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자 전방위 저술가인 김정환이 우리 시대 각 분야의 걸출한 인물들을 만나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를 특유의 솔직하고 거침없는 필치로 풀어냈다. 200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강좌 ‘금요일의 문학이야기’ 내용을 다시 정리해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 연재했던 것이 주요 내용이며 지난 세기말을 전후해 몇몇 매체를 통해 이루어졌던 대담들을 덧붙였다.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 시대 ‘꾼’들의 열정과 집념, 그리고 그들이 언뜻언뜻 내비치는 삶의 속살이 매력을 발산한다.
그들이 있어 우리는 풍요롭다
문학계에서는 보기 드문 마당발로 통하는 저자의 레이더망에 걸려든 인물들은 그 면면 또한 다채롭다. 그들 가운데는 저자와 오랜 시간 흉허물 없이 지내온 쪽이 있는가 하면 강좌를 계기로 조심스레 처음 눈을 맞춘 이들도 있다. 그들과 나눈 이야기의 속사정 또한 각양각색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저자의 관심은 대부분 깊고 애틋한 연대로 갈무리된다.
영화배우 정진영은 엘리트 출신의 노동계 연극배우에서 상업영화의 스타로 성공하기까지의 삶과 자신의 연기철학을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한 시대 최고의 인기 드라마작가 김운경은 직업의식의 엄정함을 날카롭게 설파한다. 그런가 하면 문화유산 답사기로 단번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문화재청장 유홍준은 여전히 외면당하는 우리 전통문화와 뛰어난 선인들에 대한 관심을 누누이 강조한다. 지금까지도 한국적 어머니상을 가장 완벽히 소화해내는 연기자 고두심은 연기와 실생활과의 괴리를 토로하고, 수많은 대박을 터뜨린 영화제작자 차승재는 ‘자본과 미학 사이 전쟁터’라 할 영화계의 ‘권위’로 우뚝 서기까지의 인생 역정을 차분히 회고한다.
그 밖에 글쓰기라는 지옥을 유유히 만유하는 칼럼니스트 고종석, 우리 문학의 젊은 작가들에 대한 차가운 비판과 따뜻한 전망을 동시에 내놓는 문학평론가 신수정, 일상적 건축의 아름다움과 도시의 해악을 예리하게 짚어내는 건축가 승효상 등이 그 뒤를 이으며 변호사 강금실은 현실정치와 법, 그리고 은밀한 내면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자신의 일이 곧 자기 삶의 전체인 ‘꾼’들이 풀어놓는 신산한 삶의 궤적과 편린들 속에서 우리는 종종 다음과 같은 고백들과 마주친다. 때로는 아무렇지 않게, 때로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그들은 말한다.
“해금은 나 자신이고 어머니고 스승이다.” 강은일
“내 글은 팔자가 참 희한하다.” 유홍준
“아이들한테 정말 좋은 엄마 노릇을 하고 있는지 반성할 때가 많다.” 고두심
“내가 제작한 영화를 다시 본 적이 없다.” 차승재
“내 칼럼은 확실하게 한쪽 편을 든다.” 고종석
“노벨문학상 안 받았으면 좋겠다.” 신수정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 강금실
인물 스케치에 이어지는 대담의 주인공은 시인 황지우, 영화감독 이광모, 소설가 김주영과 김원우 등 우리 문학과 예술을 한 차원 끌어올린 인물들이다. 저자는 이들과 소소한 개인사에서부터 문화 전반과 철학, 정치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심도 깊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오랜 지기인 황지우와는 함께 헤쳐온 격동의 시대를 회고하며 시를 이야기하고, 거대자본에 맞서 한국적 예술영화의 가능성을 실현해낸 이광모와는 한국영화의 미래를 탐색한다. 우리 문학의 가장 뛰어난 스타일리스트라 할 만한 김주영, 김원우 두 사람으로부터 듣는 문학 이야기는 여전히 시의적이며 시대정신의 복원이라는 차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홀로 굳건히 서 있으나 그곳이 늘 우리 시대의 중심인 사람들. 저자가 책 속에 불러들인 그들의 이야기는 그러므로 곧 우리 시대의 이야기이다. 그들이 있어 우리는 풍요롭고 또 풍요로울 것이다.
* 2007년 10월 19일 발행
* 978-89-546-0403-1 03810
* 153*210 | 360쪽 | 11,000원
* 책임편집: 오경철(031-955-26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