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정환문학상, 새벗문학상, 푸른문학상 수상으로
동시문단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박방희 시인의 세 번째 동시집
1985년 무크지 『일꾼의 땅』과 1987년 『실천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시단에 발을 내딛은 박방희 시인. 그는 십여 년 전부터 동시 쓰기에 푹 빠져버렸다. 예순이 넘은 나이지만, 젊은 감각과 소년의 마음으로 문학에 전부를 걸었고 그새 방정환문학상, 새벗문학상, 푸른문학상을 수상하며 동시문단에 주목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소년 시절 박방희 시인은 유난히 생각이 많고 혼자 공상에 빠지길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소년의 마음속에는 자연스레 시심이 싹트게 되었다. 그 시심은 오랜 시간 소년과 함께했고, 마침내 예순이 넘은 그 옛날 소년에게 삶의 중심으로서 안착되었다.
『머릿속에 사는 생쥐』는 박방희 시인의 세 번째 동시집으로, 그의 소년 시절을 연상케 하는 천진하고 사려 깊은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번 동시집에서는 다양한 형식과 감각으로 버무려진 60편의 개성 넘치는 동시들을 푸짐하게 맛볼 수 있다. 신선한 묘사부터 생생한 비유, 간결한 말놀이까지 각양각색의 동시들을 맛보다 보면, 풀코스 요리를 대접받을 때처럼 상을 차려낸 사람, 즉 시인의 정성스런 마음에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 동시가 만인이 애송하는 국민시로 거듭나길 꿈꾸는 박방희 시인. 그가 차려낸 푸짐한 밥상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보자.
삶과 철학을 담은 새로운 말놀이동시의 향연
박방희 시인의 말놀이동시는 단순한 말장난만 나열한 동시에 일침을 가하는 것들이다. 즐거운 놀이와 더불어 우리말이 가진 재미를 북돋워주며, 삶과 철학의 참맛을 느끼게 한다. 기발한 발상과 리듬감 넘치는 말놀이동시들을 통해 동시 읽기를 더욱 신나게 해준다.
빵을 자꾸 먹으면
배가 빵빵해져
먼저 먹은 빵
빨리 내려가라고
뒤에 먹은 빵이
빵빵거리며
경적을 울리지
_「방귀」 전문
‘빵’을 먹고 배가 ‘빵빵’해져 ‘빵빵’거리며 경적을 울린다는 시상의 확장은 그 자체로 웃음 짓게 만든다. 박방희 시인의 재치가 빛을 발하는 동시다.
고래야, 나랑 놀려면
조근조근 말해야 해
아무리 고래라도
소리 지르면 안 돼
술을 마셔도 안 돼
술고래라는 말이 왜 생겼겠니?
다른 고래랑 싸워도 안 돼
작고 힘없는 새우들이
등 터져서야 되겠니?
노래방에 놀러 가도
고래고래 악쓰지 마
스피커가 깨지고 말걸
그래, 그 정도 약속이면
나랑 친구 해도 좋아
그럼 오늘이라도 내 안에
푸른 바다 하나 들여놓을게
언제라도 놀러 와!
_「고래야, 놀자!」 전문
‘고래’에게 친구가 되기 위한 조건을 조근조근 일러주고 있다. 술고래였거나 고래고래 악을 쓰던 고래였다면 정말 뜨끔할 만하게, 아이는 대차게 얘기한다. 이 고래는 왠지 일부 어른들의 몹쓸 행태를 꼬집는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좋은 것이든 그릇된 것이든 우리 둘레 사람살이의 이면을 따스하게 보듬으려는 박방희 시인만의 둥근 마음이 느껴진다.
머릿속에 선명한 그림이 그려지는 동시들
박방희 시인은 어른과 아이, 자연과 인간, 묵직함과 발랄함의 경계를 구분 짓지 않고 자유자재로 시상을 넘나든다. 오랜 연륜에서 묻어나는 웅숭깊은 시선은 쉽사리 흉내 낼 수 없는 그의 고유영역으로까지 보인다.
자고 나면
논에 가 엎드리고
먹고 나면
밭에 가 엎드려
땅 보고 절하는
농부 아저씨들
마주 바라보고
절하는 만큼
땅도 내놓는다
오곡백과 내놓는다
절값으로 내놓는다
_「농부 절값」 전문
농부 아저씨가 허리 굽혀 일하는 모습을 절하는 모습으로 환치하여 쓴 한 편의 편안하고 진솔하고 참한 동시다. 시인의 새로운 시선과 정감 어린 속삭임이 읽는 이의 마음까지 참하게 만든다. 이처럼 시인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과 사물에도 깊은 눈길을 건넨다.
나무에 가면
새는
방이 많다
이 가지 저 가지에
큰방 건넌방 사랑방 마룻방 문간방 골방
동당동당
포르릉 포르릉
아래층에서 위층
위층에서 다락방
오르내리며
방문을 열었다, 닫았다
닫았다, 열었다
들락날락
_「새는 방이 많다」 전문
똑같은 풍경이나 상황을 보더라도 어떤 눈과 마음으로 대하느냐에 따라 그 이미지는 천차만별로 다가온다. 위 동시는 ‘그림이 잘 그려지는 시’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함축적인 언어만으로도 선명하고 구체적인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나무는 그냥 나무가 아니라 ‘큰방 건넌방 사랑방 마룻방 문간방 골방’이 있는 커다란 집이다. 그냥 나무로만 보이던 나무가 숱한 방을 지닌 새의 집으로 새롭게 거듭남으로써 새 또한 그냥 새가 아니라 숱한 방들의 문을 열고 닫는 존재로 자연스럽게 변모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범범하게 인식해온 나무와 새를 우리 머릿속에 인상적인 이미지로 새롭게 각인하게 되는 것이다.”(어린이문학평론가 김제곤)
사람 머릿속에도
생쥐가 사나 봐
손가락 건 약속도 까맣게 잊는 아빠
했던 말 하고 또 하는 엄마
모두 머릿속 생쥐가 까먹기 때문이지
내가 키우는 생쥐는
숫자를 좋아해
애써 외운 구구단이
하룻밤 새 사라져
할머니 머릿속에는
새끼까지 쳤나 봐
나를 붙잡고 한 번씩
고모 이름 부르시는 걸 보면
_표제시 「머릿속에 사는 생쥐」 전문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이해하려는 아이의 예쁜 마음이 담긴 동시다. 할머니의 병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자신이나 아빠나 엄마처럼 곧잘 까먹는 버릇을 가졌을 뿐이라고 여긴다. 머릿속에 ‘생쥐’가 있기 때문에, 할머니 머릿속에는 생쥐가 새끼까지 쳤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표현하는 아이만의 상상력이 재미와 함께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이 동시에서도 아이의 또랑또랑한 목소리와 말똥말똥한 표정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다.
『머릿속에 사는 생쥐』 속에 담긴 60편의 동시는 그 한 편 한 편이 다른 맛을 지니고 있다. 그 맛은 결국 우리 삶의 단면들을 대변하는 것이고, 우리에게 어떤 기쁨과 꿈을 안겨주는 작은 씨앗이 되어 가슴속에서 움직거린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늘 한결같은 열정과 천진함으로 동시를 쓰는 박방희 시인. 그의 뜨거운 삶과 군더더기 없는 동시들은 그동안 관습적인 시선과 틀에 갇혀 있던 우리 동시문단에도 큰 활력을 줄 것이라 기대한다.
자유로운 선과 강렬한 색감이 돋보이는 홍성지 화가의 그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느 동시집과 확연하게 다른 그림 풍이 박방희 동시집의 참맛을 더욱 세련되게 돋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