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영문학의 제인 오스틴’
애니타 브루크너의 부커상 수상작
‘현대 영문학의 제인 오스틴’이라 평가받는 애니타 브루크너는 1928년 유대계 폴란드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53세라는 늦은 나이에 첫 소설을 발표했을 때 브루크너는 이미 미술사학자로 명망이 높았다. 유학시절을 제외하고 태어나 줄곧 런던에서 살았지만 늘 스스로를 이방인이라 여겼고, ‘남의 눈에 띄지 않기를’ 열망해 평생 미혼으로 은둔자적인 생활을 했다.
폐쇄적인 생활은 오히려 삶의 모든 파편들을 정제해 순수한 상태로 작품에 담는 역설을 낳았다. 브루크너는 자신이 경험한 세계, 삶에 대한 통찰과 미제의 물음들을 자신의 대리인격인 여성 화자가 등장하는 소설로 실체화했다. 1984년 발표한 네번째 작품 『호텔 뒤락』에는 이러한 작품성향이 가장 매혹적으로 드러난다. 특히나 이 작품은 ‘2인치 상아’에 ‘섬세한 붓’으로 그림을 그린 듯한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 비견되어 ‘18세기 소설의 전범’이라는 평으로 브루크너에게 그해 부커상을 안겨주었다.
『호텔 뒤락』에서 작가는 필명으로 로맨스 소설을 쓰는 주인공 이디스 호프를 통해 부모와 자식, 남자와 여자, 여자와 여자 간 관계망을 예리하게 살핀다. 이를 바탕으로 실존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사회적 일과 정서적 안정을 제공하는 결혼이 왜 여성에게는 여전히 양립될 수 없는지를 묻고 이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한다.
실존적 필요와 감정적 자유가 양립하기 어려운
여성의 현실에 대한 자아성찰적 물음
『호텔 뒤락』의 주인공 이디스 호프는 버지니아 울프를 환기한다. 작가라는 사회적 신분도 유사하며, 사람들은 그녀를 버지니아 울프와 닮았다고 말한다. 단지 그녀는 낭만적 환상을 충족시켜 줄 수 없는 결혼생활에 좌절해 자신마저 방기했던 어머니와 그런 아내를 대신해 정서적 안정을 주려 노력했던 아버지 사이에서 자라 늘 소박한 가정생활의 즐거움을 꿈꾼다. 하지만 모두가 그녀에게 과분한 남편감이라고 평가한 제프리와의 결혼식 당일, 이디스는 하객들을 뒤로하고 집으로 되돌아온다. 이 사건으로 얼마간 유배생활을 하며 반성과 참회를 하도록 호숫가에 위치한 휴양지 호텔인 ‘호텔 뒤락’으로 떠밀려오게 된다.
이디스는 휴가철이 끝난 무렵의 호텔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다양한 유형의 여성들(극도의 여성성을 무기로 특별 대접을 즐기는 사치스러운 퓨지 모녀와 거식증으로 아이를 갖지 못한 탓에 남편에 의해 호텔로 오게 된 모니카 그리고 며느리와의 불화로 아들을 위해 집을 떠나 호텔을 전전하게 된 보뇌이유 부인 등)을 마주하고 사회가 허용하는 여성에 대한 오래된 담론을 깨닫게 된다. 브루크너는 이러한 이디스의 깨달음을 두고 ‘자기만의 방’을 성취했음에도 채워지지 않는 결여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버지니아 울프와 모든 여성에게 묻는다.
이는 작가 자신의 삶에서 도출된 자아성찰적 물음이라 더욱 무게를 지닌다. 여성 최초로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슬레이드 석좌교수의 자리까지 오른 미술사학자이며 1984년 9월에 출간된『호텔 뒤락』이 그해에만 5만 부 이상 판매되고 이후 BBC에서 드라마로 방영될 정도로 문학성은 물론 대중성까지 확보한 소설가였지만, 브루크너는 이 두 활동(학문과 글쓰기)을 “자연의 질서 밖에 있는 것”으로 인식했고, “사람들이 성공이라고 부르는 것을 다 가진 다 큰 고아가 되는 대신”에“아들이 여섯쯤 있기를” 바랐다.
브루크너는 이에 대한 답을 찾고자 마치 실험을 하듯 이디스에게 결혼과 일 사이에서 선택을 요구한다. 결국 이디스는 결혼과 일 사이, 하나가 다른 하나의 보상이 될 수 없음을 깨닫고 호텔 뒤락을 떠나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브루크너의 물음에 그녀가 창조한 소설은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자유로운 삶을 사는 미혼 여성의 서사가 로맨스 소설과는 다른 결말을 예비하고 있다는 날 선 답변을 남긴다.
해외 서평
진정한 고전, 지금부터 백 년 동안 모든 사람들이 즐겨 읽을 작품이다._스펙테이터
브루크너는 영문학에서 가장 독보적인 자리에 위치하면서도 그에 안주하지 않는 특별함을 지닌 작가이다._인디펜던트
브루크너의 작품 중 가장 매혹적인 소설로, 풍자적인 현실인식과 우아한 문체에 매료될 수밖에 없다._뉴욕 타임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구성에 만족스러운 위트가 가득한 작품이다._뉴스위크
줄거리
이디스 호프는 런던에 위치한 작은 집에 혼자 살며, 필명으로 로맨스 소설을 쓰는 제법 성공한 소설가다. 낭만적 환상을 충족시켜 줄 수 없는 결혼생활에 좌절해 자신마저 방기했던 어머니와 그런 아내를 대신해 정서적 안정을 주려 노력했던 아버지 사이에서 자란 이디스는 소박한 가정생활의 즐거움을 꿈꾼다. 하지만 모두가 그녀에게는 과분한 남편감이라고 평가한 제프리와의 결혼식 당일, 이디스는 하객들을 뒤로하고 집으로 되돌아온다. 이 사건으로 얼마간 유배생활을 하며 반성과 참회를 하도록 호숫가에 위치한 휴양지 호텔인 ‘호텔 뒤락’으로 떠밀려오게 된다. 휴가철이 끝나 투숙객이 많지 않은 호텔에서 이디스는 삶을 방향을 결정하게 될 또 한 번의 청혼을 받게 되고……
본문 발췌
괜히 교수의 딸인 건 아니겠지. 해럴드는 그녀가 잠깐 휴식을 취한 다음 곧 다시 작업을 시작해 웬만하고 꽤 잘 팔리는 작품을 또 하나 가지고 나타나리라고 생각했다.
“물론,”이디스는 목욕용 소금 색깔의 설탕 조각을 커피에 넣으면서 말했다. “토끼가 거북의 선전용 로비에 영향을 받을 거라고, 그래서 더 신중해지고 조심성 있고 더 천천히 행동할 거라고 주장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토끼는 항상 자신이 우월하다고 확신해요. 토끼는 거북을 자신에게 어울리는 적수로 인식하지 않죠. 그래서 토끼가 이기는 거예요.”그녀가 끝을 맺었다. “내 말은 실제 삶에서 말이에요. 소설에서는 절대 그렇지 않아요. 적어도 내 소설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실제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내 소설에 쓰기에는 너무 끔찍해요. 그리고 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분명히 그런 걸 원치 않을 거예요. 해럴드, 아시잖아요. 내 글을 읽는 독자는 본질적으로 정숙한 사람들이에요. 그들 관점에서 보면, 또 내 관점에서 보더라도 높은 직위에 서류가방을 들고 오르가슴을 몇 번이나 경험하는 그런 여자들은 딴 데로 가야지요. 그 사람들 입맛을 제대로 맞춰주는 데가 있을 거예요. 어느 시장에나 그런 장사치들은 있기 마련이니까요.”
“이전에 쓰던 방식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이군요.”해럴드는 계산을 치르면서 말했다. (p.33~34)
자신이 저지른 부정한 행위에 생각이 미치자, 자신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으면서 친구가 되어준 훌륭한 여자들을 하찮게 생각하는 자신이 수치스러웠다. 나는 늘 여자에게는 너무 가혹했어, 그녀는 생각했다. 내가 남자보다는 여자를 더 잘 이해하기 때문일지도 몰라. 여자들의 경계심과 참을성과 스스로를 성공한 사람으로 광고해야만 하는 그 필요성까지도 알고 있기 때문에. 실패를 인정해서는 안 되는 여자들의 필요 말이야. 그 모든 걸 너무도 잘 알지,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니까. 내 어머니의 냉혹함을 기억하기에 더 냉혹한 걸 보게 될까 끊임없이 경계를 하느라 내가 이토록 가혹한지도 몰라. 그러나 여자들이 다 내 어머니 같지는 않아. 모든 여자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야. 아버지라면 이렇게 말했겠지. 이디스, 조금만 생각해보렴. 넌 지금 맞지 않는 등식을 세웠어.
그녀는 자신이 보잘것없다는 느낌에 짓눌려 고개를 떨어뜨렸다. 경솔하게도 나는 함부로 버지니아 울프의 이름을 들먹였어. (p.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