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신이 공존하는 풍요롭고 황홀한 세계, 켈트 신화
켈트 신화는 아일랜드를 지리적 기반으로 하는 고대 켈트 족의 민족 신화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만 익숙한 우리에게 켈트 신화는 꽤 낯설다. 그러나 주변을 돌아보면 놀랍게도 켈트 신화가 우리 곁에 아주 가까이 자리 잡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켈트 신화는 그 신화가 갖고 있는 무한한 상상력과 풍부한 서사성으로 인해 우리에게 친숙한 판타지 문학이나 게임, 영화 등에서 계속해서 변주되고 재생산되어 왔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반지의 제왕』이나 아서 왕 이야기, 게임 <마비노기> 등이 그것인데, 이 작품들에 자주 등장하는 요정이나 마법사, 독특한 능력의 신 등이 켈트 신화에서 온 존재들이다. 실제세계와 상상세계를 구분하지 않았던 켈트 신화 속에서 이러한 존재들은 인간과 자연스럽게 공존하며 다양한 서사들을 생산해냈고, 그 서사들이 중세 서부 유럽 전설과 민담을 통해 구전 전승되면서 유럽 문학과 현대 문화 콘텐츠에 끊임없이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이렇듯 낯선 듯하지만 우리 가까이 있는 켈트 신화는 최근 신화 전반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수많은 등장인물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들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다양한 지역, 다양한 시대, 다양한 신화들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다시 쓰는 <세계신화총서> 일곱번째 책으로 켈트 신화를 다룬 『꿈꾸는 앵거스』가 출간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사랑과 꿈을 안고 밤하늘로 날아오르는 자, 앵거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이야기의 마술사로 불리는 알렉산더 매컬 스미스는 『꿈꾸는 앵거스』에서 켈트 신화를 사랑과 꿈의 신 앵거스 이야기로 재창조했다. 앵거스는 켈트 부족 가운데 하나인 투아하 데 다난의 보호자이자 가장 강력한 신 다아다와 강의 여신 보안의 아들이다.
이 이야기는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켈트 신화에 나오는 인기 있고 매력적인 신 앵거스의 신화를 다시 쓴 것이다. 앵거스는 꿈을 주는 자요, 사랑의 신이며, 젊음의 표상이다. …… 앵거스는 현대에 들어와서 W.B. 예이츠의 시 「방랑하는 앵거스의 노래」뿐 아니라 경쾌한 스코틀랜드 자장가 <꿈꾸는 앵거스>에도 영감을 준 온화하고 잘생기고 명랑한 인물이다.
- <들어가는 글>에서
앵거스가 이렇게 주로 시인들에게 시적 영감을 주는 존재인 이유는 그가 영웅의 성격을 지닌 대부분의 신들과는 달리 ‘특별히 도덕적이거나 교훈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그리고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끊임없이 깨우쳐주는 꿈과 사랑과 관련된 신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에로스와 유사한 존재이다.
매컬 스미스가 켈트 신화를 새로 쓰면서 신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강력한 신들을 모두 제쳐두고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앵거스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매컬 스미스는 현대적으로 켈트 신화를 다시 살려내면서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강력한 권력도, 전지전능한 능력도, 영웅 심리도 아닌 우리가 언제나 간직하고자 하지만 계속해서 그 끈을 놓치고 마는 사랑과 꿈이라고 생각했다.
앵거스는 오든이 프로이트에 관한 시에서 우리를 기다리며 우리의 인식을 필요로 하는 밤의 산물로 그토록 아름답게 묘사한 실재(實在), 즉 우리의 꿈과 우리를 만나게 해준다. 그러나 앵거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앵거스는 젊음과, 우리가 젊었을 때 경험했을 법한, 그리고 서서히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잊지 않으려 노력할 법한 격렬하고 열정적인 사랑을 대표한다. 나이와 경험이 우리를 진지하고 조심성 있게 만들지도 모르지만, 앵거스는 언제나 우리 안에 있다. 꿈꾸는 자, 앵거스는.
- <들어가는 글>에서
인간 정신의 원형을 이루는 신화는 시대마다 다르게 읽히고 다르게 해석되면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해왔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쓰여진 신화를 통해 당대를 인식할 영감을 얻어왔다. 『꿈꾸는 앵거스』는 갈수록 복잡해지는 현대사회에서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에 묻혀 잊고 마는, 그러나 문득 떠올라 우리의 삶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해주는, 우리가 진정으로 이루길 바랐던 꿈과 항상 꿈꿔왔던 열정적인 사랑을 일깨워준다.
오늘밤 당신의 꿈속으로 앵거스가 찾아온다
『꿈꾸는 앵거스』는 켈트 신화를 기반으로 다시 쓴 앵거스의 이야기와 현대 스코틀랜드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짤막한 이야기들에는 앵거스를 구현하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매컬 스미스는 이 인물들을 통해 켈트 신화 속 존재인 앵거스를 현대세계로 끌어들인다. 이러한 앵거스의 분신들은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진심으로 바라는 꿈과 이루고자 하는 사랑이 결실을 맺도록 도와준다.
앵거스의 이야기는 앵거스가 어떻게 강력한 신 다아다와 강의 여신 보안의 아들로 태어나게 되었는지에서 시작하여 다아다의 큰아들 미이르를 아버지로 알고 자라게 되는 이야기, 진짜 아버지가 다아다라는 사실을 알고 찾아가 그를 내몰고 스스로 왕이 된 뒤 작은 신들과 인간들에게 달콤한 꿈을 주고 사랑을 이루게 해주는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꿈속에 나타난 아름다운 여인을 찾아내 사랑을 이루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이와 같은 앵거스의 이야기 사이사이로 현대의 이야기들이 끼어든다. 너무나도 좋아하고 의지했던 형이 일자리를 위해 멀리 떠나게 되자 슬퍼하던 동생이 앵거스가 가져다줄 형에 대한 꿈을 기대하면서 형과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이야기, 자신의 아버지가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한 소년이 어머니의 부정을 현재 아버지에게 폭로하려고 하자 외삼촌인 앵거스가 그 소년의 마음을 돌리게 하는 이야기, 실험용 돼지를 돌보는 한 남자와 꿈속에서 여러 차례 그 남자를 보게 된 여자가 마침내 그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 마지막으로 남편의 불륜 사실을 알고 남편 곁을 떠났다가 자각몽(自覺夢)을 통해 자신이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으며 남편 또한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함께하게 되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 이야기들은 모두 ‘사랑’과 ‘꿈’이라는 소재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별히 교훈적이거나 명확한 결말 없이 열려 있다. 따라서 우리는 신화 속 앵거스의 이야기와 현대 앵거스의 분신들이 펼치는 이야기를 함께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신화적 상상력을 펼치고 또 한편으로는 지금 우리 자신의 자리를 돌아보는 계기를 갖게 된다. 이것이 매컬 스미스가 앵거스를 현대로 끌어들인 이유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매컬 스미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독특한 이야기 구조가 갖는 미덕일 것이다.
알렉산더 매컬 스미스의 글은 꾸밈없고 편하게 읽히며 전하는 바가 분명하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의 글은 예술임을 감추고 있는 진정한 예술이다.
- 선데이 텔라그라프
지은이 _ 알렉산더 매컬 스미스(Alexander McCall Smith)
1948년 짐바브웨에서 태어나 짐바브웨와 스코틀랜드에서 교육을 받았다. 스코틀랜드에서 법학 교수를 역임했던 그는 아프리카로 돌아가 보츠와나 대학에 로스쿨을 설립하는 데 공헌했으며, 이곳에서 법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미국과 이탈리아 등 세계 여러 나라 대학의 강단에 섰던 그는 현재 에든버러 대학교 법의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매컬 스미스는 단편집과 아동문학을 포함해 지금까지 쉰 편 이상의 작품을 출간했는데, 1998년 발표한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인기 작가로 떠올랐다. 이 작품은 그해 부커 상 심사위원들로부터 특별 추천을 받았고, 『타임스 문예지』에서 선정한 ‘올해와 밀레니엄을 대표하는 해외도서’에 뽑히기도 했다.
주요 작품으로 『사자와 결혼한 소녀』 『이리저리 움직이는 비비원숭이』 『천국의 데이트』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 시리즈, 『일요일 철학 클럽』 시리즈, 『천국의 데이트』 등이 있다.
옮긴이 _ 이수현
197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학교 안 전공은 인류학, 학교 밖 전공은 환상문학이라고 주장한다.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석사 논문을 썼고, 『페러노말 마스터』로 제4회 한국판타지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옮긴 책으로는 『빼앗긴 자들』『로캐넌의 세계』『멋진 징조들』『디스크월드』『크립토노미콘』『겨울의 죽음』『거울 속 소녀』『사자와 결혼한 소녀』『이리저리 움직이는 비비원숭이』 등이 있다.
* 2007년 10월 31일 발행
* ISBN 978-89-546-0407-9 03840
89-546-0048-4(세트)
* 120*186 | 192쪽 | 9,000원
* 담당편집 : 류현영 (031-955-88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