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양육대주에서 만난 사랑하는 영혼들과의 대화
터키 여행서의 교본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 여행자의 천국 라오스를 밀도 있게 소개한 『욕망이 멈추는 곳, 라오스』, 아프리카에 대한 가장 깊이 있는 여행서 『하쿠나마타타, 우리 같이 춤출래?』를 통해 여행작가로 이름을 알린 작가 오소희가 이번에는 여행서의 틀에서 벗어나 오대양육대주를 두루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나눈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에세이로 풀어냈다.
전작 여행에세이에서도 여정보다 사람에 초점을 맞춰 많은 에세이 독자들을 열광시켰던 오소희만의 글쓰기 스타일이 이 책에서는 가장 빛을 발한다. 사랑이라는 전 인류의 화두, 그 넓고 철학적인 주제가 낯선 곳의 낯선 이와 만나면서 오히려 주저 없이 솔직해지고 다양한 문화 속의 다양한 삶들만큼이나 다채롭고 깊이 있게 펼쳐진다.
사랑은 비단 남녀만의 문제도 아니고 청춘만의 전유물도 아니다. 이 책은 청년의 사랑, 중면의 사랑, 노년의 사랑을 통해 사랑이 시간을 견디면서 잃는 것과 얻는 것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또한 다른 문화권의 다른 생활방식으로 살아가는 남녀의 사랑 방식을 보여주면서 억제하는 사랑과 발산하는 사랑의 차이를 보여주기도 하며, 여행을 통해 자기애를 찾아가는 인물의 용기를 조명하기도 하고 남들과 다른 사랑을 하는 동성애자들의 실제를 만나기도 한다. 지구의 구석구석에서 찾아낸, 극진함으로 매일 새로운 모성애의 모습은 그 지난하고 무조건적인 사랑 앞에서 먹먹한 감동으로 다가오며 세상의 후미진 곳에서 건네지는 작고 소박한 배려들 역시 사랑의 한 방식으로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언제나 어디에서나 사랑은 작용하고 있다. 작가는 여행자들과 나눈 솔직하고 진지한 대화를 통해 모든 사람들 안에 있는 사랑의 갈망과 사랑의 능력을 찾아냈다. 그리고 사랑의 외연을 넓혀 우리에게 감각적으로 전달한다. 우리가 체감하는 그 좁고 답답한 사랑이 다가 아니라고 말하며, 사랑에 대한 다양한 탐구를 하라고 유도한다. 우리는 모두 사랑을 잘 하고픈 사람들이고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사랑을 잘 하고픈 사람들
1장 ‘최초의 사랑학교, 가정’에서는 제대로 사랑을 학습하지 못한 이들이 자기 방식으로 삶과 타인을 사랑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브라질 리우에서 만난 밥은 메이즈(미로)라는 독특한 가옥을 25년이 넘게 짓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통해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다. 폭력적인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모두 폭력적인 가장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깊은 상처를 안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란 쉽지가 않다. 두 번의 이혼 후 말루를 만나 아이들을 낳고 기르며 사랑의 가정을 실천하고 있다. 그들의 생활은 사랑 그 자체이다. 따뜻하고 배려가 넘치며 매일이 유쾌했던 메이즈에서 발이 묶일 정도로! 화려한 입담으로 중빈과 나이를 뛰어넘은 친구가 되어준 밥은 따끈한 한 덩어리 빵을 나누듯 사랑을 나누어준다.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서 만난 마르셀로는 억압적인 어머니 아래에서 통제받는 생활을 하다 과감히 버리고 뛰쳐나와 여행하는 삶을 살고 있다. 심지어 두 돌이 된 아들과 여행을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그에게는 온 세상이 다 인간의 집인 것이다. 그는 자신의 무게를 들어올리는 암벽등반의 체험을 작가에게 권한다. 작가는 우리가 중력에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하는 것처럼 서로의 다양한 사랑법을 존중해야한다고 말한다.
2장 ‘억제하는 사랑, 발산하는 사랑’은 서로 확연히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하고 있는 무슬림 남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요르단의 무슬림 아가씨 달랄은 십년 넘게 마음에 둔 남성이 있으나 그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녀는 신께서 점지해주시는 사람에게 헌신할 준비가 되어있 다. 작가는 달랄을 통해 사랑은 누구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인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청년 함지는 여성투숙객과의 하룻밤 사랑에 익숙한 무슬림 남성이다. 인생을 즐기라며, 기회가 있을 때 잡으라며,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라는 설을 펼치는 함지에게 저자는 말한다. 더 작지한 지속적인 행복을 위해 충동적인 욕망을 희생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욕망은 허약한 것이고 허망하게 손에서 빠져나가는 것이라고. 소중한 것으로 집을 지은 뒤 그 안에 욕망을 넣으면 욕망의 절제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당신에게 소중한 것을 찾으라고.
3장 ‘사랑의 시작, 자기애’는 자기애를 향해 첫발을 딛는 여자와 자기애의 완성을 보여주는 노인의 이야기이다.
필리핀 포트바톤에서 만난 마고는 자기를 찾기 위해 문명사회에서의 모든 것을 놓아둔 채 여행을 떠났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찾아 떠난 여행이지만 불안하고 두렵다. 그녀에게 저자는 자신의 고민했던 과정을 이야기해주면서 스스로를 믿으라 한다. 열린 가슴속으로 세상의 모든 길들이 들어와 그녀가 나아갈 곳을 알아서 인도해줄 것이라며.
미얀마에서 만난 찰스는 자기애의 완성을 보여준다. 방마다 빛과 바람이 쏟아져 들어오는 창, 맨발로 디디는 느낌이 좋은 나무 마룻바닥, 적당히 따뜻하고 적당히 버터가 녹아 있는 아침의 빵. 편안함에 대한 일가견이 있을 것만 같은 찰스에게서 저자는 스스로와 조화를 이룬 사람의 모습을 만난다.
4장 ‘사랑이 시간을 견디는 법’은 20대의 사랑, 30대의 사랑, 중년의 사랑을 보여준다.
파리에서 만난 루마니아 여대생 이리나는 가방 한 가득 초콜릿을 담아왔다. 그녀의 가방속을 보는 순간, 가방 한가득 초콜릿을 담아도 좋은, 기발하고 엉뚱한 삶의 계획들로 가득 찼던 시절이 떠오른다. 그 시절 나의 곁에 앉았던 나와 입을 맞추었던 그를 회상한다. 소중한 줄 모르고 쓸어담았던 그 시절의 계획들과 함께. 짐을 꾸리는 방식은 때로 그 사람이 사랑하는 방식이다. 초콜릿이 가득한 가방은 묘한 충동을 일으킨다. 가방을 쌀 줄 모르는 사람처럼, 딱 한 번쯤, 아무런 대책도 없이 무작정 떠나도 좋지 않을까. 그러나 충동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볼리비아의 라파스에서 만난 남녀 저글러들은 도로에 차가 서 있는 동안 저글링을 하고 동전을 받는다. 여자 저글러의 무기는 미소, 남자 저글러의 클라이맥스는 운동화 벗어 던지기. 가장 고난이도의 신발던지기를 여자는 존중한다. 그들은 청춘이기에. 청춘은 신비이고 청춘의 사랑은 지치지 않기에. 그러나 ‘이제 운동화 부분은 빼’ ‘네 미소도 그저 그렇거든’ 말해버리는 끝이 난다. 더 이상 빛나지 않는 먼지와 피곤에 절고 사랑을 잃은 저글러가 된다.
콜롬비아 메데진에서 만난 중년 부부는 우리 문화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솔직한 애정 표현의 모습을 보여준다. 버스터미널에서 헤어질 준비를 하면서 한동안 남자는 여자의 가슴에 뺨을 대고 있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뭔가 현실적인 대화를 나누고 이번에는 여자가 남자의 목을 끌어안고 한참 서로의 체온을 확인한다. 서로의 눈을 피하며 침묵 속에서 밥알을 요령 있게 씹어 삼키는 것이 당연시 되고 있는 우리에게는 낯설고 놀라운 풍경. 중년의 사랑은 어디로 상실되었을까.
5장 ‘사랑, 그 진지한 농담’은 작고 가벼운 유머러스한 사랑의 에피소드이다. 당사자들에게는 남다르고 특별한 사랑이지만 그 사랑이 타인에게는 농담처럼 들리기도 한다. 짧고 재미있는 사랑의 풍경, 위트 넘치는 사랑의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6장 ‘극진함으로 매일 새로운, 모성애’는 모성이 우리 가까이에, 바락바락 우는 아이 옆에 서 가장 일상적인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그리고 생명의 신비만큼 신비로운 엄마의 탄생을 보여준다.
에티오피아에서 만난 사이카는 두 아이의 엄마로 꽃다운 스물 두 살의 에이즈 환자이다. 그녀는 병든 몸으로 하루 1달러도 채 못 버는 행상을 하면서 혼자 두 아이를 키운다. 둘째 아이가 에이즈에 간염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기적이라며 가난하고 병들어도 모두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나도 우리 아이들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만난 그녀는 철지난 브로마이드를 장바닥에 펼쳐놓고 팔며 그 시장바닥에서 아이를 키운다. 악다문 입술과 턱 가장자리로 굳게 자리한 근육만이 억겁의 시간이 흘러도 스러지지 않을 모성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콜롬비아의 부카라망가 터미널에서 만난 그녀는 이제 막 낳은 아이를 안고 울고 있었다. 남편이 버스에서 내리고 차가 출발하자 아기가 칭얼대기 시작한다. 그녀는 헐고 탱탱하게 부어올랐을 젖꼭지를 아이가 보챌 때마다 물리고 또 물린다. 여덟 시간을 한 번도 일어나지 않고 앉은 채로. 버스에서 내린 그녀는 눈물을 그쳤고 언제 그랬냐는 듯 씩씩하게 걸어나간다.
페루 피스코의 한 식당에서 할아버지가 누런 종이를 냅킨 사이즈로 잘라낸다. 달력 종이를 잘라내 화장실용 종이로 만들던 외할머니가 떠오른다. 외할머니는 일곱이나 되는 자식들 입에 밥을 넣기 위해 불편한 습관들을 들였었다. 작가는 거칠고 딱딱한 모서리가 있는 습관들에 대한 기억들을 떠올린다.
7장 ‘다르지만 같은 사랑, 동성애’에서는 게이 커플과 레즈비언 커플에 대한 이야기이다.
샌프란시스코의 도미토리에서 만난 50대 게이 커플은 25년간 사랑을 지켜온 섬세하고 다정한 남자들이다. 이들은 브라질에 한 고아원을 후원하면서 그 아이들을 통해 얻은 생의 환회와 기쁨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에서 만난 슈본과 레아는 젊은 여성 커플로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들에 자신을 끼워 맞추기 않고 주체적이고 육중한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는 것을 보여준다.
8장 ‘어디서나, 모든 것이, 사랑’에서는 여행자가 그곳 생활자들에게서 받은 작은 배려 안에 깃든 사랑의 마음을 보여준다.
페루의 푸노행 버스에서 만난 아르카디오는 석공이다. 처음에는 거칠고 까만 손을 드러내기 주저했지만 그 손에 대한 아름다움과 경외를 전하자 손만큼 아름다운 마음을 보여주었다. 한 자 한 자 사전을 찾아가며 소통하는 그 느리고 힘든 작업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전화번호와 주소, 친척들의 이름과 세례명까지 적어주며 마음을 표현했다. 그리고 과자를 건넨 저자에게 마드리아나, 대모라며 관심과 사랑을 전한다.
효자동에 있는 빙그레 식품은 노부부가 꾸려가는 작은 슈퍼이다. 아이와 자전거로 나들이 나올 때마다 들르는 이곳에서 ‘나 그렇게 아등바등 살지 않아’라고 얘기하는 할머니로부터 돌보는 마음, 타인에 대한 무지갯빛 체온을 읽는다.
실연의 앓이를 느끼게 하는 어느 여행자는 비좁은 기차간에서 툭툭 발을 차는 아이를 속에서 무표정하게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있다. 옆의 아낙이 머리를 긁던 손으로 건네는 조그만 분홍색 떡을 별 거부감 없이 받아먹는다. 불편함과 더러움 한가운데에서 돌연 살아 있음을 깨닫는다. 살아 있는 것들이 서로를 성가시게 할 수 있다. 괴롭힐 수 있다. 새로운 심장을 지녔으니 다시 사랑할 수 있다.
9장 ‘생의 챔피언들, 노년의 사랑’에서는 말 그대로 노년에도 사랑이 있음을, 생을 투과해냈기에 더욱 생명력 있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파리의 공원에서 만난 할아버지 악사 옆에는 크림색 모자와 장갑에, 오렌지색 정장과 오렌지색 입술을 한 할머니가 이미 그는 다 외웠을 악보를 넘겨주며 서 있다. 사랑한다는 것은 당신이 내 품 안으로 걸어 들어와 아프다고 말하는 것이다. 성숙해진 얼굴로 삶의 지속성을 경건하게 받아들이며.
음성의 시외버스터미널 분식점에서 만난 할머니는 두 다리가 마비된 할아버지를 돌보며 조금씩 나아짐에 ‘고맙고 고맙지’를 연발한다. 일상 속에 비범한 사랑이 그렇듯 숨바꼭질하듯 숨어 있다. 돌봄을 받는 것들은 윤이 난다. 할아버지는 몸이 불편해지기 전까지 할머니를 윤이 나게 돌봐왔고 할머니 역시 그의 불편함을 윤이 나게 돌본다.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아름다운 역할을 충실히 해나간다는 것과 동의어이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랑, 그 사랑이 진짜였다.
신비한 일이다. 결점투성이인 우리가 반드시 한번쯤 사랑받고 반드시 한번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우리가 길을 떠나는 건 길 위의 거대란 위로들과 조우하는 것이며 고통에 내쳤던 나를 도로 끌어안고, 멈췄던 춤을 추고 사랑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길 위에서 만난 사랑의 풍성한 모습들은 사랑에 겸연쩍어하고 버석대는 우리에게 사랑에 말을 걸라 한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지, 나를 얼마나 사랑해주고 있는지, 나는 어떤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인지, 사랑과 역할에 얼마나 충실한지, 마땅히 사랑해야 할 이들에게 충분히 사랑을 베풀고 있는지, 주변의 모든 사랑을 관찰해낼 수 있도록 마음이 열려 있는지……
● 본문 중에서
그럼에도 나의 위안은 나뿐 아니라 동시대의 모든 인류가 사랑을 마스터하지 못한 ‘사랑 바보’라는 것이다. 나는 그들과 안데스의 장터에 주저앉아서, 혹은 메콩 강에서 나무보트를 타고 가면서, 혹은 심해의 바닥처럼 푹 꺼진 어느 게스트하우스의 낡은 소파에 마주 드러누워서, ‘똑같이’ 모자란 머리를 맞댄 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장터와 나무보트와 푹 꺼진 소파 위에서도 가감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오대양 육대주의 우리가 모두 사랑을 ‘잘’ 하고픈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그 어떤 경우이든지간에,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케이크의 장식처럼 맨 위에 환희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맨 아랫단에 침전물처럼 상처가 가라앉아 있었다. 이야기는 늘 케이크의 맨 윗단에서 시작해서 맨 아랫단에 이르러 집중적으로 길어졌다. 환희는 대충 돌보아도 알아서 잘 자라는 반면, 상처는 잘 돌볼 때만 썩지 않는 까닭이었다. 상처에 대한 이야기는, 놀랍게도, ‘발화發話’되는 것만으로도 언제나 회복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다. 한 번의 상처와 한 번의 회복은 언제나 한 번의 성장이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성장하지도 않는다.
- 「프롤로그」중에서
어떤 이별은 우리의 마음을 갓 구워낸 커다란 한 덩어리 빵이 되게 한다. 우리는 ‘가슴 속 오븐’에서 따끈한 빵을 꺼내 상대에게 통째로 건네줄 수가 있다. 서로의 부드러운 빵을 받아 품에 안고서, 코를 묻고 힘껏 향기를 들이마신다. 서로가 보는 앞에서 한 입씩 베어 물고 맛을 음미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오랫동안 배가 부를 것이다. 오랫동안 행복할 것이다. 선물 받은 빵을 들고 각기 자리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내내 향기가 길에 퍼진다. 사람들이 그 향기에 대해 묻는다. 우리는 그들에게도 한 조각씩 떼어준다. - 「밥」 중에서
길 위에서든 지붕 위에서든 오직 중요한 것은 언제나 사랑일 것이다. 이 행성에서는 누
구도 피할 수 없이 중력만큼의 무게를 지니게 된다. 지구라는 작은 행성, 이곳에서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무게를 들어올려 수직절벽을 오르는 사람들이다. 인간이 자신의 무게를 들어올리는 방법은 지구의 인구만큼이나 다양하게 존재할 것이다. ‘자신의 무게를 들어올린다’는 것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과 동의어이다. 우리는 중력에 저항하는 서로의 다양한 사랑법을 존중해야 한다. - 「마르셀로」 중에서
사람들은 늘 ‘어떤 배우자를 만나게 될까’에 대해 고심하지만, 사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누구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오히려 ‘나는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인가’가 훨씬 중요한 문제예요. 왜냐하면 내가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난다고 해도, 같은 방식으로 사랑하려 들기 때문이에요. 복잡한 사랑을 하고 있다면 그가 엉켜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당신의 마음가짐…… 신께서 점지해주시는 사람에게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는 그 마음이라면, 나는 당신이 그 누구와라도, 그 어떤 제도적 모순을 거친 뒤라도,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 「달랄」중에서
당신이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면, 사랑은 좀 더 복잡해져요. 더 작지만 지속적인 행복을 위해서, 충동적인 욕망을 희생하는 거죠. 인생이라는 집이 단선적인 욕망 위에 지어질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에요. 욕망은 허약한 거예요. 그 시작을 제어하지 못하면, 끝도 허망하게 손에서 빠져나가 버리죠. 순간적으로 욕망에 탐닉할 수는 있지만, 그것 자체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어요. 당신에게 소중한 것을 하나도 수호할 수가 없지요. 욕망을 허허벌판 위에 풀어놓으면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어 헤매게 되지만, 일단 소중한 것으로 집을 지은 뒤 그 안에 넣으면 욕망도 그 집의 질서를 따르게 된다는 걸요.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 생각처럼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은 일이 되는 거죠 - 「함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