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 갤러리에서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까지
유럽 현대미술관 16곳과 그 풍성한 컬렉션 속으로
현대미술가.평론가.독립 큐레이터.대학 강사 등 현대미술과 관계된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은이가 독자들을 새로운 유럽 현대미술관으로 안내한다. 지은이 이은화는 런던 소더비 인스티튜트에서 현대미술학 석사를 취득하고, 맨체스터 대학과 소더비 인스티튜트가 함께 운영하는 아트비즈니스 전공 박사 과정을 수료한 현대미술 전문가이자, 그 스스로가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예술가다. 지난 20여 년간 유럽 곳곳의 미술관을 찾아다닌 경험을 바탕으로, 꼭 소개하고 싶은 미술관과 작품을 골라 이야깃거리를 펼쳤다. 이 책에서는 빌바오 구겐하임이나 테이트 모던처럼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현대미술관에서, 홈브로이히 박물관 섬이나 팔레 드 도쿄처럼 고정관념을 깨는 색다른 미술관들까지 5개국(영국.프랑스.독일.네덜란드.스페인) 16곳의 미술관을 만날 수 있다. 또 루브르나 오르세처럼 현대미술과는 무관해 보이는 미술관들이 어떻게 현대미술과 접속을 시도하는지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미술관의 탄생 배경뿐 아니라 건축 콘셉트, 컬렉션의 특성, 전시 프로그램, 작가와 작품에 얽힌 뒷이야기 등을 충실히 담아, 현대미술 애호가뿐 아니라 독특한 미술관 여행을 원하는 독자들에게도 내실 있는 가이드북이다.
『가고 싶은 유럽의 현대미술관』은 2005년 출간된 『21세기 유럽 현대미술관 기행』(랜덤하우스)의 개정판으로, 그동안 미술관의 변화를 다시 한 번 점검하고 반영하기 위해 글과 도판을 보강했다. 그 과정에서 미술관의 분관 건설, 개조 및 증축 등 하드웨어적인 변화와 소장품이나 전시 프로그램의 변화 등 소프트웨어적 변화를 업데이트했다. 또한 이전 책에서 지면의 한계로 담지 못한 그 밖의 미술관 소개나, 미술 시장의 붐이 일며 주목받기 시작한 아트페어와 비엔날레 소식도 나라별로 추가했다.
낯설고 기이한 작품들로 우리 삶을 들여다보다
새로운 질문들과 함께하는 친절한 현대미술 여행서!
‘유럽 현대미술관 여행서’인 이 책을 설명하는 데에는 세 가지 질문―왜 ‘현대’미술인지, 왜 ‘유럽’ 현대미술관인지, 왜 유럽 현대미술관 ‘여행’인지―이 뒤따른다.
첫째, 왜 현대 미술일까?
루이즈 부르주아, 데이미언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제프 쿤스……. 사실 고대미술에서 피카소가 활약한 20세기 전반부의 작품들은 그나마 익숙하지만, 위에 나열한 예술가들은 미술 애호가들에게조차 낯설다. 초대형 거미, 방부액에 넣은 상어, 피를 뽑아 만든 조각상까지 현대미술품은 엽기적이고 때론 황당하고도 난해하다.
하지만 지은이는 1960년대 이후의 현대미술품도 알고 보면 재밌고, ‘우리 시대에 말을 거는 지극히 일상적이고도 다양한 목소리’라고 말한다. 단지 예술가들은 우리가 바라보는 일상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뿐이라는 것. 이를테면 트레이시 에민이 쓰던 쓰레기 같은 싸구려 침대가 예술이 될 수 있는 것은 침대를 통해 자신의 아픈 과거를 그대로 고백하기 때문이고, ‘나의 삶이 곧 예술이다’라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기 때문이다. 마크 퀸의 자신의 피로 만든 조각상 또한 ‘가장 나다운 것’을 만들어 증명하고자 한 작가의 고민이 담겨 있다. 현대 작가들은 낯설고 기이한 작품으로 사랑과 섹스, 삶과 죽음, 관계와 소통, 욕망과 상실 등 동시대 우리 삶의 문제를 질문하는 것이다. 지은이는 작품을 둘러싼 뒷이야기―데이미언 허스트가 만든 양이 당한 봉변이나 아르망과 클랭의 대결 전시 에피소드 등―도 함께 소개해 현대미술에 대한 흥미를 자극한다.
둘째, 왜 유럽 현대미술관일까?
현대미술관 하면 다들 미국의 뉴욕현대미술관(MoMA)을 떠올리고, 유럽의 미술관들은 고전미술의 무덤으로만 여긴다. 하지만 데이미언 허스트나 세라 루커스 같은 핫(hot)한 작가들은 유럽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사치 갤러리나 테이트 미술관 같은 유럽 미술관들은 이들의 활동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다. 또 테이트 모던 하면 로스코의 전시실, 베를린 신국립미술관 하면 요제프 보이스의 전시실을 꼽을 만큼 유럽 현대미술관은 저마다 색깔 있는 컬렉션을 갖추고 있다. 지은이는 미술관의 대표적인 컬렉션을 보여 주면서 미술사에서 갖는 의의와 자신의 감상을 풀어 썼다.
최근에는 루브르 박물관 같은 고전미술관의 변신도 눈여겨봐야 한다. <대위법―루브르 안의 현대미술> 같은 전시를 열어 고전미술품과 현대미술품을 함께 보여 줌으로써 과거와 현재가 소통하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전시의 변화뿐 아니라 루브르 아부다비 분관 설립, 테이트 모던의 부속 건물 설립, 퐁피두 메츠의 개관 등 유럽 미술관들의 외형적 변화도 계속되고 있다.
셋째, 왜 유럽 현대미술관 여행일까?
유럽 여행을 가면 누구나 그 나라 문화유산의 보고인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게 마련이고 여행자 대부분은 영국박물관, 우피치 미술관, 프라도 미술관 같은 고전미술관들을 공식 코스로 밟는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공식 코스에 싫증난 사람들, 뭔가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여느 여행 서적에서 찾을 수 없는 숨은 보석 같은 미술관을 소개한다. 휴식과 웰빙 식사를 제공하는 독일 홈브로이히 박물관 섬, 자전거를 타고 가는 네덜란드 크뢸러 미술관은 미술관이자, 자연 속에 숨쉬는 아름다운 관광지다.
현대미술의 매력에 한 걸음 더 가까이
일상의 예술, 예술의 일상을 위하여
스스로를 현대미술 중독자, 아트홀릭으로 칭하는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 누구나 현대미술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즐기고 자신만의 시각을 발견하라고 권한다. 현대미술은 아직 미술사적인 검증이 끝나지 않아 정답이 없다는 단점 또한 감상자들에게는 감상의 자유를 허하는 장점으로 바라본다.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작품을 보는 것은 에술가의 혼과 열정을 만나는 일이다. ‘작품에서 전해 오는 열정과 에너지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저자처럼 독자들도 현대미술의 바다에 빠져 보면 어떨까.
지은이는 대중이 현대미술과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문화 환경에 대한 따끔한 조언도 잊지 않는다. 문화 선진국이라 부르는 유럽의 수많은 나라들이 예술가와 대중을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데 비해 한국은 턱없이 기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유럽에는 정부뿐 아니라 기업들도 문화 메세나(Mecenat) 활동이 활발해 소장 컬렉션을 기부하거나 미술관을 설립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앤서니 도페이는 테이트 브리튼에 소장품 725점을 기증하다시피 제공했고, 크리스찬 플릭은 함부르거 반호프에 소장품 2,000여 점을 7년간 무상 대여했다. 네덜란드의 드 퐁트 현대미술관은 한 기업가의 부동산 기증으로 개관한 미술관이며, 영국의 사치 갤러리나 스페인의 카이샤 포럼은 기업 미술관이긴 해도 모두 무료 관람제를 고수한다. 우리에게도 삼성미술관 리움,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 국립현대미술관 등 현대미술을 전문적으로 전시하는 곳이 없지 않지만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