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철학을 하라고? 웬 농담을!
아이들과 철학을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철학 자체와 아이의 철학적 사고 능력에 대한 어른들의 편견을 깨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거듭 강조한다. 무엇보다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부터 이어져온 뿌리 깊은 생각, 곧 철학은 지고의 학문으로 심오한 배경 지식을 갖추고 상당한 수련을 거친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같은 맥락에서, 철학을 전공한 숙련된 전문가만이 아이들에게 철학 교육을 시킬 수 있다는 믿음 또한 집이나 교실에서 선뜻 철학 토론을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네가 아는 모든 것을 의심하라는 소크라테스 혹은 데카르트의 명제처럼 우리가 선하고 옳다고 믿는 것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의심하게 되면 어린 시절에 마땅히 이뤄져야 할 도덕 교육과 충돌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세 가지 편견을 요목조목 근거를 들어 반박한다. ‘철학’을 체계화된 지식의 결정체가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누구에게나 있는 사고 능력이라고 정의한 몽테뉴부터 철학자는 ‘바보’이거나 ‘바보짓을 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한 질 들뢰즈까지 학계 내부에서 그 근거를 찾아 철학의 외연을 확장하고, 먼저 자신부터 철학적으로 사고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이들에게 철학을 가르칠 수 있다며 부모나 일반 교사 들도 손쉽게 아이들과 함께 철학을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또한 한나 아렌트의 ‘의식화’ 개념을 들어 철학 교육이 도덕 교육과 완전히 별개가 아님을 설명한다.
아이들에게도 목소리가 있다!
프랑스 초등학교 교실에서 실시한 여러 토론 수업들의 내용을 싣고 해설을 덧붙여, 부모와 교사 들이 미처 몰랐던 아이들의 생각을 들여다본다. ‘생각한다는 게 뭐지?’ ‘어른이 된다는 게 뭘까?’ ‘학교는 왜 다녀야 할까?’ ‘자유란 무엇일까?’ ‘무엇이 정의고 무엇이 정의롭지 못한 것일까?’ ‘내 종교가 네 종교보다 더 나을까?’ 등 아이들에게 가장 가까운 문제(학교)부터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주제(정의)까지 다양한 논제를 놓고 아이들이 벌이는 토론 내용과 전개 양상, 그에 따른 교사의 역할을 통해 철학 교육의 실제를 간접 경험하고 응용 가능한 실질적인 팁을 얻을 수 있다.
예컨대 2부 1장에서 ‘학교는 왜 다녀야 할까?’라는 주제로 여러 학급에서 벌어진 토론 내용을 보면, 아이들이 지식을 배우는 학교의 단기적인 목적과 “직업을 갖기 위해서” 같은 장기적인 목적을 구분할 뿐 아니라, 한 발짝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을 존중하기 위해서”처럼 인격 함양과 사회성 훈련에 관한 부분에까지 자연스레 생각이 발전해나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부 3장에서 다룬 ‘어른이 된다는 게 무슨 뜻일까?’라는 주제의 토론에서는 전문 교육을 받은 토론 교사의 진행을 통해, 아이들의 발언에 따라 어른이 토론을 원만하게 끌어가고 활기를 더해주기 위해 어떻게 적절히 개입해야 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이번에는 여러분 차례!
가정에서 실제로 아이들과 함께 철학 토론을 시작하고 심화해나갈 수 있는 가이드와 보조 자료, 과제를 제시한다. 도덕적 딜레마를 옛날이야기처럼 풀어낸 짤막한 일화를 들려주고 “만약 너라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질문하면, 추상적으로 접근했을 때보다 훨씬 구체적인 답변을 이끌어낼 수 있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이분법적 선택을 강요하지 않고, 다른 해결책들을 찾아보게끔 유도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만약 (행복, 사랑, 자유 등)이 (색깔, 소리, 냄새 등)이라면……”이라는 가정으로 추상적인 단어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유추해나가는 ‘중국식 초상화’ 놀이 같은 방법도 있다. 또한 자유, 평등, 정의 같은 개념을 비유적 또는 상징적으로 표현한 그림카드를 선택하게 함으로써 토론을 끌어갈 수도 있다. 집에서는 이러한 그림이나 사진을 찾아내는 과정 자체가 토론이 될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잡지, 광고지, 신문에 실린 사진을 살펴보면서 주제가 되는 개념을 담고 있는 듯한 것들을 골라낸 뒤, 각자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함께 개념을 정리해나간다.
특히 1부 3장 ‘가정에서 철학 토론을 시작하기 위한 조언’에서는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가정에서 철학 토론을 꾸려나갈 때 주의할 점들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 진지해야 한다 축구경기 결과나 점심 메뉴에 대해 얘기하듯이 죽음이나 행복, 부정행위 같은 주제에 대해 생각하고 얘기하면, 그 개념들에 담긴 의미를 희석시키고 심지어 농담거리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다. 토론 주제는 신중하게 정하고, 나아가 그 문제를 깊이 있게 논의하고 다룰 만한 시간과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예컨대 가족들이 둘러앉아 서로 얼굴을 마주 볼 수 있어야 하고, 텔레비전같이 주의를 흐트러뜨릴 수 있는 가전제품은 꺼둬야 한다.
•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 토론은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게 좋다. 아이들에게 미리 동의를 구하고 구체적인 운영 방식에 대해서도 합의가 필요하다. 예컨대 일주일에 한 번, 가능하면 매번 같은 요일 같은 시간(잠자리에 들기 전이나 일요일 오전 시간 등)이 좋으며 적어도 수주 이상은 지속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철학 토론을 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처음에 우왕좌왕하며 실패하더라도 실망하지 않을 수 있다.
• 보조 자료를 활용하라 처음에는 자유, 정의, 진리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두고 바로 토론을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 이 책에 실린 철학적 딜레마를 다룬 이야기나 시중에 많이 나와 있는 철학 동화 혹은 그림책 들을 같이 읽고, 아이들이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들을 자유롭게 구성해보도록 유도하면 좋다.
•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하라 아이들보다 먼저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어른이 먼저 생각을 말해버리면, 아이들은 그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기 십상이다. 침묵의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아이들이 생각을 어수룩하게라도 표현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다. 그래도 아이들이 입을 열지 못하면, 구체적인 상황을 예로 들어 질문을 설명해주면서 아이들에게 그 상황을 상상해보도록 유도할 수 있다.
• 개입은 짤막하게 끝내라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밝힐 수 있도록 유도하는 질문(“그게 무슨 뜻이지?”), 재확인(“아빠가 제대로 들었다면 네 말은……”), 아이가 주장한 내용이나 생각에 대한 반론, 아이의 말을 명확히 정리하는 과정(“결국 네 말은……”), 부분적인 요약(“조금 전부터 말한 걸 요약하면……”) 등 토론 진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개입이 필요할 때는 짧고 확실하게 하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