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S 노트 -도쿄 여행의 새로운 법칙
골목길을 걸어 나가는 동안 등 뒤로 해가 졌다.
낮에 구름이 많았던 덕분에 붉은 노을이 제법이다. 가방을 고쳐 멜 때마다 풍풍 커피 향기가 올라온다. 혼자 웃으며 도쿄의 서쪽에 인사를 전했다. 나… 여기 있어요. 여기, 왔어요… 잠시겠지만, 여기서 우리 함께 살아요. 그렇게 첫째 날의 저녁이 시작되었다.
예전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도쿄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려면 서쪽으로 가라’고. 도쿄의 서쪽은 다이칸야마, 지유가오카, 키치죠지 등이 몰려 있어 예전부터 유명했고 동네 하나하나 대부분의 가이드북에서 비중 있게 언급되고 있다. 덕분에 그 지역의 패션, 잡화 그리고 세련된 분위기와 어느 정도 비싼 물가 등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고엔지와 시모키타자와 나카메구로와 함께 도쿄의 서쪽동네를 뚝 떼어내 바라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그곳은 도쿄 사람들도 미처 생각지 못했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도쿄 서쪽의 마법이 펼쳐진다.
표지부터 따뜻하면서도 독특한 감성이 묻어나는 이 책은 특이하게도 도쿄 전체가 아니라 도쿄의 서쪽만을 안내하는 가이드북이다. 고즈넉하고 여유로우면서 세련된 동시에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어온 것 같은 각종 가게들이 골목 군데군데 평화롭게 자리하고 있는 풍경. 십여 년 단골손님부터, 멋진 젊은이들이 오순도순 모여든 동네를 거닐다보면 나도 모르게 여행자라는 신분도 잊고 이곳에 예전부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공기 속에 빠져들게 된다. 이 가이드북은 섬세한 동네를 조심스레 소개하는 만큼 글이 많은 편이다. 다시 말해 많은 정보를 넣기 위해 저인망식으로 온갖 가게들을 다 소개하는 대신 눈썰미 좋은 주인장이 골라온 예쁜 물건들로 가득한 세련된 멀티숍 같은 책이다. 저자가 직접 겪어보고 느낀 경험을 토대로 다만 몇 군데 장소일지라도 ‘제대로 소개’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좋은 카페라면 인테리어뿐만 아니라 어떤 원두를 쓰고 로스팅은 어떻게 하는지, 음식은 또 어떤지를 짚어주고, 잡화점을 추천한다면 어떤 독특한 물건들이 좀 더 많다든가, 저렴하다든가 하는 필수 정보들을 세세하고 꼼꼼하게 알려준다. 인상 깊은 장면을 목도한다면 그 장소를 가꿔온 주인, 손님들과 커피 한잔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며 가게에 녹아든 사람들의 삶과 인생관, 동네와 골목의 공기를 짙고 깊은 커피 향처럼 볶아낸다.
내가 느낀 걸 너도 느끼길 바라
저자는 도쿄의 서쪽을 여행하기를 권하면서, 괜찮은 가게들을 친절하게 소개해주고, 쉽게 찾아 갈 수 있게 상세하게 설명한다. 이 모든 것은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다. 도쿄의 서쪽을 찾아가야 하는 까닭은 도쿄 서쪽은 공기만으로도 감성을 자극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가령 어느 다락방이 있는 카페를 가면 어린 시절 아지트에서 친구들과 미래를 그렸던 시간을, 한적한 어느 카페에선 지나가 버린 사랑을, 또 다른 곳에선 고등학생 때의 그 풋풋했던 감성을 처음 마주한 순간을 다시 마주한다. 저자는 자신이 느낀 기운을 우리에게 전달해주며 예쁜 기념사진을 찍고 커피 한잔, 기념품 한두 개 사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감성이 숨 쉬고 있음을 느껴보길 조심스레 청한다. 이 가이드북은 다른 이의 사진앨범을 뒤적여 보는 것과 같다. 도쿄의 서쪽 동네와 가게를 한 장면 한 장면 보면서 각자 자신의 감성과 마주하는 통로로 들어서는 것이다. 고즈넉한 골목길, 세련되고 편안한 카페, 맛있는 커피와 음식, 사람 좋은 웃음소리가 있는 도쿄의 서쪽은 도쿄 여행의 새로운 테마, 도쿄의 법칙, 도쿄 여행의 새로운 제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