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은 투르게네프의 최고 걸작일 뿐 아니라 19세기의 가장 훌륭한 소설이다
_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아버지와 아들』은 이반 투르게네프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소설 제목의 원뜻은 ‘아버지들과 아들들’이지만 두 세대의 대립과 갈등을 강조하기 위해 『아버지와 아들』로 번역되었다. 당시 대립하던 보수파와 급진파를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로 대표해 그려낸 이 소설은, 특히 급진적인 사상의 주인공 바자로프에 대한 묘사로, 발표하자마자 보수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의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투르게네프는 러시아 사회의 문제들을 날카롭고 세밀하게 묘사하였으며, 러시아의 자연과 인간의 내면까지 아름답게 표현해내며 동시대 작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발표된 지 백오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버지와 아들』이 크게 사랑을 받으며 고전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이유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생생한 성격 묘사와 시대를 초월한 소재 때문일 것이다. 투르게네프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들과 주변 인물들의 특징을 다채롭게 표현하며 세대 간, 계급 간의 갈등뿐만 아니라 같은 세대와 계급 사이에도 존재하는 이견을 섬세하게 풀어냈다. 또한 자식을 향한 부모의 변함없는 애정,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뜨거운 열정, 인생에 대한 철학적 사색과 러시아의 자연에 대한 서정적 묘사 등 시대를 막론하고 누구나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소재를 다루었다.
러시아 문학 전문가이자 이미 투르게네프의 작품을 여러 편 우리나라에 소개한 바 있는 이항재 교수는 투르게네프 특유의 유려한 문체를 잘 살려내어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했다. 오늘날의 독자들은 『아버지와 아들』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한 진정한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줄거리
대학을 졸업한 아르카디와 바자로프가 아르카디의 고향 마리노 마을에 도착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친구 아르카디의 저택에 잠시 머무르게 된 바자로프는 귀족주의에 젖어 아무런 생산 활동도 하지 않은 채 탁상공론만 일삼는 아르카디의 큰아버지 파벨과 정치·사상·문화·예술 등 모든 방면에서 대립한다. 진보적이며 급진적 성향을 띤 바자로프는 스스로를 니힐리스트라 칭하며 세상의 모든 가치와 권위를 부정하고 심지어는 인간의 사랑까지 부정한다. 그러면서 아르카디의 아버지 니콜라이가 아들에게 보이는 애정까지도 전부 쓸모없는 로맨티시즘으로 치부해버린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파티에서 만난 오딘초바 부인에게 열렬한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평소 자신이 주장했던 것과 모순되는 감정을 느끼고 바자로프는 고뇌에 빠지는데……
추천사
투르게네프는 금세기 가장 탁월한 작가 중 한 사람이며 동시에 가장 정직하고 직설적이며 모든 일에 성실하고 다정다감한 사람이다.
_ 모파상
『아버지와 아들』은 투르게네프의 최고 걸작일 뿐 아니라 19세기의 가장 훌륭한 소설이다.
_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투르게네프의 작품을 읽으면 숨결이 가벼워지고, 믿음이 생기고, 따스함을 느끼고, 우리 마음의 도덕적 수준이 고양된다. 그리고 어느새 그를 사랑하게 된다.
_ 살티코프 셰드린(소설가)
『아버지와 아들』은 사회적인 문제가 찌꺼기 없이 완전히 예술로 승화되어 있으며 설익은 저널리즘적인 요소가 전혀 눈에 띄지 않는 걸작 중의 걸작이다.
_ 미르스키(문학평론가)
본문 발췌
“바자로프가 뭐 하는 사람이냐고요?”아르카디가 빙그레 웃었다. (……)
“그는 니힐리스트예요.”(……)
“니힐리스트라고?”니콜라이 페트로비치가 말했다. “내가 알기로 그건 라틴어‘니힐(nihil)’, 즉‘무(無)’에서 나온 말인데. 그러면 그 단어는……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 아니냐?”
“아무것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해.”파벨 페트로비치가 말을 받아넘기면서 다시 빵에 버터를 바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비판적 관점에서 보는 사람이지요.”아르카디가 말했다.
“마찬가지 아니냐?”파벨 페트로비치가 물었다.
“아뇨, 똑같지는 않아요. 니힐리스트는 어떤 권위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아무리 주위에서 존경받는 원칙이라고 해도 그 원칙을 신앙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p. 38~39)
“그럼 당신은, 당신의 말을 빌리자면…… 제가 자제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단 말인가요 (……) 당신은 이 자제심의 원인을 알고 싶다는 말이지요? 제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고 싶다는 말이지요?”
“그래요.”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놀라움을 느끼면서 그녀가 되뇌었다.
“화내지 않으실 겁니까?”
“화내지 않아요.”
“화내지 않는다고요”바자로프는 그녀에게 등을 돌리고 섰다.“그럼 말하죠.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바보처럼, 미칠 듯이…… 자, 이제 당신의 목적을 이루셨군요.”
오딘초바는 두 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바자로프는 창문 유리에 이마를 꼭 대고, 숨을 헐떡이면서 눈에 띄게 온몸을 떨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젊은이의 수줍은 떨림도 아니고, 첫 고백의 달콤한 공포가 온몸을 사로잡은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가슴속에서 몸부림치는 욕망이었다. 증오와 닮은, 아마도 증오와 비슷한 강하고 고통스런 욕망이었다……
(p.162~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