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눈물이 고인다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R-18 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제1작 「미쿠마리」는 열여섯 살 소년과 스물여덟 살 주부의 파격적인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두 주인공의 불온한 일탈이 불러온 걷잡을 수 없는 파장과 불안은 주변 사람들의 일상까지 흔들고, 아픔을 밀봉한 채 살아가던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는 어우러져 서서히 진폭을 키우다가 이윽고 삶이라는 우주의 거대한 나무를 구슬프게 뒤흔든다.
살아가는 일의 빛과 그림자, 행복을 꿈꾸나 불행의 손아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자들의 고뇌, 숨겨두고 묻어둔 아픈 기억들이 저마다의 삶에서 드러나면서 대단원을 향해 속도 있게 달려가는 이 소설은 첫 두 편의 강렬하고 파격적인 성 묘사로 포르노그래피의 인상을 줄 수도 있으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작가가 그리고자 한 세계가 힘든 현실 속에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이 확연해지면서 점차 공감대를 만들어나간다. 세상으로부터 자기를 가두어버린 소년을 반드시 세상 밖으로 끌어내겠다고 다짐하는 소녀, 갱년기증후군을 앓는 지친 어머니와 가출한 천재 대학생, 사회의 차별을 겪으며 살아가는 가난한 친구와, 그 소년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세상을 대하는 법을 알려주는 청년, 그리고 홀로 산파 일을 하며 자식을 키워온 강인한 어머니의 사연 등 다양한 이야기의 조각들은 퍼즐처럼 모여 이 작품의 세계를 하나로 결집시켜나간다.
한심한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운다
열여섯 살의 주인공 타쿠미는 조산원을 운영하는 어머니를 둔 모자가정의 소년이다. 어딘가 나른한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왠지 기대고 싶고 함께 장난치고도 싶은 친근함을 가진 이 소년의 삶이 어느 날 갑자기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열두 살 연상, 애니메이션 오타쿠인 주부 안즈(사토미)를 만나고부터다. 안즈가 사는 아파트에 찾아가게 된 타쿠미는 안즈가 준비한 애니메이션 캐릭터 의상을 입고, 안즈가 써둔 대본의 대사를 외워 말하면서, 그녀가 시키는 대로 욕망에 몸을 내맡긴다. 타쿠미는 스스로 ‘정상적인 고교생의 길에서 완전히 벗어나버렸다’고 자각하지만, 그녀에게로 향하는 걸음을 쉽게 멈추지 못한다. 어렵사리 안즈에게 이별을 통보한 타쿠미는 겨우 제자리로 되돌아왔다고 잠시 안도하지만, 아기를 갖지 못하는 안즈가 마트 한구석에서 갓난아기용 작디작은 양말을 멍하니 바라보는 모습을 보고 주체할 수 없이 슬픔이 북받친다. 고독하고 공허한 어른여자, 안즈의 애처로운 삶을 짧은 순간에 알아채버린데다, 그녀에 대한 자신의 감정의 실체를 아프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단편들에는 어려서부터 지독한 따돌림을 당하며 살아온 안즈의 이야기, 타쿠미를 좋아하는 동급생 나나와 그 가족의 이야기,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돌보며 살아가는 가난한 료타의 이야기, 그리고 조산원을 운영하는 타쿠미의 어머니의 삶이 선연하게 그려진다. 태어난 환경이나 특수한 성벽 등 자기 힘으로는 어찌 해볼 수 없는 문제에 얽매여 막다른 골목에 몰린 이들은 가슴 깊은 곳에 숨겨둔 상처를 서로 들여다보면서, 나의 불행과 닮은 타인의 불행을 보고, 모두 아이같이 소리 내어 운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그래도 삶, 가만히 다가와 어루만지다
타쿠미와 안즈가 주인공인 앞의 두 편이 상처 주는 세상, 상처 입은 어른, 그런 어른들과 함께 얽혀 살아가는 소녀소녀의 우울한 현실을 ‘불임의 섹스’로 상징화하였다면 이어지는 세 편의 이야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불러내는 이야기다. 특히 마지막 편 「꽃가루와 꿀벌」에 등장하는 ‘출산’의 장면들은 앞의 ‘불임’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면서 소설 전체에 팽팽한 긴장감을 부여하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두 산모의 출산 장면에서 방점을 찍는다. 진통과 함께 시작돼 우렁찬 울음소리로 끝이 나는 출산의 과정은 엄청난 에너지가 모였다가 폭발하고 한순간에 고요해지는, 압도적인 긴장과 해소를 동시에 느끼게 하며 독자를 압도한다. 그 놀라운 생명의 에너지, 그 폭발과 소멸의 공명에, 그 환희와 공허의 순간에 작디작은 인간은 그저 숨을 삼킬 뿐이다.
온전히 착하지도, 온전히 나쁘지도 않은 불완전한 인간으로서의 ‘나’, 실수하고 후회하고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미워하는 ‘나’, 고민하고 괴로워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나’, 이 소설에는 나와 닮은 수많은 ‘나’가 등장한다. 그 불완전한 ‘나’는 뜻하지 않은 세상의 벽을 만나고 상처를 입지만 “반드시 나의 편이 되어주는 누군가”의 힘으로 조금씩 추스르고 희망을 찾아 걸어간다. 아무리 사랑받는 존재라 하더라도 상처 없이 살아갈 수는 없는 지난한 삶의 부조리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이 소설은 잔잔하고 깊은 감동으로 많은 이들을 울먹이게 만들었다.
☆ 추천의 글
생에 대한 압도적 긍정.....요미우리신문
‘성性’이 ‘생生’으로, 그리고 ‘성聖’으로 변한다. 두려울 만큼 초대형의 신인이 등장했다.....아사히신문
약한 소리를 내뱉을 상대가 없이 홀로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의 마음에 진정으로 깊은 울림을 준 한 권.....산케이뉴스
이 소설은 때로 어리석기도 한 우리의 인생을 온몸과 마음을 다해 찬미한다.....가쿠타 미쓰요(소설가)
한 줄 한 줄 현실감이 가득하다. 마음에 남는 단어와 장면이 가득하다. 괜찮아요, 하고 말을 걸어주는 것 같아, 읽을 때마다 울어버렸다.....니시아자부 아사코(이 책의 편집자)
대단한 소설을 읽었다. 아무도 보지 못하게 가슴 안쪽 깊이 숨겨둔 오래된 상처를 아무렇지도 않게 헤집는. 나는 마음의 피를 흘리면서 이 책을 팔고, 이 책의 수호자가 된다....사쿠라이 미레이(서점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