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베카시스, 쿰란으로 되돌아오다!
쿰란 두루마리 중 <이사야서>의 일부. 최초로 발견된 두루마리 가운데 하나이며, 가장 긴 두루마리이기도 하다.
지난 1996년, 첫 소설『쿰란』을 출간하여 ‘풍부한 고증학적 지식’(렉스프레스), ‘신앙과 기독교 교리, 광신의 기원에 관한 흥미진진한 고찰...품만큼 대담한 소설은 없다’(누벨 옵세르바퇴르), ‘움베르토 에코를 상기시킨다’(마담 피가로)는 찬사를 받고 기라성 같은 프랑스 문단에 굳건히 뿌리내린 엘리에트 아베카시스가 제2의 쿰란 미스터리 소설을 들고 왔다. 아쉽게도,『쿰란』이후 우리가 접할 수 있었던 그녀의 글은 유대인 홀로코스트 문제(『황금과 재』), 여성과 임신(『행복한 사건』), 아버지(『나의 아버지』) 등을 다룬 글뿐으로, 그녀가 뿜어내는 신비로운 쿰란의 마력에 목말라하던 독자들에게 이 책의 출간은 반가운 선물이 될 것이다.
♦ 소설의 배경과 역사적 맥락
1. 쿰란과 사해문서(쿰란 두루마리)
쿰란은 이스라엘의 사해(死海) 북서 연안에 위치한 바위 지대를 가리키는 지명으로, 사해에서 약 1.6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1947년, 베두인 목동 두 명이 잃어버린 염소를 찾으러 이 부근 절벽을 헤매다가 우연히 동굴 입구를 발견하게 되었다. 염소의 울음소리가 들릴까 하여 구멍에 돌을 던져넣었던 이들은 그릇이 깨지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동굴 안으로 들어갔고, 동굴 속에서 항아리 여러 개를 발견했다. 이 중 한 항아리 안에 세 개의 두루마리가 있었는데, 이것이 최초로 발견된 사해문서이다.
조사 결과, 이 두루마리들은 <이사야서> 전권, <공동체의 규율서>, <하박쿡 주해서>로 기원전 250년에서 기원후 68년 사이에 기록된 구약성서 사본임이 밝혀짐으로써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 전까지 알려졌던 가장 오래된 구약성서 사본은 알레포 사본(925년경)과 레닌그라드 사본(1008년)이었는데, 이들보다 1천 년 이상 앞선 히브리어 성서 사본이 등장함으로써 기독교의 역사가 다시 쓰여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후 발굴 작업은 계속 진행되었고, 지금까지 총 11개의 동굴에서 900편에 가까운 문헌들이 발굴되었다. 이 두루마리에는 <에스더서>를 제외한 거의 모든 성서가 다 포함되어 있으며, 그 밖에 성서 주석, 종교적 규율, 기도문, 위경(僞經) 등 다양한 문헌들이 있다.
2.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 구리 두루마리
소설 『쿰란』이 쿰란 두루마리들 중 사라진 하나를 찾아가며 전개되는 모험과 그로 인해 밝혀지는 기독교의 기원에 관한 엄청난 증언이라면, 이 책 『일곱 방울의 피』는 구리 두루마리에 숨겨진 비밀에 관한 이야기이다.
1955년, 3번 동굴에서 구리로 만든 세 개의 두루마리가 발견된다. 900편 가까운 두루마리가 모두 양피지나 파피루스로 만든 두루마리였던 것에 반해, 특이하게도 구리판을 얇게 두드려 글자를 박아 넣은 이 구리 두루마리에는 놀랍게도 100톤이 넘는 금괴와 은괴, 제의도구들이 숨겨진 곳이 조목조목 기록되어 있었다(작가는 작중 인물의 입을 빌려,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내용을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본문 140~142쪽 참조). 이후 수많은 고고학자들과 탐험가들이 문서에 적힌 대로 보물을 찾아나섰으나 아직까지 발견된 것은 하나도 없다.
누가 이 엄청난 보물을 숨겼을까? 이 보물은 누구의 것이며 왜 숨긴 것일까? 쿰란 동굴에서 금욕적 삶을 살면서 쿰란 두루마리를 작성했다고 알려진 에세네인들이 이 보물의 주인일까? 금욕주의자로 이름 높은 이들이 과연 이 보물을 소유했을까? 구리 두루마리는 이처럼 무수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쿰란 두루마리 중 아직까지도 가장 불가해한 두루마리로 남아 있다.
이 책 『일곱 방울의 피』는 바로 이 신비로운 구리 두루마리가 간직하고 있음직한 사연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장대하게 풀어가는 소설이다.
‘아베카시스 표’ 역사추리소설
1. 역사의 충실한 재연과 전복적 상상력
구리 두루마리에 적힌 보물을 찾아 발굴을 진행중인 발굴팀 대장이 유다 사막 한복판에서 기묘한 사체로 발견되면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서기 70년부터 중세를 거쳐 현재까지 이어지는 이천 년간의 염원과 싸움을 그린 미스터리 대작이다.
웅장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는 장면, 로마군에 대항하는 최후의 기지였던 마사다 유적지 일람, 역사적 정설을 뒤엎는 중세 성전기사단의 정체, 하시시를 피우며 암살을 저지른 악명 높은 이슬람 아사신 파에 대한 본격 묘사, 아사신 파와 성전기사단의 밀약, 그리고 현대까지 끈질기게 이어오며 이천 년의 꿈을 이루려 하는 사람의 투쟁 베카시스는 역사의 명장면들을 리얼하게 재연하고 기존 역사에 대한 전복적 상상을 펼침으로써, 숨겨진 보물을 둘러싼 거대한 하나의 역사를 창조해낸다.
연속되는 살인과 정체 모를 사람들의 쉼 없는 등장, 그리고 이들의 정체가 한 꺼풀씩 벗겨지면서 하나씩 밝혀지는 이질적인 역사의 연관고리, 마침내 거대한 밑그림이 드러나면서 시야가 탁 트이게 되고 최후의 투쟁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구성은, 어쩌면 장르의 문법에 충실하게 역사추리를 다루는 아베카시스의 능수능란한 솜씨를 보여준다.
2. 유대 문화를 웅숭깊게 다루는 그녀만의 능력
하지만 이와는 별도로, 이 책에서 또 하나 음미할 만한 것은 그녀가 소개하는 유대교 혹은 유대문화에 대한 신비로운 체험이다. 『쿰란』에서 이미 경건하게 문서를 베껴쓰는 하시드(초정통 유대교인) 필사생의 삶과 정신을 인상 깊게 보여준 바 있었던 작가는, 역시 이 책에서도 수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여 은둔자 에세네인의 삶과 그들의 영적인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그녀가 소개하는 히브리어의 정신성은 한 글자 한 글자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우리의 한자를 연상케 하면서 그네들 문화의 힘을 느끼게 해준다.
친. 첸chen에서 유래한 말. 치아, 생명력의 상징. 기력, 영웅적 행위. 불꽃이 타닥타닥 내는 소리, 우주의 활동적 요소, 존재하는 모든 것의 움직임. 친을 지배하면 우주의 힘을 활용하고 통솔할 수 있다. 그러나 친은 사악한 자들의 이빨이기도 하다. 이 글자의 세 수직선은 질투, 육욕, 교만이라는 세 가지 악의 힘을 의미한다.(본문 123p)
우리 앞에 나타난 사내는 전날 만났던 카페 주인이었다. 그는 기사단의 검, 거룹의 창을 쥐고 있었다. 그것은 알파벳의 일곱번째 글자 인 Zain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싸움과 힘의 글자, 생존을 위해 싸울 줄 아는 역량을 의미하는 글자였다.(본문 217p)
내 목에 닿은 칼날 앞에서, 희생 제물로 바쳐지는 짐승처럼 죽을 준비가 된 나는 돌연 마음을 비우고 하나의 글자를 찾았다. 헤.(본문 273p)
다음은 주인공이 고대 에세네인의 작업과 똑같이, 필사생의 경건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장면이다.
머릿속을 가라앉히기 위해 나는 줄곧 일을 해왔던 기다란 나무 탁자 앞에 앉았다. 그리고 칼로 양피지 가죽을 긁기 시작했다. 양피지가 나무랄 데 없이 세척되어 윤이 나는데도, 가죽은 까칠까칠하여 내 손끝에 저항했다.
양피지의 위쪽과 아래쪽, 그리고 면과 면 사이에 여백을 남기는 데 유의하면서 수평선을 긋고, 글씨를 반듯하게 쓰기 위해 그어놓은 선에 글자를 맞추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양피지의 결은 균일하고 완벽하게 동질이어야 한다. 나는 섬세하면서도 탄탄한 성질의 결을 좋아한다. 글을 쓸 때 가죽이 손바닥과 잉크, 염료와 닿으면서 물러지는 느낌이 나는 좋았다. 양피지, 그것은 살갗이고, 불꽃과 부패를 극복하고 영속하는 삶이다. 그렇기에 구리는 산화되어버리지만 양피지는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글자를 보관한다. 글이 적힌 양피지 가죽을 유장(乳漿)에 담가두었다 문지르면 그 위에 다시 글씨를 쓸 수 있다. 써 있던 글자를 지우고 새 글자를 써넣은 양피지, 그것은 말 그대로 역사로 가득 찬 이 나라의 상징이다.(본문 39~40p)
왜 구리에다 새겼을까? 다른 것은 다 양피지인데, 왜 유독 이것만은 구리 두루마리일까? 하는 의문과 함께 주인공이 사색에 잠기는 장면이다.
그런데, 왜 독피지가 아니라 구리인가?
염소, 새끼 염소, 양, 새끼 양, 심지어 가젤 같은 영양류의 가죽을 가공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자면 솜씨 좋은 무두장이가 온 힘을 기울여 작업에 임했을 것이다. 사실 이것은 극도의 세심함과 시간을 요하는 일이다. 그들은 가죽을 긁고, 흔히 ‘제일 좋은 부분’이라 불리는, 기록을 새겨 보존하기에 가장 적절한 살갗 면을 완벽하게 세척했을 것이다. 그들은 털을 잘라내고 갈기에 윤을 냈을 것이다. 그런 후 가죽에 무두질을 하고 뜨거운 물로 말끔히 닦은 다음 진귀한 기름을 먹여 부들부들해지고 잘 써지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가죽을 바깥쪽으로 잡아당겨 햇빛과 바람으로 건조시켰을 것이다. 물론 과도한 지방질은 제거해야 했을 것이다. 지방질은 제거하기가 어렵거니와, 지방질이 많으면 글자나 그림을 새겨넣을 수가 없다. 미끄러운 바탕에는 잉크와 염료가 잘 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잘 가공된 양피지는 잉크를 빨아들이지 않고 잘 들러붙게 한다 그들은 이 모든 일을 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그러자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 얼마나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을까?(본문 195~196p)
이것은 (아직까지는) 아베카시스만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독특한 맛이다. 우리는 유대, 유대인이라 하면 홀로코스트나 디아스포라만을 떠올리지만, 이런 간접 체험으로 유대교 중에서도 극단적으로 영적인 삶을 살았던 한 분파의 삶과 정신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다. 이것이 또한 우리가 아베카시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추리소설은 많지만, 이처럼 역사의 한 부분을 해박한 고고학적 지식과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재연함으로써 가상의 이야기에 밀도를 부여하는 소설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 해외 리뷰
아베카시스는 작은 이야기들이 유행하는 데 싫증을 느끼고, 우리 문명의 기초를 이루는 거대한 수수께끼를 소설 속에 녹여낸다. -리브르
『쿰란』의 작가 아베카시스가 선보이는 철학적 스릴러. -리르
아베카시스는 이 책에서 수세기에 걸친 여러 종교의 역사를 솜씨 좋게 다루고 있다. 잘 짜인 추리소설 기법에 따라서, 이천 년도 넘는 역사가 한 권의 책에 요약되어 있는 것이다. -렉스프레스
신학적 스릴러의 여왕 엘리에트 아베카시스가 돌아왔다. 그녀의 작품은 역시 성경에서 영감을 얻고 있지만, 움베르토 에코가 간 길과는 다른 길을 걷는다. -라 비
♦ 줄거리
유다 사막에서 기이한 자세로 불에 타죽은 시체가 한 구 발견된다. 시체는 돌 제단 위에 결박되어 목이 베인 채로 절반쯤 타 있었다. 그리고 돌 제단 위에는 범인이 묻힌 일곱 방울의 핏자국. 죽은 사내는 구리 두루마리에 적힌 보물의 목록을 따라가며 보물을 찾고 있던 발굴대 대장, 에릭슨 교수였다.
에세네인에 귀화하여 쿰란 동굴에 은거하며 옛 문헌을 필사하는 필사생의 삶을 살던 아리 코헨은 사건이 터지자 세상으로 나와 수사에 참여하게 된다. 그는 사건 현장에서 꿈에도 못 잊을 여인 제인 로저스를 만난다. 제인 로저스는 살해된 발굴대 대장이 이끄는 발굴대 대원이었던 것. 아리와 로저스는 사랑하는 사이면서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함께 사건을 수사해나간다.
사건을 조사하면서 아리 코헨은 살해된 에릭슨이 프리메이슨이었다는 것, 그가 사마리아인에게서 또 하나의 두루마리, 은 두루마리를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리는 에릭슨 교수의 딸 부부인 루스버그 부부를 찾아가서 에릭슨이 고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데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하지만 루스버그 가족은 그날 괴한에게 살해당한다.
은 두루마리는 같은 발굴대 대원이었던 요세프 코스카라는 자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프랑스로 돌아간 상태. 아리는 떠나지 말라는 에세네 파 최고평의회의 결정에 불복하고 제인과 함께 파리로 떠난다. 파리에서 요세프 코스카의 뒤를 추적하면서 이들은 요세프 코스카가 지휘하는 정체불명의 집단을 엿보게 되고, 몰래 잠입하여 은 두루마리를 훔쳐낸다.
은 두루마리를 읽어 내려가면서 아리와 제인은 엄청난 역사적 비밀과 마주치게 된다. 거기에는 구리 두루마리에 쓰여 있는 보물의 행방과, 현재에도 계속되는 싸움의 정체가 모두 드러나 있었다.
길고 긴 은 두루마리를 읽는 중에, 제인은 납치되고 아리는 괴한들에게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는 일이 반복된다. 이제 아리는 이천 년간의 싸움을 끝내러 다시 이스라엘로, 쿰란 사막으로 돌아온다
엘리에트 아베카시스 Eliette Abécassis
“소설가란 역사를 이야기해야 한다. 그리고 독자의 손을 잡고 소설 속 세계로 독자를 이끌어 절대 빠져나갈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약관 27세의 나이에 『쿰란』을 발표하여 세계적 작가로 부상한 엘리에트 아베카시스는 1969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 아르망 아베카시스는 유명한 철학교수이자 『유대사상 Pensée juive』의 저자로, 오늘날 가장 뛰어난 유대사상가 중 한 명이다. 엘리에트 아베카시스 역시 유대교와 유대문화에 깊이 동화된 독실한 유대교도이며, 프랑스 지성의 산실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철학교수 자격증을 취득했다.
1996년에 발표한 첫 작품 『쿰란』은 사해문서 미스터리를 소재로 예수의 생애를 유대교적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한 역사추리 소설로, 출간되자마자 18개 언어로 번역되어 십만 부 이상 팔려나가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 후에 출간된 『일곱 방울의 피』는 『쿰란』의 시공간을 더욱 확장하여, 역시 『쿰란』의 주인공들인 아리 코헨과 제인 로저스가 사해문서 중 ‘구리 두루마리’에 숨겨진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역동적인 모험 소설이다. 이 소설은 『쿰란』과 『마지막 부족』(2004)과 함께 ‘쿰란 삼부작’을 이룬다.
그 밖에 아베카시스의 주요 저작으로는 『황금과 재』(1997), 『살인에 관한 형이상학적 고찰』(1998), 『라 레퓌디에』(2000), 『나의 아버지』(2002), 『클랑데스텡』(2003), 『행복한 사건』(2005), 『보이지 않는 코르셋』(2007) 등이 있다.
옮긴이 홍은주
이화여자대학교 불어교육과 및 동대학원 불문과를 졸업했다. 『미크로코스모스』『녹턴』『태양의 여왕』『현자 프타호텝의 교훈』『디오게네스의 햇빛』『자신있게 살아라』『비밀』『쇼비타』『코르토 말테제』(전5권) 『지구를 걷는 아이』『사랑의 목소리』『80일간의 세계일주』『헤드헌터』『장 지오노, 나의 아빠』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2008년 3월 19일 발행
*ISBN 978-89-546-0508-3 03860
*153*224(무선) | 384쪽 | 11,000원
*책임편집 조현나 (031-955-8857, jelesais@munha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