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의 『팡세』, 사르트르의 『구토』의 계보를 잇는 걸작
존재의 근원을 찾아가는 한 인간의 여정
예기치 않았던 유산을 상속받은 주인공은 일상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과 주변여건, 더 나아가 인간이 처한 근원적 조건을 둘러볼 여유를 갖게 된다.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동료들과 작별한 뒤, 그때까지 살아오던 누추한 호텔을 떠나 도시 변두리에 아파트를 얻어 생활한다. 새로운 거처에서의 생활이 자리 잡히자 주인공은 이 우주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근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질문에 봉착한다. 그러나 질문에 대한 답을 쉽사리 찾지 못해 좌절하면서 일상의 삶에 매몰되어간다. 여인과의 사랑을 시도해보기도 하고, 전화로 예전에 알던 철학과 대학생과 상담도 해보지만, 그는 자신을 둘러싼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에 성공하지도 못한다. 그렇게 시간은 흐른다. 그 동안 바깥에서는 혁명이 일어나 사람들은 서로 비방하고, 죽이고, 기존의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건설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어느 쪽이 옳다는 확신을 갖지도 못하고 한쪽에도 가담하지도 못한다. 그의 내면 역시 변한 것이 없고, 그의 형이상학적 질문 역시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외로운 남자』는 홀로 있고자 했지만 홀로 있지 못해 발버둥치다가 망연자실했을 무렵 외로움의 가능성을 얼핏 본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는 삶의 비의(悲意)를 깨달은 현자도 아니고, 열반에 다다른 선승도 아니다. 주인공의 이러한 모습은 바로 살아생전 “나는 지혜를 갖지 못했다. 앙드레 지드가 말했듯 나는 절망에 빠져 죽을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는 이오네스코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본문 발췌
그러나 그러나 우리가 잘 알다시피 사랑은 태산도 넘고 무쇠도 부수며 온갖 장애를 넘는다. 사랑은 모든 것을 극복한다. 우리가 집어치우고 포기하는 것은 우리의 무능 때문이다.‘위대한 사랑’은 포기가 무엇인지 모른다. _p.12
권태가 오직 우리의 무지 탓인 것과 마찬가지로 추함은 얼마나 아름다우며 슬픔은 얼마나 즐거운가! 가장 극심한 추위도 마음의 열정을 이기지 못한다. 열정에 불을 붙이기 위해 어느 스위치를 눌러야 하는지 알기만 한다면 말이다. 결국 우리는 모든 것을 후회하니, 이는 모든 것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잘 증명해준다. _p.28
그들이 세상, 우주, 삼라만상이 아주 당연하고 정상적이며 우리에게 그저 주어졌다고 믿는 것은 신기하다. 그들은 현자이며 나는 낙제생, 무식쟁이이다. 우리는 감옥에 갇혀 있다. 물론 우리는 감옥에 갇혀 있다.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_p.42
상상의 한계를 없애고 싶었다. 상상의 벽을 무너뜨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 벽들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이고, 나는 태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무지 속에서 죽을 것이다. 상상 불가능한 것을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_p.55
가슴속에 떠오른 사랑이라는 단어가 불현듯 이름 없는 노스탤지어를 일으킨다. 사랑이 나를 구원하여 설명을 대신할 수도 있었음을 깨달았다. 미친 듯 사랑에 빠지는 것. 사실 이것은 너무도, 이 모든 것은 너무도 불가능해서 매력적으로 보인다. _p.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