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컴퍼니, 창조적 혁신 기업
일본 니가타 현의 도요(東洋)이화학연구소. 크지 않은 규모의 금속가공회사이지만 세계적 기업 애플의 노트북과 아이팟 제품의 금속 소재 겉면을 만드는 회사다. 이 시골 공장의 장인들은 아이팟 뒷면을 하나하나 다듬어 거울처럼 반짝거리는 제품을 만들어낸다. 애플은 왜 아이팟의 뒷면을 왜 거울처럼 광이 나도록 만드는 것일까?
애플의 제품 라인업을 살펴보면, 아이팟의 경우 주력 모델에는 스테인리스 스틸이, 대중 모델에는 알루미늄이 겉면 소재로 사용된다. 노트북의 경우도 일반인용은 플라스틱 소재를, 전문가용은 금속 소재를 사용한다. 이렇듯 애플은 겉면 소재의 선택에도 전략적 의도를 담는다. 애플이 왜 아이팟의 뒷면을 거울처럼 광이 나도록 고집하는가, 라는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이런 질문을 먼저 해보자. 왜 다른 제조사들은 애플만큼 뒷면의 처리에 신경 쓰지 않는가?
이 차이가 단순한 기술 기업과 창조적 혁신 기업을 구별 짓는다. 지식 경영의 대가 곤노 노보루는 『아트 컴퍼니』를 통해 이런 차이를 가져오는 창조적 혁신 기업의 조건을 탐구한다. 곤노 노보루는 그러한 창조 기업을 ‘아트 컴퍼니’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그가 말하는 아트 컴퍼니란 지식을 창조하고 효과적으로 디자인하는 기업이다. 다시 말해 지식을 경영의 요체로 삼고, 경영 전체를 디자인하는 기업을 아트 컴퍼니라 부른다. 이런 기업은 단순히 제품이나 서비스의 품질에만 집중하는 것에서 탈피하여 그것을 창조하는 전체 프로세스를 디자인하고 그 제품이나 서비스에 스토리나 경험까지 담아낸다. 대표적인 기업이 애플이다.
삼위일체, 하드웨어-소프트웨어-서비스
저자에 따르면, 21세기 들어 비즈니스 세계의 패러다임은 완전히 바뀌었다. 기계에서 인간으로, 정보에서 지식으로, 합리성에서 창조성으로, 경제적 가치에서 문화적 생태적 가치로, 많은 전환이 있었다. 제품의 정의도 바뀌었다. 이제 제품은 단순한 물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콘셉트와 스토리, 경험이라는 가치를 담아내야만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경쟁력의 근원은 종합하는 힘이다.
예를 들어, 애플의 아이팟이나 아이폰은 단순한 MP3 플레이어나 스마트폰이라는 기기(device)에 그치지 않는다. 이 기기에 접근하는 소프트웨어(아이튠스)는 유통 플랫폼(뮤직스토어나 앱스토어)의 기반이 된다.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유통 서비스가 삼위일체로 고객에게 제공되는 것이다. 아이팟/아이폰의 세계는 다수의 음반 제작자나 응용 어플리케이션 개발자들은 손쉽게 자신의 제품을 스토어에 올려놓고, 기기의 소지자들도 쉽게 스토어에 접근해 제품에 구매하는, 거대한 에코 시스템이기도 하다.
비단 애플만이 아니다. 기적이라 불릴 정도의 턴어라운드를 보여준 마쓰시타전기(파나소닉) 역시 마찬가지 관점에서 접근한다. 마쓰시타의 부활을 이끈 나카무라 구니오 회장은 부품, 제품, 서비스가 따로 놀 때 가격 경쟁에 휘말려 한번 쓰고 버려지는 커머디티(단발성 제품)로 전락하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종합하는 힘을 회사에 심었다. 세계 최고의 컴퓨터 업체 IBM도 서비스란 가치를 창출하고 구현하는, 생산자와 고객 간의 상호작용이라고 정의하면서 ‘서비스 사이언스’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가치는 고객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창출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런 가치 창출의 상호작용(즉 서비스)을 통해 제품을 구체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트 컴퍼니』에서는 이러한 제품 개념의 변화를 시간, 감성, 사회라는 세 가지 축으로 세분화해선 살피고 있다. 즉 이제는 제품에 라이프사이클의 변화, 인간의 감성, 사회적 책임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시간과 감성과 사회를 종합하는 디자인 능력, 즉 지식 디자인 방법론을 경영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식 디자인의 본질적 과제를 기업과 조직에 잠재해 있는 지적 능력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한편 새롭게 등장한 21세기형 소비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들은 품질이나 브랜드를 넘어 그 속에 담긴 감성과 제품(또는 서비스)이 주는 경험을 중시한다. 특히 지역성이나 문화를 바탕으로 생태적 가치, 더불어 사는 삶, 자연과의 조화에 큰 비중을 둔다. 이러한 사회적 가치와 경험을 제품(또는 서비스) 속에 구현하여 새로운 의식으로 무장한 소비자와 공유하는 것이 아트 컴퍼니의 사명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경영자, 디자인하지 않는 디자이너
현실적으로 경영자는 명시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디자인 문제에 관여하지 않을 수 없다. 비즈니스 세계의 역사를 돌아보면, 많은 기업가들이 통찰과 전망, 열정과 진지함을 가진 ‘디자이너’였다. 헨리 포드, 폴 슬로언 주니어, 샘 월튼, 빌 게이츠, 하워드 슐츠, 스티브 잡스 등은 세상을 향해 자신의 사업을 혁신적으로 디자인해나갔다. 경영자는 “디자인하지 않는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아트 컴퍼니』에는, 혁신과 디자인에 관한 한 첫손 꼽히는 애플, 눈에 보이지 않는 체험까지 매장에 담아내려고 한 스타벅스, 영국에서 혁신의 대명사로 불리는 청소기 제조업체 다이슨, 전통과 혁신 · 로컬과 글로벌 등 상호 모순된 요소를 디자인으로 녹여낸 이탈리아의 구두 제조업체 캠퍼, 사무공간과 회의까지도 지식 공유와 창조적 대화의 장으로 삼는 덴마크의 보청기 회사 오티콘, 소아 당뇨 환자를 위하여 개발된 세계에서 가장 작은 주사바늘 나노파스 33, 소니의 몰락과 삼성의 도약 원인 등 생생한 기업 사례들이 많아 흥미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