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노벨문학상 발표 무렵이면 고은 시인의 수상 여부를 놓고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다. 세계 속의 한국문학의 위상을 놓고, 어떤 이는 제대로 된 번역가를 양성해 더 많은 작품을 번역·출간하여 외국에 소개해야 한다고, 어떤 이는 우리 사회가 먼저 한국문학을 존중해야 한다고, 또 다른 이는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등 저마다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이런 다양한 이견에 대해 『다국적 시대의 우리 소설 읽기』에서 김윤식은 『임꺽정』(홍명희) 『잡설품』(박상륭) 『순교자』(김은국)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김연수) 등의 개별 작품을 통해 지방성이 일반화를 넘어 보편성에 닿을 때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에 닿을 수 있을 것이라 이야기하며 다국적 시대 속에서 한국문학이 나아갈 길에 대한 실마리를 찾는다.
1부 ‘사이의 세계’에서는 김동리와 서정주를 통해 ‘외부’와 ‘내부’를,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을 통해 ‘말의 세계’와 ‘문자세계’ 사이의 이야기를 다룬다. ‘한국문학과 종교적 영성’ 세미나에서 발표한 「천지로서의 ‘외부’와 넋으로서의 ‘내부’의 시학」은 천지신명으로 표상되는 외부와 넋 또는 혼으로 표상되는 내부를 상정하고 각각의 구경적 형식을 엿봄으로써 우리 근대문학 속 시학의 거리를 가늠한다. 「‘말의 세계’와 ‘문자세계’ 사이의 거리 재기」는 근대 시민계급의 산물로 소설을 파악해 『임꺽정』을 체제 도전의 측면에서 읽어간다. 김윤식은 『임꺽정』이 공맹의 도, 곧 문명사회의 법도와 질서를 일상적 삶의 현장인 말의 세계로 옮기는 작업 가운데 일어났다고 보면서 시대에 따라 『임꺽정』의 독법이 달라진다는 논지를 전개해간다.
2부 ‘시대 속의 작가’에서는 이광수와 이상, 이병주 등을 통해 다국적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의 고민을 다룬다. 「언어횡단적 실천과 현실환원적 실천」에서는 루쉰의 「아Q정전」과 이광수의 『무정』 「만영감의 죽음」을 통해 근대를 수용하는 두 문인의 유형을 비교·분석한다. 「‘물 논쟁’이 놓인 자리」에서는 임화와의 가상대담을 통해 카프문학과 “근대정신을 내용으로 하고 서구문학의 장르를 형식으로 한 조선의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상의 일어 육필원고에 대하여」는 『현대문학』(1960)과 『문학사상』(1976)을 통해 공개된 이상의 미발표 유작 원고의 구성, 내용, 지질과 분량, 독법 등을 검토하여 이상 문학 연구의 전환점을 제시한다. 「상하이, 1945년, 조선인 학도병」을 통해서는 일제시대 조선인 학도병으로 중국 쑤저우에 배치되어 스스로를 노예라 자처한 이병주의 『관부연락선』 「8월의 사상」 등의 작품을 통해 ‘유언으로서의 글쓰기’와 소설 쓰기를 통해 노예의식을 극복하는 방식을 읽어간다.
3부 ‘근대의 덫, 그리고 모국어’에 수록된 「하근찬 소설의 ‘준동화’적 성격」에서는 ‘동화’와 ‘준동화’는 어떻게 구분되며 또 그것은 ‘소설’과 어떻게 다른지를 통해 하근찬 문학을 규정한다. 「이호철의 ‘차소월선생 삼수갑산운’」은 분단문학의 대가 이호철이 「판문점」 「탈향」 등의 작품을 통해 ‘불귀’라는 화두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그려낸다. 「벽초와 이청준을 잇는 어떤 고리」에서는 “조선 정조에 일관된 작품”인 『임꺽정』과 김은국의 『순교자』의 공통점으로 ‘합동위령제’를 찾은 뒤, 이청준의 『신화를 삼킨 섬』이 이 두 작품의 한국적 특수성을 한 차원 끌어올려 지방성을 뛰어넘는 보편성을 획득했다고 고찰한다. 「한국어로써 한국어 글쓰기의 넘어서기는 어떻게 가능한가」에서는 작가와 번역가의 영역을 오가는 김연수를 통해 핏줄끼리의 글쓰기를 벗어나 영어권 독자와의 소통까지를 고려한 글쓰기가 가능한지에 대해 번역비평의 형식으로 읽어나간다.
4부 ‘소설질하기의 성스러움’에서는 『잡설품』과 『소설법』을 통해 박상륭론을 펴나간다. 김윤식은 “모든 서사구조란 순례자의 길 가기”라고 말하며 자칭 할방패관(瞎磅稗官) 박상륭의 진화론을 분석한다. 한국적 샤머니즘(지방성)에 문학의 뿌리를 둔 스승(김동리)의 지방성을 박상륭이 어떻게 세계성으로 극복해나갔는지를 짚어낸다. 앞선 글이 시대와 부딪히며 살아간 작가들의 치열한 고뇌를 담고 있다면, 5부 ‘세계 속의 한국문학의 위상’은 어깨에 힘을 빼고 현 시점으로 돌아와, 김윤식이 직접 경험한 레이던에서의 AKSE(유럽한국학회) 대회를 그려낸다. AKSE 대회를 자신의 글쓰기의 ‘숨구멍’이라 표현할 정도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 이 대회에서 김윤식은 신구 세대의 교체, 한국적 특수성의 탐구, 서울의 환경문제, 개성공단 및 개성 지역의 역사적 고찰 등 평면적인 학문연구에서 벗어나 외국학자들이 ‘보편성으로서의 한국학’을 공부하는 태도를 바라보며 서양과 동양이라는 이분법의 덫을 극복해가는 가능성을 찾는다.
개인을 벗어나 역사·사회적 글쓰기를 고찰하다!
『다국적 시대의 우리 소설 읽기』에 수록된 12편의 평론은 시대와 작가는 물론이고, 평론과 가상대담, 에세이 등 형식의 경계 또한 넘나든다. 김윤식은 시대와 사회의 산물이자 동시에 의식과 무의식을 안고 있는 ‘문학’이 무엇인가, 한국문학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과제를 ‘소설 읽기’를 통해 나름대로 정리해간다. “누구에게나 개인적 상처가 있듯 역사·사회적 상처도 있기 마련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다국적 시대의 우리 소설 읽기』에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 저마다의 상처를 가진 여러 작가가 자신의 길을, 자신의 문학이 나아갈 길을 고뇌한 흔적이 녹아 있다. 우리 문학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우리 문학이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작은 해답을 찾고자 하는 노장의 한국문학에 대한 애정을 『다국적 시대의 우리 소설 읽기』에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꺽정과 서림이 등장하여 ‘농무’를 추는 시대에서 아득히 벗어나 바야흐로 다국적 다문화시대에 살고 있지 않겠는가. 통일시대의 문학, 민중문학 따위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을까. 이런 거리를 잴 수 있는 독자라면, ‘조선 정조’의 의미에 난감해할 수밖에요. 표현으로서의 ‘조선 정조’도, 제도나 용어의 번안 또는 전이로서의 ‘조선 정조’도, 그러니까 통틀어 문자세계에서 무문자세계(얘기세계)로의 차원이동도 오늘의 시점에서 볼 때 별 의의가 없거나 엷어 보인다면 대체 글쓰기의 목표로 삼은 그 ‘조선 정조’는 어디에서 찾아야 적절할까. _본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