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확인된 필사본만 260여 종에 달할 정도로 가장 많은 필사본이 전하는 작품. 효와 형제간의 우애 같은 권선징악을 다룬 작품이나, 일부다처제와 가부장제도라는 전통적 가치관 아래 여러 가문을 등장시켜 조정에서 벌어지는 권력 분쟁, 집안에서 일어나는 가족 간의 갈등 등을 사실감 있게 묘사하며 재미를 더한다. 특히, 조선 사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젊은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유가적 이념과 전통적 가치 아래 수많은 갈등 요소를 내포한 조선 사회의 현실을, 부부간·부자간·형제간·동서간, 그리고 시누올케간 등 다양한 관계 사이의 갈등과 반목, 화해와 용서의 과정을 통해 드러내 보여주며 시대를 초월한 공감을 이끌어낸다.
◆ 가장 많은 필사본이 전하는 최고의 인기소설
『창선감의록』은 지금까지 확인된 필사본만 260여 종에 달하여, 가장 많은 필사본이 전하는 작품이다. 고전 필사본의 수는 오늘날의 판매 부수 같은 지표로 간주할 수 있는데, 이런 정도의 독자의 호응도로 보아 『창선감의록』은 당대의 상당한 인기소설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 “선善을 세상에 드러내다”—기본의 가치를 전하는 고전
『창선감의록』은 조선 시대에 쓰인 우리나라 고대소설로, 창작 시기는 17세기 무렵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집필 연대와 작자는 미상이다. 우리 고전으로 전해져오는 수많은 소설 작품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 ????창선감의록????은 일반에게 두루 알려져 있지 않아 다소 생소한 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창선彰善’은 다른 사람의 착한 행실을 세상에 드러낸다는 뜻이니, 소설의 제목 ‘창선감의록’은 ‘사람의 착한 행실을 세상에 알리고 의로운 일에 감동받는 이야기’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대부분의 고전소설이 충, 효, 의 등을 인간의 최고 덕목으로 강조하면서 권선징악을 이야기의 주제로 내세우고 있지만, 『창선감의록』의 경우는 아예 제목 자체를 ‘권선징악 이야기’로 전면에 내붙였다는 것이 흥미롭다. ‘규방소설’ ‘가정소설’ ‘도덕소설’ 등으로 분류되는 『창선감의록』은 오늘날 우리 시대가 추구하는 가치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유교적 교훈을 담고 있으나, 유가적인 이념에 기반하고 있던 조선 사회에서는 『창선감의록』에서 나타나는 부부간.부자간.형제간의 다양한 갈등 양상이 현실에서 많은 공감을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 씨줄과 날줄처럼 엮인 역사와 허구의 구도
『창선감의록』은 14회로 장 구분을 한 상당한 분량의 장편소설이다. 일부다처제와 가부장제도라는 전통적 가치관 아래 여러 가문을 등장시켜 조정에서 벌어지는 권력 분쟁, 집안에서 일어나는 가족 간의 갈등, 젊은 남녀 사이의 애정 문제 등을 그리고 있지만, 소설의 중심을 이끌어가는 핵심 주제는 효와 형제간의 우애 같은 권선징악의 교훈이다.
『창선감의록』은 우리 고전이지만 중국의 명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이런 방법으로 조선 사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젊은 남녀 사이의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것도 재미있다. 그 시대 작가의 상상력을 최대치로 발휘하여 애정을 가진 남녀 간의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를 눈앞에서 보는 듯 사실감 있게 묘사했다.
또한 ‘가정 23년’처럼 구체적 연호를 사용하여 서술하고, 역사 속의 실재했던 인물 속에 가상의 인물을 엮어 배치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마치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데, 이처럼 역사를 가장한 허구의 서술방식은 소설책에 역사서 같은 무게감을 부여해주고 있다. 그것은 작자가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교훈의 크기나 감동의 중량감을 달리 느끼게 하는 효과를 낸다. 오밀조밀한 구성의 치밀함이 소설적 흥미를 풍부하게 해준 것은 『창선감의록』의 빼놓을 수 없는 인기 요인이었다.
◆ 화씨 일문의 흥망성쇠 이야기(작품의 줄거리)
명나라 가정 연간 사람인 화욱에게는 세 명의 부인이 있었다. 첫째 부인이 낳은 아들 화춘은 이복형제 가운데 맏이였으나 사람됨이 용렬했고, 셋째 부인 소생의 화진은 어려서부터 남달리 영특하고 명민했다. 그리하여 화욱은 늘 진을 편애하여 심부인과 춘의 불만을 샀다.
화욱은 조정에 간신이 득세하는 것을 보고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된다. 화욱이 죽은 뒤 심부인과 화춘은 갖은 방법으로 화진과 그의 두 아내를 학대한다. 화진은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벼슬을 하게 되지만, 동생의 출세를 시기하던 화춘이 무뢰배와 결탁하여 화진을 모함하면서 귀양을 가게 된다. 화진의 두 아내도 집에서 내쫓기는 신세가 된다.
화진은 유배지에서 선인仙人을 만나 병서를 배운 후 백의종군하여, 변방을 소란스럽게 하고 노략질을 일삼는 해적을 토벌하는 공을 세운다. 화진의 능력을 인정한 조정에서는 그를 대원수에 봉하고, 남방을 평정하고 개선한 화진에게 천자는 진국공의 봉작을 내린다. 심부인과 화춘은 극진한 효심과 변함없는 형제애를 보이는 화진에 감동하여 개과천선하고, 내쫓겨 종적을 감추었던 화진의 두 아내도 돌아와 심부인을 지성으로 섬기면서 가정의 화목을 이룬다.
‘하늘은 충효를 행하는 사람을 돕는다’는 명제는 작자가 믿고 싶은 당위이다. 작자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계앵이 지적한 것처럼 굴원과 악비는 충을 행하다가 죽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작자는 그가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당위가 현실에서도 실현된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이 점이 바로 작자가 소설『창선감의록』을 쓴 이유이다. 『창선감의록』은 ‘그래야만 하는’ 당위가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허구적 공간이다. 명나라 가정 연간 황제는 도사道士에 빠져 정사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고, 엄숭이 권력을 휘두르던 혼란한 시대였다. 그런데도 작자는 허구를 통해 사실을 바꾸었다. 작자는 소설을 통해서 자신이 세상이 그래야만 한다고 믿는 당위를 실현시키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작자가 소설『창선감의록』을 쓴 것은 역사에 대한 일종의 문제제기일 수 있다. 작자의 소설쓰기는 사마천이「백이열전伯夷列傳」에서 천도天道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여 역사를 저술한 것에 비견될 수 있다. 사마천은 도척과 같이 남을 해치고 세상을 어지럽혔던 도적놈은 제 수명이 다할 때까지 잘살았는데, 안연처럼 어진 이가 젊은 나이에 요절한 일을 예로 들면서 현실에서 천도가 행해지는가에 대한 강한 회의를 표했다. 사마천이 역사를 저술한 것은 바로 천도에 대한 회의 때문이었다. 도를 실천하다가 이름 없이 죽어간 사람들과 악행을 행한 사람들에 대해서 역사가 포폄褒貶을 통해 보상과 처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점에서『창선감의록』의 작자는 사마천이 제기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작자는 허구로 꾸며낸 역사를 통해서 천도가 실행되는 세상을 그리고자 한 것이다. _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