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안전성』은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의 작가 A. M. 홈스가 처음 발표한 단편소설집이다. 1989년에 아버지가 커밍아웃을 한 열다섯 살 소년이 주인공인 장편소설 『잭』을 발표하며 데뷔해 평단과 독자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던 홈스는 이듬해 이 작품집을 내놓으면서 결코 ‘무난하지 않은’ 작가로서 입지를 굳혔고, 1999년 <뉴요커>가 선정한 ‘21세기를 빛낼 작가 20인’에 이름을 올렸다. 홈스는 겉으로는 평범한 듯 보이는 동시대 미국 사회에서 쉽사리 끄집어내기 어려운 소재를 과감하게 소설로 형상화하면서, ‘대담한’ ‘독창적인’ ‘도발적인’ ‘불편한’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니는 그녀만의 독특한 문학 세계를 구축했다.
『사물의 안전성』에 실린 단편 열 편은 이러한 홈스의 문학 세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책명 ‘사물의 안전성’은 따로 표제작이 있는 게 아니라 이 열 편을 아우르는 제목이다. 이 제목은 묻는다. 대단한 사건 없이 살아가는 평범한 세계와 사회와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안전하냐고. 각 소설은 대답한다. 안전이란 어디에도 없다고, 겉보기야 어떻든 모두가 불안한 바닥을 모른 척하며 살아갈 뿐이라고. 홈스는 『사물의 안전성』에서 이 약한 발판을 섬뜩하고 긴장감 있게 잡아낸다.
당신의 일상은 안녕하십니까?
『사물의 안전성』에 나오는 인물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리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별다를 것 없는 가정과 직장에서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그들. 그러나 이들이 일상에서 약간 비껴나는 순간, 이 평범한 공간은 전혀 평범하지 않은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어른들끼리」에서 일레인과 폴 부부는 처음으로 아이들을 할머니 댁에 떼어놓고 육아에서 해방되어 둘만의 휴가를 즐긴다. 하지만 너무 오랜만에 얻은 자유 시간에 대한 해방감과 아이들을 방치해뒀다는 죄책감 사이에서 도통 뭘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한다. 그러다 폴이 마약을 구해오고, 둘은 마약에 취해 한껏 고양된 기분을 맛본다. 그리고 다음날, 아이들을 데려오겠다는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은 일레인과 폴은 조심스럽게 집 안을 청소하며 지난밤의 흔적을 세심하게 지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인 것이다.
「짐 트레인」에서 유능한 변호사인 짐 트레인은 어느 날, 회사 건물에 정체불명의 폭탄 위협이 가해지면서 당분간 출근하지 말라는 연락을 받는다. 집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본 적이 없는 짐 트레인은 갑작스레 주어진 이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하다. 뒷마당에 아내가 심어놓은 금잔화를 잡초인 줄 알고 뽑아버리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오는 동네 남자들을 의심하고, 부동산 중개인을 만나러 가는 아내를 따라 나갔다가 평일에 집에 있는 남자를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중개인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먼저 집으로 발길을 돌리며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폭탄이 터진다 해도 꼭 출근하리라 결심한다.
「총알 캐처」에서 쇼핑몰에 간 프랭크는 좀도둑질을 하는 여자애들과 그애들과 어울리는 남자애들, 그리고 그들과 쌍둥이처럼 닮은 수백 명의 아이들을 보면서 공황상태에 빠진다. 그러다 지프차를 상품으로 내건 대회에 이웃집 여자애의 엄마가 참가하자 그녀를 응원하면서 자신도 그 대회의 일원인 양 마음이 들뜬다. 다음날 또 대회를 지켜보러 간 그는 여자애의 엄마가 예순일곱 시간이 넘게 버티다가 마지막 순간 탈락하고, 2등이라는 이유로 이백오십 달러밖에 받지 못하자 욕지기가 치밀고 속이 메스꺼워진다. 그는 스포츠용품점으로 달려가 ‘인생에서 더 좋은 일들’을 떠올리게 해주었던 야구 장갑을 손에 끼고 경보가 울리는 것도, 경비원이 총을 겨누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쇼핑몰 밖으로 내달린다.
일상에서 일탈한 어른들의 세계가 이렇듯 삐걱거리는 동안 아이들의 세계 또한 줄타기를 하듯 위태롭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잠시 눈을 돌린 사이 불안정한 욕망과 아찔한 상황에 빠져든다.
「조니를 찾아서」에서 에롤은 놀이터로 나와 혼자 놀다가 엄마 대신 데리러 왔다는, 자신을 ‘조니’라 부르는 남자를 따라간다. 그는 에롤에게 맛이 묘한 약을 먹이고 이상한 강박증을 보이지만, 에롤은 함께 낚시를 가고 장작 패는 법을 가르쳐주는 이 남자에게서 장애아인 누나 때문에 거의 신경도 안 써주는 엄마보다 더 위안을 얻는다. 하지만 어느 날, 남자는 에롤이 자기가 찾던 ‘조니’가 아니라면서 집으로 데려다주고, 에롤은 자신이 살던 동네와 누나가 있는 집이 너무 낯설게 느껴져 동네를 뒤로하고 달려가버린다.
「더위 속의 청키」에서 뚱뚱한 사춘기 소녀 청키는 뒷마당의 접이식 의자에 앉아 엄마가 장을 보러 간 사이 축축하게 땀에 젖은 자신의 몸을 탐닉하며, 옆집 소년을 상대로 한껏 성적인 상상에 고양되어 옷을 하나하나 벗어던진다. 마트에서 돌아온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청키는 벌거벗은 채 집 안으로 들어가고, 현관 앞을 지나던 소년의 시선에 정신이 번쩍 들어 사타구니를 두 손으로 가린다.
「파자마 파티」에서 샐리와 벤은 뒷숲에서 낙엽을 그러모아 불장난을 하다가 말보로를 한 대씩 피우고 집으로 돌아온다. 저녁을 먹고 샐리의 엄마는 집 지하방에 샐리와 벤의 잠자리를 마련해준다. 벤의 엄마가 오늘 집에 없기 때문이다. 지하방을 무서워하는 샐리는 2층 자기 방에서 자겠다고 우기지만 엄마는 들어주지 않는다. 지하방에 둘이 남은 샐리와 벤은 서로의 몸에 대한 호기심에 티격태격하면서 속옷까지 다 벗게 되고, 그 순간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자 벤은 샐리의 팔을 끌고 밖으로 나간다. 좀도둑질을 하던 이웃 청년 둘이 두 아이를 발견하고 한 청년이 샐리의 다리 사이로 살짝 손가락을 밀어넣었다 뺀다. 다시 방으로 돌아온 뒤 샐리는 그 손가락의 흔적을 참을 수 없어 2층 자기 방으로 가 새 팬티를 찾아 입고 비로소 안정감을 느낀다.
「진짜 인형」에서 주인공 소년은 신경안정제 발륨을 다이어트콜라에 섞어 마시고 부모님과 동생이 집을 비운 사이 동생의 바비인형과 데이트를 즐긴다. 소년은 발륨의 양을 점점 늘리면서, 바비인형 옆의 남자인형 켄에게 질투심을 느끼는가 하면 바비인형에 대고 사정을 하고 어쩌다보니 켄과도 성관계를 갖는다. 그리고 동생의 손에 점점 망가져가는 바비인형의 모습에 분노하다가 그렇게 망가지면서도 여전히 미소 짓고 있는 그 표정에 질린 소년은 그만 등을 돌린다.
나와 내 주변을 어제와 다른 시선으로 돌아보게 만드는 촌철살인 단편들
이 외에도 식물인간이 된 아들을 바라보며 깨져버린 가족의 일상을 되돌리고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어머니(「밤의 에스더」)나 자신의 ‘남성’을 과시하다 그로 인해 큰 상처를 받은 게이 청년(「‘그것’의 ‘나’」), 자기만의 공간에 갇혀 끊임없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장애아 소녀(「그럼 이만」)의 독백은 마음 아프면서도 한편으론 섬뜩하다.
『사물의 안전성』은 잠시만 눈을 돌리면 금세 그 모습을 드러내는 일상의 아슬아슬한 이면을 예리하게 포착해 보여준다. 하지만 이들의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불안한 삶은 쉽게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삶이야말로 어쩌면 우리의 일상을 가능하게 하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 우리 삶에 이미 포함되어 있는 부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언제나 다시 자기 자리로 되돌아온다. 물론 그 자리가 더이상 어제와 같을 수는 없을지라도 말이다. 이렇듯 홈스는 등장인물들의 위험천만한 일탈이 사실 안전해 보이는 질서를 떠받치고 제자리로 돌아가게 해주는 혼돈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홈스의 파격적인 까발리기는 불쾌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일상에서 놓친 것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게 해준다.
추천사
비범하다. 솔직하고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을 때조차 우리가 말하지 않는 모든 것이 이 소설에 있다. 우리는 잠 못 드는 밤에 벌받는 기분으로 이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루스 렌들(소설가)
다른 이들의 삶의 창을 무기력하게 흘끗 들여다보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방식에 대한 그녀의 견해는 전혀 안전하지 않다는 것. 메그 월리처(소설가)
매혹적이다. 일상을 전복하는 유머와 진실로 가득하다. 독창적이면서 송곳처럼 날카로운 작품. 워싱턴 포스트
홈스는 특별한 효과나 독특한 이면을 드러내지 보이지 않고 도시 중산층의 비밀을 찾아낸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일상의 판타지에 관한 액션 어드벤처를 여행한다. 미라벨라
책에 빠져들게 만드는 문학적 퍼즐. 뉴욕 타임스
놀랍도록 훌륭하다. 홈스가 영향을 받은 선배 작가가 누구인지-로알드 달, 레이철 인갤스, 그리고 J. D. 샐린저 모두가 떠오른다-분명하게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여러 면에서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존 치버와 닮았다. 빌리지 보이스
옮긴이 이수현
학교 안 전공은 인류학, 학교 밖 전공은 환상문학이라고 주장한다.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석사 논문을 썼고, 『패러노말 마스터』로 제4회 한국판타지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현재 환상문학 웹진 거울(http://mirror.pe.kr)의 필진으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 『꿈꾸는 앵거스』 『천국의 데이트』 『사자와 결혼한 소녀』 『이리저리 움직이는 비비원숭이』 『유리 속의 소녀』 『빼앗긴 자들』 『멋진 징조들』, 서부해안 연대기, 퍼시 잭슨 시리즈, 샌드맨 시리즈 등이 있다.
* 담당편집 : 류현영(031-955-8858, sanja95@munha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