의 동생』은 <여왕 마고>와 <정사>의 파트리스 셰로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했으며 『이런 사랑』을 비롯해 여러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중이다. 유례를 찾기 힘든 이같은 영화계의 러브콜은 작가 스스로도 말했듯 흥미로운 이야기, 생생한 시각적 묘사 때문일 것이다.
필립 베송은 지금까지 여덟 편의 장편을 발표할 때마다 드물게 평단과 대중의 고른 지지를 받으며 자타가 공인하는 행복한 작가가 되었다. 전업작가가 된 지금, 그는 글을 쓰지 않는 날을 상상할 수 없으며, ‘현재의 삶이 너무나 행복하며 이 행복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면 기꺼이 치를 각오가 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 책에 쏟아진 찬사
『이런 사랑』은 흠잡을 데 없는 작품이다. 어떤 공격에도 끄떡없을 만큼 완벽하다. 설득력 있는 이야기와 개성 뚜렷한 등장인물, 공감할 수 있는 감정, 철저하게 계산된 거리두기, 눈앞에 그려지듯 생생한 장면들, 동성애를 포함한 사랑, 죽은 자의 목소리 등으로 모든 재미를 약속하는 작품! 리베라시옹
필립 베송은 단순한 이야기로 위대한 소설을 만들었다. 그의 손을 거쳐 평범한 사랑 이야기는 고대 비극과 철학적 우화의 무게를 얻었다. 문체는 세심하고 정교하며, 강박에 가깝게 다듬어져 있다. 『이런 사랑』은 고독에 대한 충격적이고 힘 있는 성찰이다. 시급히 읽어야 할 소설이다. 렉스프레스
필립 베송은 찬란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줄 뿐만 아니라, 극도의 절제와 세심함으로 사랑과 열정의 매커니즘을 분석한다. 작가는 묻는다. 사랑의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만약 진실이 언어 속에만 있는 것이라면? 팽팽한 긴장과 질문이 소설 한가운데를 관통한다. 특권은 독자에게 주어졌다. 오직 독자만이 답을 알 수 있다는 특권이. 텔레라마
필립 베송은 벌거벗은 감정이라는 주제에 천착한다. 그의 소설은 읽히기보다는 피부로 느껴진다. 『이런 사랑』은 우리 모두에 관한 이야기이다. 공허와 맞서지 못하는, 연약한 우리 모두에 관한. 마가진 리테레르
『이런 사랑』에서 독자들은 사랑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극도의 절제된 목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리고 매우 독창적인 구조 속에 조서를 꾸미듯 구축된 미스터리와 서스펜스의 예술도 발견할 것이다. 이 소설은 절망스러울 만치 스스로를 억제하고 절제하는 세 주인공의 매력으로 빛난다. 그들은 죽음을 초월해 연대하고 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데, 삶을 사랑하는 데 똑같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레제코
필립 베송Philippe Besson
평담의 두터운 신망과 열성적인 고정 독자층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는, 지금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2001년 『인간의 부재 속에서』로 등단한 후 지금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발표해온 그의 작품들은 그 제목으로보다는 ‘필립 베송의 신작’으로 불리며, 그의 신작 소개는 프랑스 문단의 연례행사가 될 정도이다. 1967년 샤랑트에서 태어나, 열다섯 살부터 접한 아르튀르 랭보, 마르셀 프루스트, 마르그리트 뒤라스, 에르베 기베르 등의 작품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루앙의 고등상업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법학자로 강단에 섰으며, 일간지 <리베라시옹>에서 잠시 일하기도 했다. 등단작 『인간의 부재 속에서』로 아카데미 공쿠르에서 수여하는 에마뉘엘 로블레스 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 발표한 『그의 동생』은 페미나 상 후보에 올랐다. 이 작품은 2003년 파트리스 셰로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져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2002년에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나이트호크스〉에서 영감을 받아 쓴 소설 『만추』를 출간, 에르테르엘 리르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이 작품은 연극으로 각색되어 파리의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이런 사랑』은 2003년 출간된 작가의 네번째 작품으로, 공쿠르 상과 메디치 상 후보에 올랐으며 2004년 메디테라네 상을 수상했고 현재 영화화되고 있다. 『무상한 나날들』(2004), 『포기의 순간』(2005), 『10월의 아이』(2006), 『이별과 이별하기』(2007) 등의 작품이 있다. 필립 베송의 작품은 영국, 미국, 독일, 브라질, 불가리아, 중국, 이탈리아, 일본, 그리스 등 세계 각국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옮긴이 장소미
숙명여자대학교 불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숙명여자대학교에서 강의를 했으며, 파리3대학에서 영화문학 박사과정중이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발히 활동하면서 프랑스 문학을 국내에 소개하고 있다.
* 2007년 8월 24일 발행
* ISBN 978-89-546-0373-7 03860
* 128*188 | 256쪽 | 9,500원
* 담당편집 : 김지연(031-955-88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