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정성이 있어서 더욱 맛있는 음식 이야기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있다. 정갈한 테이블클로스가 깔린 식탁을 마주하면 등을 곧게 세우게 된다. 정성 들여 차려놓은 밥상에 앉아 수저를 들면 존중 받고, 대접 받았다는 느낌에 먹기도 전에 배가 부르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푸드 스타일리스트 김정민은 자신이 하는 일을 이렇게 정의한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음식을 만들고, 그 음식과 어울리는 그릇을 고르고, 잘 다린 식탁보를 깔고, 성심성의껏 아름답게 차려내는 것. 정성이 없으면 건너뛰게 마련인 일을 15년이 넘도록 해오면서, 지은이에게는 많은 이야기가 생겼다. 음식을 통해 사람을 사귀고, 인연을 가꾸고, 차림새에 남다른 씀씀이를 기울이며 주고받은 사랑과 우정이 그것이다. 지은이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배려하며 음식을 차리고, 사람들은 잘 차린 음식을 보며 그를 떠올린다.
생애 처음으로 푸드 스타일링 작업을 하던 현장에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요리 연구가 박경미를 만나 친구가 된 추억을 돌이키며 지은이는 깔끔한 도기에 담긴 떡국, 유기에 봉긋하게 담아놓은 약식, 그리고 월과채를 식탁에 올린다. 그 친구가 만들어준 담백하고 깊은 맛의 궁중 떡국을 다시 만들어보고, 우정을 쌓아가며 지켜본 친구의 면모를 모든 재료를 각각 볶아야 해서 손이 많이 가는 월과채에 비유한다. 음식을 만들면서 먹는 사람의 식성부터 건강 상태까지 배려하려 애쓰는 친구를 떠올리며 그 자신도 배움을 얻는다. 유학 시절, 함께 공부했던 가수 이현우와 음식을 통해 공유한 추억을 꺼내기도 한다. 버터와 잼을 발랐을 뿐인데 유난히 맛이 좋았던 이현우의 토스트, 집에서 오징어채 무침, 김구이, 명란젓, 약고추장 등을 챙겨 소포를 보내온 날이면 으레 그와 함께 나눠 먹었다는 이야기를 듣노라면 매일 먹는 밑반찬이 새삼 정답게 느껴진다.
그밖에도 지은이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첫 일감을 준 지인이 작업실에 오는 날이면 귀한 음식 대하듯 손수 조심스레 만드는 트뤼플 초콜릿, 늘 바깥 밥을 먹는 친구가 안쓰러워 냄비에 바로 지은 밥, 새로 끓인 찌개, 계란말이와 굴비구이로 단출하게 한 상 차려주고 엄마의 마음으로 먹는 모습을 지켜본 일 등 소소하지만 따뜻한 음식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처럼 지은이는 기억과 사람들을 떠올리며, 당시 함께 나눈 음식을 차례차례 재현한다. 갓 차린 밥상처럼 따끈하고 심혈을 기울여 차린 그 음식들은 곧 지난 시절의 앨범이나 마찬가지다. 『마음을 담아내는 부엌』을 통해 바라본 음식에는 시간을 돌이키고, 기억 저편에 가라앉았던 추억을 꺼내 싱싱하게 되살리는 힘이 있다.
정(情)으로 나누는 우리 모두의 소울 푸드
김정민이 손님을 청할 때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은 격식이나 음식 가짓수가 아니라 ‘정(情)’이다. 예를 들면, 전날에 술을 많이 마신 친구가 오면 지친 속을 달랠 수 있도록 녹차에 밥을 말아 연어구이 한 토막을 올려 오차즈케를 만들고, 카레 같은 것을 만들 때는 부러 넉넉하게 만들어 작업실에 들르는 이들에게 자연스레 한 접시씩 대접하는 식이다. 손이 많이 가는 일이지만 해마다 부모님의 생신상을 온 정성을 다해 차려드리기도 한다.
“살면서 내가 잘하는 일 중 하나는 해마다 아버지 생신상을 직접 차려드리는 것이다. (중략) 정성 들여 음식을 만든 다음엔, 고급 레스토랑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격식과 예의를 갖춰 테이블 세팅을 한다. 내가 가장 잘하고, 자신 있는 전문 분야이기도 하지만, 테이블클로스부터 각종 식기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신경 써서 꾸민다. (중략) 순전히 기뻐하는 가족들의 얼굴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내가 차린 아름다운 식탁에 둘러앉아 한껏 먹고 마시며 웃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그 시간이 영원하길 바라는 소망이 생긴다.”_(본문에서)
지은이는 음식은 결국 먹는 사람을 만족시키고, 행복하게 해줘야 제 역할을 다한 것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음식을 손수 만들고, 그보다 더 정성 들여 아름답게 차려내는 것에 큰 의미를 둔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준 생일 별식부터 도시락 반찬,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어머니만의 손맛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음식을 통해 어떻게 성장해왔는지도 빼놓지 않는다. 이를 통해 독자는 지은이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한 명의 사람으로 빚고 성장시킨 영양분은 어머니의 사랑과 음식이란 걸 되새기게 된다. 생일날 먹었던 딸기화채와 율란, 밥상의 단골 반찬인 멸치 깻잎찜, 깨끗이 씻어 밀가루를 살짝 묻힌 다음 쪄낸 쑥버무리, 도시락 반찬으로 싸 가면 친구들이 모여들었던 대구포 무침, 아침이면 현관에 놓여 있던 주먹밥 같은 음식들을 함께 맛보다 보면 김정민이 스스로 어머니의 음식을 두고 첫 번째 스승이자, 마지막 보루와 같다고 말하는 이유를 알게 된다.
음식을 대하는 마음이 이와 같으니, 지은이는 음식 선물을 할 때 역시 남다른 태도를 보인다. 빵을 사면 대부분 비닐이나 유산지에 포장해주는데, 천으로 한 번 더 싸서 받는 사람의 눈을 먼저 즐겁게 해주거나, 시간이 날 때마다 천을 매치시켜 주머니를 만들어 와인 등을 선물할 때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식이다. 혼자 사는 이들에게는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약고추장을 직접 만들어 좋은 단지에 담아 보자기로 포장을 해 보내주기도 한다. 조각 천 하나, 끈 하나 더했을 뿐인데 그의 손을 거치면 음식에 담긴 마음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온다.
“제가 하는 일은 이처럼 마음을 눈에 보이게 표현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식마다 맛깔스러운 이야기를 덧붙이고, 정갈하게 담기 위해 오랜 세월 수집해온 수많은 그릇들을 보고 또 보며 골랐습니다. 스튜디오의 그릇장을 샅샅이 살펴보면서, 새삼 스타일리스트가 안목과 취향을 갖추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달았습니다. 식기부터 테이블클로스까지 하나하나 음식들과 맞춰보면서 이런 즐거움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누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 정성이 독자 여러분의 생활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_(본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